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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amanda, 『Our Lair』

『Our Lair』는 앰비언트 듀오 살라만다Salamanda의 첫 번째 EP다. 우만 서마Uman Therma가 살라를, 예츠비Yetsuby가 만다를 맡고 있다고 한다. 살라와 만다가 각각 우만 서마와 예츠비라는 이름으로 씬에 등장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둘은 각자 서울의 언더그라운드 베뉴들에서 디제잉을 해오고 있으며, 지난겨울 신생 크루 Fume의 『WINTERIAN RHAPSODY』 컴필레이션 시리즈에 참여하기도 했다. 만다는 올해 초 첫 정규 앨범을 냈다. 그녀들은 올 봄부터 살라만다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사운드 클라우드에 작업물들을 공개했으며,1 지난 9월부터 자신들의 라이브 셋으로 공연을 해오고 있다.

『Our Lair』는 살라만다가 만든 여섯 개의 앰비언트 트랙과, 보다 하우스에 가까워진 두 개의 리믹스 트랙들로 구성되었다. 아래의 글은 1번에서 6번까지 살라만다의 트랙들에 대해 다룬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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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nga」는 서서히 커져가는 목소리와 함께 시작한다. 올망졸망한 퍼커션들 사이로 넓게 흩어지는 목소리의 잔향이 앨범의 첫인상을 만든다. 모음만을 발음하는 그 목소리의 음색은 만다의 앨범 『Heptaprism』의 첫 곡을 여는 목소리와 언뜻 비슷하지만, 곡들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Jenga」의 출발은 더 차분하고, 더 조심스럽다. 거기에 목소리와 함께 길게 울리는 잔향을 남기는 공gong 소리가 신비감을 입힌다. 그 분위기는 꽤나 길게 계속되다, 1 분 40초를 넘어가려 할 때 쯤 잦아들 것이다. 잠시 조용해질 것이고, 그 뒤 곧바로 그 정적을 헤치며 밟히는 킥에 맞추어 긴 서스테인의 저음이 작은 소란을 몰고 온다. 이제 「Jenga」는 조금 더 과감해진다. 어쩌면 더 장난스러워진다고도 쓸 수 있을 것이다. 빠르게 짧게 때리는 퍼커션 소리가 간헐적으로 울릴 것이고, 조용히 들어오는 관악기의 소음이 불안과 긴장을 끌어올릴 것이다. 처음에 들었던 목소리는 마지막에는 조금 더 서늘하게 들릴 것이다.

『Our Lair』 속의 다른 트랙들에서도 「Jenga」에 감도는 분위기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조심스럽지만 때로는 조금씩 소란스러우며, 때로는 장난스럽고 또 때로는 스산하다. 다만 「Jenga」도, 『Our Lair』도, 이렇게 몇 가지 형용사들을 열거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을 복잡한 분위기를 품고 있다. 살라가 작업했다는 커버 아트는 앨범이 들려주는 인상들을 탁월하게 그려내어 보여준다. 『Our Lair』가 펼쳐내는 공간은 물가다. 「Jenga」의 서두에서부터 들리는 맑은 음색의 물방울 소리가 넌지시 알려주듯, 작은 소리도 또렷하게 들을 수 있는 조용한 물가다. 수평선에 해가 걸려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바닷가일 것이다. 해가 저무는 중이라면 점점 추워지는 때일 것이고, 해가 떠오르는 중이라면 아직 추울 때일 것이다. 살랑이듯 부는 바람이 작은 물결들을 만든다. 이곳은 우리가 모르는 곳이다. 해가 보이지만 하늘은 어둡고, 도리어 나무와 풀은 햇빛을 받아 노랗게 붉게 물들었다. 익숙한 동물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움직인다. 앨범의 표제에 따르자면, 우리가 모르는 이곳이 우리가 숨어들어 쉴 수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마주할 수 있을 법한, 그때그때 달라지는 정경들을, 살라만다는 소리들로 옮겨놓는다.

단편적으로 주어지거나 떠오른 감각의 그리 분명하지만은 않은 인상을 소리들로 재현하면서 자유롭게 음향적 색채감을 연출하려 노력하는 음악들의 회화적 성격을 인상주의라고 부른다면, 『Our Lair』는 인상주의적이라고 할 만한 앨범이다. 때때로 드높게 솟아오르는 파도를 보여주는 드뷔시의 바다와는 다르게, 살라만다의 바다는 낮게 일렁이던 너울이 백사장에 닿아 부서지는 장면을 보여준다. 언젠가 드뷔시는 “주변에서 들리는 모든 소리들”을 “음악적으로 재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2 살라와 만다는 드뷔시가 가지지 못했던 것을 통해 바다를 그려내며 드뷔시의 믿음을 증명했다. 드뷔시 시대의 음악가들은 귀로 들은 소리를 녹음하고 편집하여 원하는 때에 삽입할 수 있게 해주는 기술적 수단들을 손쉽게 활용할 수 없었지만, 살라만다는 녹음된 파도 소리로 해안가를 펼쳐낼 수 있었다. (「Ocean Puts a Fake Spell On Me」.) 물론 그녀들이 녹음된 소리만을 그대로 들려주는 데에서 그친 것은 아니다. 이들이 들려주는 것은 해안가에 대한 자연주의적인 묘사가 아니다. 그녀들은 해안에서는 들을 수 없는 바닷속 소리들을 상상화를 그리듯 들려준다. 처음부터 부드럽게 퍼져가는 신스가 다른 모든 소리들을 감싸고, 그 가운데에서 퍼커션 소리들 사이의 주기는 짧아지기도 하고 길어지기도 한다. 이 소리들의 느긋한 반복이 부서지는 파도와 함께 들릴 때, 나는 이 곡이 해수면 밑의 움직임들을 추상하여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반복은 이 앨범의 또 다른 성격을 구성한다. 살라만다는 자신들이 20세기 미니멀리즘의 영향을 받았다고 소개한다. 미니멀리즘에 대한 참조는 『Our Lair』에서는 소리들의 반복과 반복 중에 구성되는 다채로움으로 드러난다. 반복성을 특히나 쉽게 알아챌 수 있는 트랙들은 「No Vacation」과 「Wind」다. 「No Vacation」에서는 통통 튀는 듯한 말렛과 저역대에서 찍히는 리듬 파트의 반복이, 「Wind」에서는 짧게 하강하는 말렛 멜로디의 반복이 곡을 끌고 간다. 「Wind」의 말렛 패턴은 점차 조금씩 음이 첨가 되는 식으로 변형을 거듭하며 곡의 시작부터 끝까지 되풀이된다. 반복과  함께 수행되는 변형은 (또는 변형과 함께 수행되는 반복은) 지난 세기 미국 미니멀리즘의 특징이었다. 서로를 수반하는 그 반복과 변형을 토대로, 살라와 만다는 여러 세세한 음향적 장식들을 ─ 가령 길고 무겁게 이어지는 신스나, 빠듯하게 쪼개지는 퍼커션, 단발적인 심벌 소리 등을 ─ 과하지 않게 덧붙여놓는다.

앰비언트 음악도 미니멀리즘 음악도, 극적이고 화려한 전개를 겨냥하는 음악이 아니다. 『Our Lair』도 마찬가지다. 이 앨범의 곡들은 더 중요하게 강조되는 국면과 그 주요 국면을 보조하거나 준비하는 국면들로 나뉘지 않는다. 곡들의 모든 국면들은 서로 동등하다. (물론 그렇다고 곡 안의 국면들이 꼭 서로 비슷비슷하기만 하다는 것은 아니다.) 국면들 사이의 동등성은 어느 정도건 진행상의 단조로움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이 점은 이 장르들의 고유한 매력을 결정하는 특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특징이 『Our Lair』를 단순히 단조롭기만 한 앨범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No Vacation」의 리듬 패턴은 댄스 리듬으로서도 어색하지 않고, 후반부에서 쓰이는 플루트 음색의 멜로디는 부드러운 느낌을 주면서도 곡을 더 흥겹게 해준다.

마지막 두 곡인 「Atique」와 「Always Cloudy Inside」는 유독 스산한 느낌이 짙게 감도는 곡들이다. 「Atique」는 길고 꽉 차게 울리는 전자음들을 중첩시키며 나아간다. 소리들은 겹쳐들 때마다 긴장감을 만든다. 2분 30초를 넘어가면서부터 곡은 강한 저음을 30초 정도 끌고 가다 마무리될 텐데, 이 무겁게 내려앉은 저음이 더 팽팽하게 긴장을 당길 것이다. 『Our Lair』는 이 긴장을 품은 채 마지막 곡으로 향한다. 「Always Cloudy Inside」는 잘 들리지 않을 만큼 작고, 낮은, 그리고 꽤 공격적인 피아노 소리를 감추고 있는 곡이다. 떠다니듯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는 신스들과 그 밑에 감춰진 피아노 사이의 이질성이 「Atique」의 긴장을 이어받는다. 곡은 갈수록 조금씩 시끄러워지며, 이따금씩 소리를 부자연스럽게 중단시켰다가 불연속적으로 다시 시작시키는 식의 단절을 들려준다. 4분이 지나면 자그맣게 글리치 노이즈들까지 덧붙으며, 거기에 색소폰 선율이 따라붙어 혼란을 키운다. 마지막에 가서야 피아노는 다른 소리들에 묻히지 않고 스스로를 드러낼 것이며, 모종의 불안감을 남기며 『Our Lair』의 문을 닫을 것이다.

『Our Lair』는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앨범이었다. 『Our Lair』는 반복 중의 변형을 방법으로 삼아 스스로를 펼치고 꾸미면서, 다채로운 인상들을 시시각각 새로이 덧칠해갔다. 살라와 만다는 갖은 음색의 소리들을 얽어 여러 가닥의 분위기들을 자아내고, 그것들을 이 앨범에 엮어놓았다. 앨범 커버의 흰 바탕 정중앙에 그려진 픽셀 아트를 처음 볼 때, 나는 그것이 마치 십자수 도안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앨범에 수록된 곡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해본다. 이 앨범이 마치, 몇 가지 모양의 패턴들을 여러 색의 실로 자유롭게 수놓아 그린 자수 작품 같다는 생각. 아마 어떤 무늬들은 둥글고 반듯한 모양이겠고, 또 어떤 무늬들은 조금씩 비뚤고 모난 모양이겠다. 어떤 무늬들은 어두운 색으로 채워지겠고, 또 어떤 무늬들은 밝은 색으로 채워지겠다. 그 무늬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1. 이들이 첫 번째로 공개한 트랙은 이 앨범과 같은 이름의 트랙이었다.
  2. 드뷔시의 1910년 인터뷰, 김주원, <드뷔시의 음악비평 연구>, 《음악이론연구》 제 25집 (36-73쪽), 2015, 48쪽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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