E SENS, 『The Anecdote』

by XENITH
   

“한국의 『Illmatic(1994)』이 나왔다고 보면 된다.” 경력이 이미 십수년은 된 E SENS가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단독으로 내걸고 발매하게 된 정규 앨범 『The Anecdote』를 향한 Deepflow의 발언은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는 듯 보인다. 소위 “진짜배기 래퍼의 진짜 힙합 앨범”을 향한 기대라던가, E SENS라는 이름이 갖는 가치라던가, 당연히 발매 이후 명확해진 사실이지만 E SENS 본인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겨있는 점이라던가 그런 것들 말이다. 물론 Nas의 데뷔 앨범과 본작에는 무려 20년이 넘는 시간의 간극이 존재하고, 본작에는 스타 프로듀서들로 구성된 어마어마한 프로듀서 크레딧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나의 기억에 당시 본작을 향해 건네졌던 대부분의 찬사는 Deepflow의 발언이 인용된 것들이었다. 누군가는 단순한 비교로서, 다른 누군가는 본작이 자신의 기대치를 충족시켰음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또 다른 누군가는 『Illmatic』이 그렇듯 저 높은 곳에 본작의 위치를 마련해야만 하는 당위성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인용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물론 Deepflow가 너스레를 떨었듯 그가 아주 틀린 소리를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다소간에 과장되어 보이는 이 문구를 일단은 잠시 뒤로 해두려고 한다.

E SENS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자서전같이 쓰여졌다. 언뜻 보기엔 그가 우상으로 삼아왔던 Nas, JAY-Z는 물론 Kanye West와 Kendrick Lamar마저 차용했던 자수성가 스토리를 그려낸 듯싶지만, 실상은 해리 포터가 덤블도어 교수의 집무실 안에서 펜시브를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에 가깝다. 「Back In Time」에서는 “빡빡이 가짜 신발 침 발라서 닦던 애”에 관한 기억을, 「The Anecdote」에서는 “1996년 아버지를 잃은 아이”에 관한 기억을, 「Next Level」에서는 “한 계단씩 차례대로” 올라가던 그의 거대한 기억을 소환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는 단순히 자신의 절륜한 랩으로 과거의 기억을 나열하지만은 않는다. 예술가로 살아오며 보고 느낀 것들을 나열하기도 하는데, 때로는 「Writer’s Block」처럼 소탈하기도 하고, 「A-G-E」나 「삐끗」, 「10.18.14」, 「Tick Tock」처럼 도발적이기도 하다.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다가도 조금 더 커다란 담론을 교차시키기도 하고, 다시 현재의 자신으로 돌아와 덤덤하게 소회를 읊기도 한다.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본작의 타이틀을 『The Anecdote』로 결정한 것은 그의 가사에 일정 이상의 신빙성을 부여한다. 그와 동시에 본작의 소리가 철저하게 90년대 이스트 코스트 힙합 내지는 붐뱁을 표방한다는 것에도 「Writer’s Block」과 「Back In Time」에서의 가사가 개연성을 부여한다. 코펜하겐 어딘가에서 프로듀서 Obi와 함께 찾아낸 골든 에라를 향한 향수라는 접점은 E SENS의 퍼포먼스만큼이나 탁월한 선택이 된 듯 보인다. 그 시절을 재현하고 소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2010년대에 선호되는 믹싱 기법에 소홀하지 않았던 것도 그 선택에 빛을 더한다. 본토에서 심심찮게 나오던 “누가 요새 낡아빠진 붐뱁을 하냐”는 장난 섞인 질문이 Joey Bada$$와 Logic의 등장으로 완전히 사그라들었던 것처럼, 본작 역시도 한국 힙합 리스너들에게 어떠한 쾌감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오리지널리티에 관한 논쟁은 사실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재능의 유무와 관계없이 오리지널리티를 선점하고 확보하는 이는 수많은 아티스트 가운데서도 극히 소수에 불과하고, 나머지 절대다수는 반드시 다른 누군가를 레퍼런스 삼고, 재현하며, 작품의 높은 완성도를 위해 힘쓴다. 나는 E SENS와 본작이 후자의 경우라고 생각한다. 본작이 특별한 이유가 오리지널리티와는 관계가 없다는 얘기다. 좋든 나쁘든 한국에서 E SENS는 상당한 유명인이다. 단순히 음악계를 뛰어넘어 대중문화의 최전선에 서 있던 이였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불우한 시절이 있었고 그보다 더 심각하고 불미스러운 일로 구설에 오름과 동시에 본작의 발매 시점에서는 기어코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사실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야 누구든 할 수 있는 것이지만, 몇몇 도발적인 이야기들은 실제로 경험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것들이다. 지금까지 말했듯, 본작을 완성지은 것은 결정적으로 E SENS의 자취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이,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 몇 없는 옥중 앨범 중 하나인 본작은 단순히 음악적 성취와 완성도를 넘어 문화적인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나는 사료한다. 물론 여전히, Deepflow가 너스레를 떨었듯 그가 아주 틀린 소리를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다소간에 과장되어 보이는 이 문구를 일단은 잠시 뒤로 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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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SENS, 『The Anecdote』, BANA, 2015.08

지금까지의 글은 내가 2015년 8월 27일 전후의 시점에 있음을 전제로 두고 작성되었다. 앞으로의 마지막 한 문단은, 내가 현재의 시점으로 돌아와 작성하는 마지막 문장을 위해 붙여지는 살이 될 것이다. 앞서 말했던 대로 본작에 관한 기대를 한계치까지 끌어올렸던 것은 Deepflow의 발언일지 모르나, 모두가 알고 있듯 E SENS가 대마초 흡연 혐의로 구속되면서 그 흐름이 커다란 위기를 맞은 바 있다. 그럼에도 희대의 옥중 앨범으로서 본작이 발매될 수 있게 만들었던 것은, 발매 시기조차 알 수 없었던 상황임에도 부풀어진 기대와 과열된 상찬, 그리고 그것을 생산하던 주체들과 상호작용하던 BANA의 실무진과 본작의 참여진이었다. 다시 말해, 대중음악은 생산과 소비의 상호작용으로서, 그것은 정치사회적이든, 상업적이든 어떠한 방식을 통해서라도 양방향적이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정보통신 기술이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바 그 어느 때보다 용이하게 구축할 수 있는 관계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본작의 발매 이후 많은 이들이 박수로 그들의 노력에 화답함으로서 이 그림에서 마지막 붓이 떼어진 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본작은 이미 그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본작의 발매를 둘러싼 몇 가지 사건들과 현상들은 2010년대의 우리가 대중음악을 사유하는 방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보여주는 아주 적실한 증거이고 중요한 기록이다. 그래서 나는 이 자리를 빌려 본작을 2010년대 국내 최고의 앨범으로 선정하며, 본작을 둘러싼 일련의 흐름을 2010년대의 가장 중요한 음악적 사건으로 꼽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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