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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코포니, 『夢』

Je comprends pas / Tu comprends pas non plus

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 너도 역시 이해하지 못하지

– 「봄」, 『和』, 2018.

 

『和』는 하나의 이야기로 조직된 앨범이었다. 진부하다면 진부할지도 모를 보통의 이별 이야기였다. 가엾은 로제타. 어쩌면 로제타는 정말 그녀를 구해줬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로제타에게도 그녀의 이별을 바라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1 이야기의 끝에서 그녀는 결국 자신에게 남아있는 날들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괴로웠지만, 그럼에도 삶은 남았다.

 

ㄱ.

그런데 이제 그녀는 다시 돌아간다. 그 길에서 『夢』은 시작된다. 옛 사랑에게로 돌아가는 길. 또는 옛 사랑에게로 돌아가는 꿈. 어쨌든 그녀는 돌아간다. “그대에게 나는 돌아간다네.” 그녀는 혼자 노래하며 돌아가는 길에 오른다. “나는 돌아간다네.” 종결어미 ‘-다네’는 감탄의 표지일지도 모르고, 인용의 표지일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자신의 귀환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듯 보인다. 그녀는 마치 계절이 바뀌듯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자신을 목격한다. 어쩌면 그토록 자연스러울 수 있는 것인지, 그녀는 스스로의 귀환이 생경했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나는 돌아간다”라는 그 말이 마치 낯선 이의 말처럼 느껴져, 자신의 노래 안에서 그 말을 인용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던 이의 빛나는 웃음을 다시 마주할 생각에 그녀는 점점 더 벅차오른다. 돌아가는 길은 향기롭기까지 하다. 그 고양감을 그녀 자신도 주체할 수 없는 것일까. 북소리가 무겁게 몰아친다.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격해지고, 북소리도 그에 맞춰 격해져간다. 2분 15초부터, 그녀의 독백을 둘러싼 소리들은 조금씩 꺼림칙한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한다. 북소리는 천둥처럼 내리꽂힌다. 그 와중에도 가사는 소리들이 남기는 그런 미심쩍은 느낌들에 대해서 철저히 무관심하다. 그녀의 설레는 마음은 그저 부풀어만 간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했던 그 사람도 자신을 기다리고 있으리라 확신한다. 그녀는 그렇게 돌아간다.

그리하여 그녀는 다시 사랑에 빠진다. 마치 사랑에 절여지듯 사랑에 빠져든다. 되살아난 사랑은 아주 빠르게 배어든다. 그리고 빠르게도 깊어간다. 그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은 너무도 아름답고 황홀하다. 그녀의 마음은 그토록 높이 고양되어간다. 그녀는 “잔잔한 파도를 계속 주오”(「타히티」.)라고 노래하지만, 그렇게나 높게 고양된 마음에 닿을 파도가 잔잔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녀의 눈에 잔잔해 보이는 파도는 그녀의 발끝에도 닿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사랑함으로서 스스로가 충만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마음은 풍선처럼 부푼 채 날아오른다. 사랑은 그녀를 완성시키고 그녀의 세상에 빛을 비춘다. 급기야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그 사람이 온 세계의 합리성을 구성한다고 느끼기에 이른다. 이제 그녀를 둘러싼 다른 모든 것들의 의미는 그녀의 사랑이 결정한다. 마치 신처럼. “당신의 웃음이 이 우주를 설명해요. [……] 당신의 눈빛이 이 우주를 설명해요.” (「이 우주는 당신」.)

 

ㄴ.

문제는 이렇다. 사랑이 세상 모든 것에 의미를 주었는데, 사랑만은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대가 내게 들어온 그 순간 / 나는 부족한 게 없어”(「타히티」.)라고 말했던가. 그 사람 덕에 그녀의 세상이 결함 없이 지탱될 수 있었거늘, 그 사람 덕분에 그녀의 눈에 보이지 않았던 하나의 궁핍이 도리어 그 사람의 자리에 숨어있었던 것이다. 그 사람은 그녀의 삶에 합리성을 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해할 수 없다. 그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가. 그 사람은 어떻게 그녀를 사랑에 빠지도록 만들 수 있었는가. 그 사람은 어떻게 그렇게도 곱게 웃을 수 있는가. 그녀는 그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 사람의 웃음은 홀로 다른 모든 것들을 이해시키고 납득시켰지만, 정작 그 웃음에 대해서만은 모든 앎이 불충분하다. 그녀의 세계의 모든 결핍을 메우던 그 사람의 자리에 구멍이 나고, 모든 의미들이 그 구멍으로 빠져나가 버린다. 어떤 것도 그 사람의 신비로운 광채를 설명해주지 못한다. 아무것도 그 자리에 난 구멍을 틀어막지 못한다. 그래서 그녀는 더 알고 싶다. 알고 싶어 참을 수가 없을 정도다. 그러나 무엇이 사랑을 일으켰는지, 그 사람의 무엇이 그녀를 사랑으로 끌어들였고 그녀의 사랑을 지탱했는지, 그녀는 끝내 붙잡을 수도 알 수도 없을 것이다. “네가 내게 입 맞추더라도 / 네가 나를 안아주더라도 / 나는 모르는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는 / 네 얼굴을 난 읽어낼 수 없어.” (「Believe」.)

그녀는 그 사람이 무엇을 보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심지어는 서로 가까이에서 눈을 맞출 때마저, 그녀는 자신을 향해 있는 그 눈이 바라보고 있는 것이 정말 자신인지를 알 수 없다. 그녀가 직접 그 사람의 얼굴을 관찰하고 있을 때에도 그렇다. 그녀는 그 사람의 눈을 보면서도 그 사람의 눈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보고 있다는 그 사람의 눈을, 그녀는 알 수도 가질 수도 없다. 그 눈은, 그 눈을 찾는 그녀의 시선을 빠져나간다.

알고 싶지만 알 수 없다는 그 갈증은 불신으로 옮겨간다. 그녀가 그 사람을 모른다면, 그녀를 사랑한다는 그 사람의 말을, 그녀는 어떻게 믿을 수 있을 것인가? 그녀가 그 사람의 사랑을 믿을 수 없다면, 그녀는 어떻게 그에게 자신의 사랑을 전할 수 있을 것인가? 그녀는 사랑을 받지도 주지도 못하는 (「X」.) 높이에 닿았다. 그녀의 세상을 의미들로 채워준 신 같은 그 사람을, 그녀는 가지지 못했다. 갖지 못했기에 믿을 수 없다. 신에 대한 불신으로 그녀는 무너진다. 「Believe」의 마지막 50초 동안 카코포니는 여러 겹의 목소리들을 겹쳐서 들려줄 것이다. 한 목소리는 길게 모음을 발음하며 신음한다. 당신을 믿고 싶다고 읊조리는 다른 목소리가 그 신음 뒤에 바짝 따라붙는다. 이 읊조림은 다시 두 갈래로 갈라진다. 그 뒤로 낮고 두껍게 왜곡된 목소리가 “I can’t control myself”라고 중얼거린다. 마지막으로 “I don’t have a god”이라고 노래하는 여린 목소리가 오른쪽에 덧붙는다. 그녀는 사랑을 가지지 못했고, 그 사람과 그 사람이 채워준 경이로운 의미들을 믿고 싶었지만 믿을 수 없었다. 그 사람의 표정이든 말이든, 그것이 사랑에서 나온 것인지 아닌지 그녀는 결정할 수 없다. 그녀는 그 사람의 표정과 말의 의미를 식별하지 못한다. 끝없이 다른 많은 의미들의 가능성을 생각해내고는, 그 불확정적인 의미들 사이를 떠돈다. 「believe」의 끝 부분에서 카코포니의 목소리가 여러 갈래로 갈라져 겹치듯, 그녀의 생각도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겹쳐들 것이다. ‘저 사람은 날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아닌지도 몰라. 저 사람은 날 안아주지만, 저 사람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닌지도 몰라.’ 그녀는 그런 생각들을 멈출 수 없다. 그녀가 읽어내는 의미들이 하나로 결정되지 못하고 퍼져가는 탓에 그녀는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고, 그런 탓에 스스로를 다스릴 수 없다.

 

ㄷ.

카코포니는 마치 성우처럼 목소리를 다룬다. (어쩌면 가수들은 모두 성우들인지도 모른다.) 「X」는 체념한 듯 기운 없는 목소리와 마치 분을 삭이듯 한을 털어놓는 목소리를 번갈아 들려준다. 카코포니의 목소리를 통해 청자는 그녀의 감정을 맞닥뜨린다. 카코포니의 목소리가 왜곡될 때 그녀는 불안해하는 듯하고, 카코포니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질 때 그녀는 못내 원망에 떠는 듯 보인다. (「Believe」.) 카코포니의 연기는 『夢』을 끌고 가는 이야기의 몸체다. 행복에 겨운 설렘에서부터 바닥 모를 불안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감정은 가파른 궤적을 그리며 널뛴다. 그 궤적이 변곡점에 닿을 때마다 카코포니의 목소리도 매번 크게 변한다. 때로는 힘없이 한숨을 내쉬고, 때로는 울먹일 듯 탄성을 내뱉고, 때로는 잔뜩 힘을 실어 절규한다.

앨범이 재생되는 동안, 카코포니는 각 장면들마다 어울리는 소리들을 골라낸다. 높은 소리들이 정신 사납게 박자를 쪼갠다면, 거친 글리치가 달라붙어 곡을 어지럽힌다면, 아마 그것은 그녀가 위태롭다는 신호일 것이다. 「타히티」를 여는 기타 아르페지오와 「Tu me dis」를 여는 기타 아르페지오는 각각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두 트랙이 노래하는 그녀의 마음이 전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타히티」가 온통 밝은 음색의 건반과 따스한 팔세토 멜로디로 특징지어진다면, 「Tu me dis」는 공포 서린 노이즈와 비명 같은 고함으로 특징지어진다.

때로 카코포니는 가사에 어울리지 않는 소리들을 내며 노래를 어그러뜨린다. 「귀환」이 그랬다. 특히나 2분 40초에서부터 3분 5초에 이르기까지, ‘귀환’은 모종의 부조화를 겪었다. 그것은 글과 소리 사이의 부조화, 또는 말해진 내용과 말하는 목소리 사이의 부조화다. 가사는 사랑에 대한 기대로 가득했다. 그녀는 (다시) 다가올 사랑을 기분 좋은 바람과 향기로서 느꼈다. 하지만 그 사이에 들렸던 소리들의 분위기는 그런 종류의 설렘과는 반대되는 것이었다. 북소리와 더불어 모든 음향적 장치들이 바짝 긴장감을 당겼다. 카코포니의 목소리도 그랬다. 거세어진 목소리는 마치 무언가를 토해내고 게워내듯 그렇게 내뱉어졌다. 「Tu me dis」와 「침묵의 노래」에서 카코포니는 다시 부조화를 연출할 것이다.

「귀환」의 부조화는 꺼림칙하고 조금은 무섭기까지 한 소리들과, 그런 기분 나쁜 예감들에는 철저히 무관심한 가사 사이의 이질성이었다. 그러나 이제 가사도 그 불길한 느낌들을 무시한 채로는 쓰이지 못할 것이다. 이미 「X」에서부터 그랬다. 이제 그녀의 이야기에도 충분히 기분 나쁜 어휘들이 기입된다. 이를테면 살인이라든가 끝이라든가 포기라든가 하는 어휘들. 앨범의 제목인 “꿈”이 바로 그런 어휘들과 함께 적힌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Tu me dis」.) 꿈에서 깨어나듯, 연애는 끝난다. 언젠가 그 사람은 그녀에게 “나는 너와 함께 살아가는 꿈을 꿔 Je rêve avec toi de faire ma vie”라고 말했다(“as/a dite”). 노래는 언젠가부터 시제를 바꾼다. 그때부터 그 사람은 달리 말한다(“dis”). “나는 너 없이 살아가는 꿈을 꿔. Je rêve sans toi de faire ma vie.” 곧이어 카코포니는 “Tu me dis”와 “Tu me tues”를 연이어 뇌까리면서, “dis(말하다)”와 “tues(죽이다)”를 비슷하게 발음할 것이다.

이제 그 사람은 그녀의 사랑을 원하지 않는다. 그 사람의 몇 마디에 연애는 끝난다. 카코포니는 절규한다. 네가 나를 죽인다고. 카코포니의 목소리로 재현되는 절규는 누구의 진술인가? 그녀의 진술인가 그 사람의 진술인가? 절규는 그녀에게 소리치는 그 사람의 것인지도 모른다. 곧, 더는 그녀의 갈증을 견뎌낼 마음이 없는 그 사람의 절규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Tu me dis”의 “너”는 그 사람일 것이고 “Tu me tues”의 “너”는 그녀일 것이다. 또는 반대로 어쩌면 절규는 그녀의 것인지도 모른다. 곧, 채울 수 없는 갈증에 시달리다 끝내는 내쳐지고 있는 그녀의 호소일지 모른다.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는 그 사람의 말은 그녀에겐 마치 사형의 언도처럼 들렸을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Tu me dis”의”너”도 “Tu me tues”의 “너”도 모두 그 사람일 것이다. “dis”와 “tues”가 비슷하게 발음되는 만큼, 그녀에게 그 사람의 말은 못내 죽음과 비슷했을는지도 모른다.

요컨대 그녀는 자신의 신을 죽였거나, 신의 말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다. 카코포니는 “신”과 “죽음”을 은유로서 적었겠지만, 그녀에게는 그 은유들이야말로 자신이 겪은 고통의 현실성의 표상일 것이다.

「Tu Me Dis」의 마지막 문장은 “나는 살인자야 Je suis une tueuse”라는 독백이다. 이 문장에서 살인자는 여성형 명사 tueuse로 쓰인다. 이 노래에서 그 사람에 대해 그녀가 쓰는 삼인칭 대명사는 Il이므로, 이 문장의 언표주체는 그녀일 것이다. 위에서 제안한 “Tu me dis”와 “Tu me teus”에 대한 두 가지 독법에 따라, “Je suis une tueuse”에 대해서도 두 가지 독해가 가능할 것이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의 갈증으로 그 사람의 목까지 말려 버렸음을 자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그 사람을 죽이고 있다는 그 사람의 말을 부인할 힘을 잃었는지도 모른다. 또는 그녀는 자신의 갈증이 자신의 사랑을(혹은 연애를) 죽게 내버려두었음을 자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사람이 변한 것이 자신의 갈증 탓이라면, 그 사람이 그토록 잔인하게 말한 것도 자신의 갈증 탓이리라고 되뇐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진술에서 무력감과 자책이 뒤섞이는 그 때, 카코포니는 돌연 16세기 다성 성가만큼 경건한 합창을 들려준다. 신이 그녀의 갈증 탓에 죽어버린 뒤에야, 또는 그녀가 신의 말 때문에 죽어버린 뒤에야, 노래는 얄궂게도 거룩하고 성스러운 분위기를 두른다. 이것이 「Tu me dis」의 부조화다.

 

ㄹ.

그 뒤로 세 곡은 다시 새로울 것 없는 이별 이야기다. 원망하고 호소하다, 그리움에 밤을 새고, 결국 지친다. 지쳐가면서도, 가벼워진다. 한 겹 한 겹 쌓여가는 전자음 노이즈들, 신경질적이고 스산한 현악기 소리들이 지나가면, 화성에 있어서나 음색에 있어서나 갑작스레 부드러워진 두 곡들이 뒤따를 것이다. 새로울 것 없이 차분한 기타팝 발라드와 함께 그녀의 동요와 괴로움도 빠르게 수그러드는 듯하다. 「I Am Sorry」에서 카코포니의 목소리는 힘을 잃었을지언정 어느 때보다 편안하게 들린다. 「제발」을 열었던 피아노 코드에 비해서, 「I Am Sorry」를 여는 피아노 코드는 한결 가볍다. 「제발」의 마지막에 들린 날카롭던 스트링과는 달리, 「I Am Sorry」의 스트링은 한결 여리다.

 

ㅁ.

이내 분위기는 다시 묘해진다. 그녀는 다시 사랑을 회상한다. 「Fate」는 그 사람을 만나는 동안 넋을 잃고 있었다는 그녀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짧게 짤랑이는 윈드차임, 그 소리를 흉내 내는 신스, 급변하는 리듬, 그리고 그 뒤에서 작게 소리를 내는 관악기가 꿈결 같은 신비감을 짙게 몰고 온다. 악기들이 구성한 신비감을 무대로, 가사에도 다시 한 번 꿈이 기입된다. “넌 내 이름을 잊을 수 있겠지만 [……] 난 아직도 꿈을 키워가고 있어.” 가사는 소리들을 따라간다. 그녀는 꿈을 꾼다. 하이햇이 사납게 쪼개져 가면, 그녀의 꿈도 복잡하게 구체화된다. 꿈속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그 사람의 심장에 닿을 만큼 깊게 뿌리내릴 것이다. 꿈속에서만은, 그녀가 그 사람의 운명을 쥐고 흔들 것이다.

여기에서 이 꿈을 어떤 순서에 따라 생각해야 하는가를 문제 삼을 수 있다. 가장 간단하게는, 「Fate」가 「I Am Sorry」의 다음 곡이니, 이 꿈은 그녀가 그 사람과의 이별 후 지친 마음이 포기했던 것에 대한 꿈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꿈의 시간적 위치를 트랙들의 단선적 순서에 따라 결정하자면 그렇다. 꿈속에서 그녀는, 그 사람이 묻고 구하는 모든 것이 곧 자신이라고 말한다. 「Believe」에서는 그 사람이 어디를 보는지 도통 알 수 없었던 그녀지만, 모든 일이 지나간 뒤 다시 꿈속에서 본 그 사람의 눈길은 오직 자신만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녀가 연애를 하는 동안 이룰 수 없었던 소망이 이별이 완료된 후에야 꿈속에서 성취됐다고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다르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가령 이 꿈은 「제발」에서 「온 밤 (feat. 유승우)」으로 넘어가는 그 사이의 시간에 대한 꿈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이는 「제발」에서 거칠게 뒤엉키던 소음들과 「온 밤 (feat. 유승우)」의 차분한 어쿠스틱 기타사이의 이질감을, 그 두 곡의 소리 사이에 「Fate」의 전자음들을 보충함으로써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Fate」의 소리들은 「제발」보다는 유순하되, 그 질감과 음색에서는 「온 밤 (feat. 유승우)」보다 복잡하다. 그러니 이 꿈이 재현하는 그녀의 감정이 7번과 8번 트랙 사이로 되돌아가 놓인다고 생각한다면, 「Fate」의 소리들은 그 두 곡 사이에서 느낄 수 있었던 갑작스러움을 뒤늦게나마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아예 차례를 바꿔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달리 적자면, 이 꿈이 그 사람과 이별한 뒤에 꾸었던 꿈이라고 해도, 그이별이 「Tu me dis」에서 있었던 이별이 아니라 「귀환」 이전에 있었던 이별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꿈은 그녀가 그 사람에게로 다시 돌아가기 전에 꾸었던 꿈일 것이다. 『夢』에는 직접 적히지 않았지만, 그녀가 그 사람에게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면 그것은 그녀가 이미 적어도 한 번 그 사람을 떠나온 적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에게로 돌아가는 길에서부터 그녀가 그토록 극적인 고양감을 느꼈다면, 다시 만나자마자 그녀가 그렇게나 빨리 그에게 빠져들었다면, 그것은 그녀가 이 꿈을 꾸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夢』의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그 사람의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들어가 그 사람을 사로잡는 꿈을 꾸었다면, 「귀환」에서 그녀가 “그대도 날 기다릴 테니”라며 환상을 품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꿈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ㅂ.

그녀의 수기가 끝나간다. 그녀는 이별을 겪었다. 이제 그녀는 지나간 사랑을 기록하기로 한다. 그 날들을 돌아보며 자신의 과거를 위로하고, 미래에도 그 날들을 기억할 수 있게끔 시와 노래로서 남겨두려 한다.

「침묵의 노래」는 낮은 소음들로 시작한다. 꼬리를 무는 소음들 위로 더 높은 소음이 덮쳐와 쓸려나가고 나면, 그녀가 말을 시작한다. 카코포니는 두 겹의 목소리를 들려줄 것이다. 하나는 숨소리처럼 얇게 내뱉어지는 목소리고, 다른 하나는 굵고 낮게 변조되어 웅얼거리는 목소리다. 처음에 들렸던 낮은 소음들은 잠시간 반복될 것이다. 그녀가 “곱게 장식했어”라고 말할 때, 저음역의 전자음이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두껍게 깔릴 것이다. 맑고 높은 금속성의 소리들 한동안 잘랑이고, 그 뒤로 높은 전자음과 스네어가 날카롭게 찍힌다. 때려 친 스네어의 리버브가 길게 늘어진다. 그 잔향을 타고 그녀는 노래한다. 노래하고 읊조린다. 카코포니는 노래 소리와 말소리를 번갈아 들려줄 것이다.

노랫소리는 불어난다. 증식된 노래들이 어지럽게 서로를 침범한다. 그에 따라 그녀의 말소리도 점점 알아들을 수 없게 되어간다. 소리들은 지저분하게 달라붙어 소음들의 덩어리가 된다. 그 소음 덩어리는 점차 커져가다 예상치 못한 때에 돌연 멎을 것이다. 그 커진 소음의 급박한 중단 뒤로, 조금 더 작고 조금 더 꺼림칙한 기계음이 잠시 울린다. 그렇게 노래는 끝난다.

「침묵의 노래」의 부조화는 이렇다. 그녀는 지난날들을 “곱게” 장식한다고 말하지만, 소리들은 갈수록 지저분해져만 간다.

그녀는 기억들을 보존하고자 한다. 그녀가 지난날들을 잊지 않으려 기록한다는 것이 「침묵의 노래」에 대한 카코포니의 해설이다.2 그러나 카코포니가 적지 않은 것이 있는데, 그녀가 자신의 기억을 ‘깨끗이 씻어내어’ 보존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달리 적자면 그녀가 기억들을 선별하려 한다는 것이다. 지난 날 그녀를 괴롭혔던 미운 마음들을 다 흘려보내고 나면, 예쁜 추억들만 남을 것이다. 선별된 기억들은 그렇게 고운 포장지에 쌓여 장식될 것이다. 그런데 소리들은 그녀의 선별을 방해한다. 소음들은 마치 그녀의 고운 포장지에 흉을 내고 얼룩을 묻히듯 들러붙는다. 가사와 소리 사이의 부조화는 무언가가 해결되지 못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새겨놓는다. 그녀가 씻어내려 했던 미운 마음들, 곧 그녀가 누락시키고자 했던 못난 기억들은 아마 잔존할 것이다. 고운 포장지 바닥에 묻은 작은 티끌처럼 잔존할 것이다. 소음들은 그 잔존을 증언하듯 난폭하게 쌓이고 다급하게 멎는다.

 

ㅅ.

이제 마지막이다.

『和』의 마지막 두 곡에서 그녀는 진술했다. 그녀는 지난 사랑의 기억 속에서 멈추었다. 그녀는 자신이 묶여있는 그 지난 시간으로 거듭해서 돌아갔다. 하지만 그녀는 그 반복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었고, 그럼으로써 남은 날들을 살아가며 나아갈 수 있었다.

「Parallel World」에서 그녀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과거를 대하며 진술을 시작한다. 준비하지 못한 채 사랑했고, 그 안에 머물고자 했던 시간도 지나가 버렸다. 사랑은 불완전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마치 불완전한 과거를 포기하려는 듯한 제스쳐를 보인다. 그 대신 그녀는 새로운 환상 속에서 보충적인 만족을 취한다. 그녀는 보다 완전한 세계를 상상한다. 그리고 그 상상 속 세계에서 이상적인 연인들의 행복을 상연한다. 카코포니는 “평행 세계”라는 상투적인 용어로 그녀의 환상을 기술한다. 환상의 시나리오에도 상투적인 어휘들로 기입된다. 깨지지 않는 약속, 진실, 영원 같은 것들. 글로켄슈필 멜로디와 아이들의 말소리가 환상의 배경음이 되어준다.

이대로 끝난다면, 『夢』은 환상 속에서만 살아남아 성공하는 사랑의 이야기로 남을 것이다. 돌아보고 싶지 않은 과거로부터 도피가 곧 『夢』의 꿈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진술이 아직 남아있다. 그녀는 또 다른 제스쳐를 보인다.

2분 50초부터 십오 초 정도, 다시 소음이 들려온다. 쇳소리를 내는 작은 기타 노이즈, 그리고 마치 낡은 문이 열릴 때의 소리처럼, ‘끼이익’ 하는 소리. 이 소음에 대해, 환상 속 완전한 이상에 그녀의 삶의 불완전성이 겹쳐진다는 식의 서술도 가능할지 모른다. 마지막 50초 동안, 그녀는 언젠가 자신의 환상이 불완전한 삶에 포개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삶이 완결될 즈음에, “모든 세계들이 포개어지는 곳”에서, 지난 사랑을 키워냈고 이끌었고 되살렸던 환상이 그녀가 씻어내려 했던 지난날들과 화해할 것이다.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이 이미 그 사람을 떠나왔음을, 그러므로 이미 끝난 사이였음을 받아들일 것이다. 또 그럼에도 자신이 그 사람을 사랑했었다는 것 또한 받아들일 것이다. 그녀는 과거의 얼룩과 화해하는 듯 보인다.

그곳에서 『夢』의 마지막은 『和』의 마지막에 포개어진다. 서로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녀는 바로 그 불가해성(이해할 수 없음)을 사랑으로 기억한다. (“내가 이유 없이 사랑했던 너”, 「Parallel World」.) 『和』와 『夢』의 마지막 모습은 그 불가해성을 품에 안은 그녀의 모습이다.

그 마지막 모습에서 『夢』은 보통의 연애담이다. 『夢』은 사랑의 불가해성 또는 사랑으로서의 불가해성으로 (다시) 수렴한다. 『夢』의 내용은 그녀가 겪어낸 불가해성의 양상들이다. 만약 『夢』에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이해할 수 없었음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하는 물음일 것이다. 이 앨범의 마지막 1분, 그녀는 그 불가해성을 제거하려 하거나, 봉합하려 하거나, 원망하려 하지 않고, 그 불가해성에서 달아나려 하지도 않는다. 그것이 그녀의 강함이다.

  1. 나는 「로제타」를 따라 이 이야기들의 주인공을 “그녀”라고 부를 것이다.
  2. 『夢』에 대한 카코포니의 라이너노트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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