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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의 긴 투쟁을 돌아보며

사진 출처 : 경향신문

2007 4, 기타 제조업체 콜트콜텍은 생산 공장을 인도네시아와 중국으로 이전하며 국내 공장을 폐쇄하고그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을 해고했습니다. 당시 콜텍은 꾸준히 흑자를 기록하고 있었기에, 2009 서울고등법원은 불필요한 해고였다며 콜텍 기타노동자들 해고에 대해 무효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2012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해당 판결을 파기환송하면서, 사측도 덩달아 노동자들을 다시 해고했습니다. 당시 내려졌던 대법원의 결정이 박근혜 정권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이의 재판 거래 대상이었다는 정황은 작년에야 드러났습니다.

노조의 복직 투쟁은 올해 봄까지 계속됐습니다임재춘 노동자가 콜텍 본사 앞에서 42  단식 농성을 한 끝에콜텍 노사는 13 만에 잠정 합의문에 서명했습니다. 13, 4464너무도  세월입니다. 콜트와 콜텍의 기타노동자들은   세월을 거리에서 투쟁하며 보냈습니다. 콜텍의 잠정 합의 이후에도, 콜트의 노동자들은 아직도 남아 그보다 더 길어질 투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투쟁이 단지 콜트와 콜텍에 대한 투쟁이기만 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정리해고를 예삿일로 취급하는 사회와 노동자들의 삶을 판돈으로 삼았던 법원에 대한 투쟁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음악은 음악가의 머릿 속에서 홀로 튀어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악기로 무엇을 하려건 간에그에 앞서 악기를 만드는 일이 먼저겠지요. 음악과 관련한 제조업 분야들에서의 노동과 생산은 음악의 생산 또는 재생산의 모든 단계들에 관여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음악계” 또는 “음악 생태계” 같은 관념들은 음악 관련 산업의 노동과 생산을 포괄하는 관념들이어야  것입니다. 그렇기에 콜트콜텍의 기타노동자들이 겪었던 곤란은 또한 우리 음악계의 곤란으로도 이해되어야 합니그리고 그것은 실제로도 그렇게 이해되었지요. 오랫동안 여러 인디 음악가들이 콜트콜텍 노동자들을 찾아가 그들과 연대했습니다. 우리 음악계의 구성원들은 앞으로도 함께 그 연대의 경험을 기억할  있어야  것입다.

서교동의 라이브 클럽 빵에서는 오랫동안 콜트콜텍 수요문화제가 열렸습니다.1 콜트콜텍 수요문화제는 투쟁중이던 노동자들과 인디 음악가들이 함께하는 연대의 장이었습니다아래의 영상은 소히의 콜트콜텍 수요 문화제 공연 영상입니다. 노래의 이름은 「한강 송전탑 위엔 사람이 살았어」입니다. 소히는 2008년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한강 송전탑 고공 농성을 보고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합니다.2

콜텍 노동자들의 복직 투쟁은 2010년대가 오기  시작되어 2010년대가 저물어갈 무렵에야 끝났습니다. 콜트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연말에 있을 결산을 앞두고 지난 십 년을 되짚어보며, 그들의 긴 투쟁을 돌아보는 것 또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그래서  글을 씁니. 너무 늦은 글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임재춘 노동자는 자신의 단식 농성이 마지막 단식 농성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4464지독히 무거운 시간이지만날짜를 세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바람을 기억하는 일일 것입니다.

  1.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자취를 열람하실  있습니다.
  2. 이 노래에 대해, 소히는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서정민갑의 글에서 인용했습니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자신들을 부당 해고한 회사에 맞서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고자 고압전류가 흐르는 송전탑 위에 올라갔고 그 탑 옆에서 작은 공연과 다큐멘터리 상영회를 가진 것이다. 내게 그 광경과 기억은 참 특별했다. 서늘한 날씨였는데, 위에 올라간 분들의 마실 것과 먹을 것을 긴 줄을 이용해 공급했고 나머지 분들은 옆의 큰 천막에서 생활하고 계셨다.

    내 노래를 듣는 이는 서너 명만 빼고는 모두 콜트 노동자들이었고, 공연 하는 곳 옆을 동네 주민들이 조깅이나 산책을 하며 지나갔다. 그렇게 답답한 일을 겪은 사람들은 어디든 위로 올라가야 했다. 콜트콜텍 노동자뿐만 아니라 용산도 그랬고 쌍용자동차도 그랬다. 그래야 사람들이 봐주니까. 관심 가져주니까.

    송전탑 위에서 용산을 바라보는 걸 상상해 보았다. 점점 더 욕심내는 사람들 때문에 삶이 서글퍼진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울고 있는 것을…. 부자든 해고당한 사람이든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든 모두 한강을 보며 살게 되었지만 참 다른 삶이다. 우리는 마치 각자의 삶인 양 살고 있지만 교묘하게 뺏고 빼앗기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교묘함을 가리고 있는 것이 사회와 정부다. 그리고 가려진 장막 사이로 유유히 한강변을 운동하며 지나는 사람들 또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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