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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릿선발대』에 관한 생각들

 

김오키의 『스피릿선발대』와 『스피릿선발대 재해석』을 들으며 혼자 해 본 고민들을 글로 옮깁니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옮기느라 중언부언하는 글을 쓴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아주 무거운 낱말이 (그리고 그 낱말을 맴도는 온갖 예감들이) 첫 곡의 제목에 적힌다. 백현진은 그 낱말을 감추거나 에둘러 가려 하지 않는다. 그는 그 낱말을 또박또박 적나라하게 발음할 것이다.

있을 법한 이야기다. 실직하고, 폐업하고, 끝내 빚만 남는다. 있을 법한 리듬이다. 결혼한 뒤 실직하고 치킨집을 차렸지만 손님은 없었다는 이야기를 내뱉기까지, 백현진은 천천히 읊조린다. 하지만 이내 말은 빨라진다. 폐업부터 이혼까지의 이야기는 금방 지나간다. 삽시간에 무너진다. 이제 빚이 늘어간다. 그때부터 다시 말이 느려진다. 손 쓸 수도 없는 시간들은 느리게 지나간다. 그리고 주인공은 죽는다. 모든 소리들이 멎는다.

다시 소리들이 울린다. 처음에는 소음들이, 그 뒤로는 베이스가 들어오며 연주가 다시 시작된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뀐다. 고인의 친구가 조문을 온다. 빈소를 빠져나와 비틀거리며 친구는 말한다. 아무도 들어서는 안 될 말을 하듯, 아주 작은 목소리로, “죽긴 왜 죽어, 죽긴 왜 죽냐고.”

자살이라는 낱말이 마음에 걸린다.

이런 생각이 든다. 자살이라는 낱말을 노래의 모티프로 쓰는 것은 어쩌면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지 아닐까. 어렵게 취직했건만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잘린다. 가게를 냈지만 손님은 없다. 임대료는 매달 꼬박꼬박 나간다. 힘겹게 폐업을 결정한다. 주변 사람들이 떠나간다. 쌓인 빚을 갚을 길이 없다. 이 숨 막히는 상황을 (그것이 가상의 이야기 속 상황이라 하더라도) 음악적/서사적 장치로 기능하도록 두어도 괜찮은 걸까. 이 노래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자칫하면 그 상황이 단순히 노래의 구성을 위해 기용된 음악적 요소로만 이해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실직과 폐업을 단지 노랫말 속 에피소드로서만 수용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자살이라는 낱말에 엉킨 감정들까지 그저 노래에 대한 감흥으로서만 수용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것은 현실 속에서 주인공처럼 무너지고 내몰렸을 이들에 대한 무례가 아닐까.

반대로 이런 생각도 든다. 은유를 통해 이 낱말을 다른 낱말로 대체했다면,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무례한 일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이렇게 글자 그대로 적는 것이, 그리고 주인공을 내몰았던 상황과 주인공의 마지막을 가능한 한 분명하게 적는 것이, 주인공처럼 궁지에 몰렸을 현실 속 고인들에게 죽음을 더 엄숙하게 마주하는 방법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백현진이 주인공의 자살을 또박또박 발음했던 것은 오히려 필요한 일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이 노래를 들을 때, 철저하게 사실적인 노랫말 속 가상을 읽을 때, 오히려 그 때 현실 속에서 주인공처럼 무너졌을 이들이 어디까지 내몰렸는지를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마음에 걸리는 것들이 더 있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송경동 시인의 글을 약간 수정하여 노랫말로 썼다. 2014년에 쓰인 글이다. 그해 1월 캄보디아에선 한국계 기업 공장의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다 총을 맞았다. 죽은 이도 있었다. 송경동은 아주 자세히 적는다. 왜 127개 공장의 노동자들이 파업을 했는지, 그리고 한국 기업들이 어떻게 그 일에 연루되었는지, 그럼에도 한국인들은 얼마나 그 일에 무책임했으며 무관심했는지.

노래에서는 생략된 부분들이 있다. 송경동은 파업에 참여했던 노동자들의 이름을 기억하며 이렇게 쓴다. “나는 한국인이다 / 아니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 나는 송경동이다 / 아니 나는 송경동이 아니다 / 나는 피룬이며 파비며 폭이며 세론이며 / 파르빈 악타르다 / 수없이 많은 이름이며 / 수없이 많은 무지이며 아픔이며 고통이며 절망이며 / 구경이며 기다림이며 월담이며 / 다시 쓰러짐이며 다시 일어섬이며 / 국경을 넘어 선 폭동이며 연대며 / 투쟁이며 항쟁이다”1

나와 다른 이들이 같은 상황 속에 있다고 말하는 것, 나와 다른 이들이 처해있는 같은 상황을 이해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함께 행동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그것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행동들 중의 하나다. 노동자로서, 법원의 결정에서는 경영위기에 따른 정당한 정리해고라는 판결의 위세에 밀려 제 몫을 가질 수 없었던 이들로서, 사회의 부분으로 인지되지 못한 비-부분으로서. 함께 쓰러지고 있으나 이내 함께 일어설 것이라 말하는 것. 송경동과 파르빈 악타르는 다른 사람이지만, 송경동은 살아있고 파르빈 악타르는 죽임 당했지만, 송경동은 자신이 파르빈 악타르라고 쓴다. 그는 캄보디아에서 총을 맞지 않았지만, 자신이 그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사람이라고 쓴다. 그는 그렇게 적음으로써 자신과 고인을 한 집단의 정치적 주체로 선언한 셈이다. 우리는 그렇게 연대한다. 살아있는 내가 희생자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죽은 이들과 함께 투쟁하며 그들을 기리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 선언이 마음에 걸린다. “내가 희생자다”라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희생자들이 겪었던 죽음에 고유한 고통을 섣부르게 추상화하는 일이 아닐까. 그들에게 쏟아진 고통을 우리도 겪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죽은 이가 말할 수 없다면, 죽은 이가 겪은 고통에 대해서는 아무도 들을 수 없는 것 아닐까. 고인들의 고통을 우리가 말할 수 있고 들려줄 수 있다고 말해도 되는가. 우리는 그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2 없지 않을까. 내가 희생자다, 이와 같은 선언을 2014년에도, 2016년에도, 그리고 올해에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선언은 어쩌면 우리가 접근할 수 없을 희생자의 고통에 대한 무례가 아닐까. 어쩌면, 정말 어쩌면, 우리가 바로 희생자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의 투쟁을 위한 우리 스스로의 도취가 아닐까.

하지만 반대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어쩌면 희생자의 고통을 우리가 접근할 수도 없고 재현할 수도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은, 희생자의 죽음을 신비화하는 일은 아닐까.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죽은 이들에게 다가가 그들과 함께 투쟁할 수 있게 해주는 한 가지 길을 막아버리는 일 아닐까. 그렇다면 그것은 희생자들을 그들의 고통과 죽음 속에 또 다시 소외시키는 일이 아닐까.

가장 마음에 걸리는 곡은 『스피릿선발대 재해석』의 4번 트랙 「(아방가르드 박이 재해석한)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다. 아방가르드 박은 나레이션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각내어 흩뿌리고 그것을 복잡한 노이즈 속에 파묻었다. 나레이션은 어떤 때는 아주 또렷하게 들리지만 어떤 때는 아예 알아듣기조차 힘들다. 여기에 걸리는 점이 있다. 실제 희생자가 분명한 사례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을, 곡의 분열적인 구조에 맞추기 위해 이렇게까지 흩뜨려놓아도 되는가. 어떤 작/편곡 기법을 구현하기 위해 희생자의 죽음에 대한 애도와 연대 표명의 분명성이 포기되어도 되는가. 고 김용균 노동자 추모 앨범에 실린 삼각전파사의 「물결」을 들을 때에도 같은 생각을 했다. 노이즈들을 어지럽게 분산시키는 편곡에 맞추기 위해 애도의 글마저 어지러워진 것 아닌가. 이런 방식보다는, 적나라하지만 정확하게 자살을 기입하고 발음하는 「실직폐업이혼부채자살 휴게실 (feat. 백현진)」의 방식이 훨씬 낫지 않은가.

그런데 “자살”을 적고 발음하는 것도 이미 하나의 기법이지 않을까. 백현진이 죽기는 왜 죽냐며 안쓰럽게 뇌까리면, 그 뒤로 쓸쓸한 색소폰 연주가 따라붙는다. 치밀할 만큼 일관되게 분위기를 만들어간다. 이들은 죽음을 작품의 모티프로 다루면서 그것을 음악적 소재로 수단화한 것이 아닌가. 그리고 송경동이 캄보디아 파업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기고문 아래의 시로 옮겼을 때, 김오키와 진수영, 전수민이 송경동의 글을 불안하고 스산한 연주 곁에 배치했을 때, 이들은 똑같은 일들을 한 것 아닌가. (그들이 원했든 그렇지 않든) 어떤 감정을 극화시키기 위해, 그러한 극화를 실현하기에 알맞은 기법에 따라 시나 노래를 만들어내기 위해, 캄보디아 노동자들의 죽음을 수단으로 다룬 것은 아닐까.

‘아방가르드한’ 예술 작품들을 요소들의 독립성과 비유기성을 통해 정의하면서, 페터 뷔르거는 아방가르드 운동이 예술에서의 정치적 참여를 새롭게 규정했다고 쓴다. 요소들 하나하나가 서로를 총체적으로 연결하던 구조에서부터 자유로워짐으로써, 각 요소들은 작품의 부분들로서 전체=작품을 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전체에서 떨어져 나와 현실로 향한다. 그렇게 자립하게 된 요소는 작품을 구성하는 내적 맥락 안에서만 이해되기를 멈춘다. 그것은 작품 외부의 현실적 상황들을 참조하여 이해된다.

아방가르드 작품에서는 개개의 표현들이 일차적으로 작품 전체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지시한다. 수용자는 그러한 개개의 표현들을 실생활에 중요한 표명들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정치적 지시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 작품이 더 이상 유기적 총체성으로 구상되어 있지 않을 때에는 개개의 정치적 모티프들도 역시 더 이상 작품 전체에 예속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고립된 것들로서 작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3

고전적인 작품 모델은 실생활과 예술을 범주적으로 날카롭게 분리시키고, 일상적 활동들을 결정하는 모든 목적으로부터 작품을 유리시킬 것이다. 그리하여 작품은 자기 내부의 규칙과 구조에 의해서만 질서지어지고, 자기 내부에서 조직되어 오로지 그 내부에서만 고유하게 보존될 총체성과 유기성을 가질 것이다. 작품은 그것이 외적 질서들의 개입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내적 질서로 스스로를 조직한다는 의미에서 자율적일 것이다. 아방가르드 작품 모델은 고전적인 모델이 폐쇄시켰던 작품의 내부를 사회적 현실을 향해 개방시킨다. 요소들은 자신들을 속박하던 작품의 내적 질서에서 떨어져나간다. 요소들은 모든 방향으로 튀어나간다. 그리하여 그것은 사회적 현실을 향해서도 튀어나간다. 아방가르드는 요소들의 제각각의 운동성에 힘입어 사회적 실상을 작품 내부에로 침투시키고, 작품을 사회적 실상 안으로 밀어 넣으려 한다.

두 가지 작품 모델을 구분한 뒤 뷔르거는 아방가르적 참여를 그 이전 예술형식들에서의 참여와 대조한다. 전-아방가르드적인 작품들, 곧 총체적이고 유기적인 작품들은 모든 요소를 자신의 형식을 구성하는 계기로 집어삼킨다. 그리고 그 때 정치적인 또는 실천적인 모티프들은 일상생활과 단절된 예술성 안에 폐쇄된다. 그것은 참여를 계기로 구성된 작품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참여가 작품 범주 안에 갇히게 되는 것, 뷔르거는 그것을 중화라고 이른다.

작품을 참여로부터 유기적으로 조직하는 것이 성공할 때 그 앙가주망의 정치적 경향은 또 다른 위험으로 위협을 받는다. 곧 예술제도에 의한 중화中和라는 위험이 그것이다. …… 참여를 유기성이라는 미학적 법칙에 의거하여 형상화하고 있는 그 작품은─단순한 예술적 산물로 지각되기 십상이다. 예술제도가 개별 작품의 정치적 내용을 중화시켜버리는 것이다.4

뷔르거의 용어법을 따르자면 『스피릿선발대』는 충실히 아방가르드적인 작품은 아닐 것이다. 이 앨범은 유기성이라는 이념을 포기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이념을 강하게 붙잡기 때문이다. 현실적 상황들을 지시하는 죽음이라는 모티프의 방향성이 다른 모든 요소들의 위치와 기능을 총체적으로 결정한다. 나레이션의 억양과 목소리 세기도 그렇게 일관적으로 결정된다. 때때로 비장해지고 때때로 서글퍼지는 연주는 죽음에 대한 분노와 비애감을 극화하도록 설계된 듯하다. 아방가르드 박의 작업물은 어떨까. 소음들과 나레이션을 자르고 붙여 뒤섞은 그 노래에서는 “정치적 모티프와 비정치적 모티프가 심지어 한 작품 속에서도 동시에 병존[한다]”5고 적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증언과 애도의 분명성이 분열적인 작/편곡 기법을 위해 포기함으로써, 나레이션과 소음들을 동등한 위치에 두고, 각각의 요소들이 서로 다른 맥락 아래에서 이해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라고 적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작품이 모티프를 중심으로 구성되지는 않지 않는가 하고 따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반대로, 송경동의 증언을 잘라내는 그 기법 자체가 사회적 현실을 재현하는 모티프라고도 적을 수 있다. 「(아방가르드 박이 재해석한)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의 형식 자체가 분열적인 사회적 형식을 닮아있지 않은가하고 따질 수 있다. 어지럽게 흩뿌린 노이즈로 송경동의 증언을 뒤덮는 설계 자체가 소외와 적대, 그리고 소통불가능성의 재현물이라고 적을 수 있다. 이 경우 이 작품은 모티프에 기법이 따라붙는 식으로 유기적일 것이다.

이것은 사소한 일이 아닌 듯 보인다. 현실로의 참여가 곡의 목적을 제시하고, 이로써 작품 외부로 뻗어가려는 요소들의 운동이 외려 철저하게 작품의 내부를 구성하게 된다면, 노래가 현실을 집어삼키게 될 것이다. 그것도 실제 사태들이 벌어지는 장소들이 아닌 다른 곳에서.

공부가 부족하기 때문에 하게 된 생각인지도 모르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비유기성이나 요소들의 자립성 같은 것은 이미 오래전에 하나의 예술적 규범으로 승인받은 듯하다. 그래서 이른바 규격화된 아방가르디즘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만들어진 듯하다. 그리하여 현실에 대한 작품의 개방성이나, 다른 요소들에 대해 정치적 모티프가 가지는 독립성 같은 것들이 이미 폐쇄적이고 그렇기에 자율적인 작품=전체의 내적 부분으로 기능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비유기성을 통한 아방가르드적 참여 자체가 하나의 목적이자 규칙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서, 그러한 비유기성을 위해 요소들이 배열되고 작품이 구축되는 것이 허용된 시대 아닐까. 외적 현실의 맥락이 작품 안에 고립된 구조 안으로 흡수되어버릴 수 있게 된 것 아닐까. 비유기성은 이미 유기성이고, 개방성은 다시 예술 작품이라는 폐쇄적 범주 안으로 수축해버린 게 아닐까. 실생활 속 모든 현실성이 예술적 가상의 자기-목적성에 갇혀버리게 된 것 아닐까. 그래서 구체적 현실을 작품 속에 침투시키는 아방가르드 작품의 모델이 더 이상 전-아방가르드적 작품의 모델과 구분될 수 없게 되어버린 게 아닐까. 아방가르드의 실패는 공공연한 듯하다. 뷔르거 자신도 아방가르드 운동이 “실생활로부터 유리된 영역을 이루고 있는 예술제도에 의해 그 한계가 설정되어 있다”6고 적었다. 이제 (또는 이미 오래전부터) 아방가르드와 그 반대의 경향을 구분하는 건 별 의미가 없는 일이지 않을까. 어떤 경향이든 참여의 예술적 중화를 막을 수 없는 것 아닐까.

어떻게 말하고 들어야 노래 안에서 죽음을 중화시키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떤 방법이 죽음에 대한 예술적 중화를 예방할 수 있을까. 어떻게 듣고 읽어야 할까. 별다른 도리가 없다면, 죽음을 노래하는 일이 과연 “죽음”에 대해 정당한 일일 수 있을까. 죽음을 음악적 소재로 다루는 것이, 죽음에 대한 책임감 있는 태도일 수 있을까. 더구나 죽음만이 문제가 아니다. 『스피릿선발대』가 정치적 방향성을 예술적 구조 안에 용해시켜버린다면, 그 때는 희생자들의 죽음 뿐 아니라 그들이 처해있던 상황까지 녹아버릴 것이다. 하루 평균 열 시간을 일했던 피룬이 받은 돈은 한 달에 14만 원 뿐이었다. 임금인상을 요구하기 위해 파업하다 곤봉에 맞았고, 이에 항의하다 총에 맞았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마저 작품의 내적 구조 안으로 녹아들어버리는 것 아닐까. 피룬의 파업까지 노랫말 속 자율적 가상의 한 부분이 되어버리는 것 아닐까. 그 상황은 그렇게 노래 안에만 머물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정말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현실로부터 그렇게 단절되게 되는 것 아닐까. 그 상황들에 대한 충격마저도 단순히 노래에 대한 감흥으로 규정되어버리는 것 아닐까. 우리가 죽음을 노래할 때 바로 그 죽음을 노래의 구조 안으로 녹여버리는 일이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우리가 죽음에 대한 노래를 부르고 들어도 되는 걸까.

하지만 음악도 누군가를 애도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음악으로 애도하는 법을 알아야만 하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음악으로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해오지 않았을까. 음악을 통해 죽은 이들과 연대하고 투쟁하는 법 또한 배우지 않았을까. 그리고 노래로 떠난 이들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유족들과 고인들의 고통을 어떻게든 바라보게 않을까, 또는 바라본다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오지 않았을까.

나는 『스피릿선발대』를 어떻게 들어야 할까. 어떻게 써야 할까. 무엇을 써야 할까.

 

다른 생각을 해본다. 어떤 프로파간다들이 누군가의 죽음을 정치적 아젠다로 수단화한다며 비난하는 말들에 대해서. 2014년에도, 2016년에도, 그리고 올해에도 도처에서 들을 수 있었던 그 지독한 말들에 대해서.

「불타는 거리의 작별인사」. 점차 목소리를 높여가던 나레이션은 조용래가 기록한 전태일의 전언을 나지막이 읊조리며 사라진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그 뒤로 색소폰은 몸부림친다. 몸부림치다 리프와 함께 잦아들고, 이내 멎는다.

“죽음을 헛되이 말라.” 그 요청 앞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그의 죽음을 다시 불러내어야 한다는 것 아닐까. 그리하여 죽은 전태일에게서 배워야 한다는 것 아닐까.

죽음을 통해 배운다. 그런데 이것은 어떤 일인가. 죽음을 기억하며 배울 때, 우리는 떠난 이를 기리기 위해 그의 죽음을 기억하는가, 아니면 우리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또는 우리의 더 나은 생존을 위해) 고인의 죽음을 기억하는가. 고인의 죽음에서 배움을 구하는 일은 고인의 죽음을 죽음으로서 존중하는 일이 될 수 있을까. 고인에게서 배우고자 할 때, 우리는 고인의 죽음을 보지 못하고 우리의 삶만을 보게 되는가. 우리가 고인의 죽음에서 교훈과 지침을 구한다면, 그때 우리는 우리의 배움을 위해, 그리고 그렇게 배움으로써 다시 시작될 우리의 또 다른 투쟁을 위해 고인의 죽음을 수단화하게 되는가. 그런데 그것이 수단화라면, 그것은 그른가. 죽음을 교훈 삼는 수단화는 언제나 그른가.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언제 그르고 언제 옳은가.

어쩌면 애초에 잘못된 물음이 제기되었던 게 아닐까. 애초에 “수단화”라는 어휘는 잘못 선택된 게 아닐까. 애초에 전태일의 죽음을 기리는 일과 우리의 더 나은 삶을 배우는 일이 서로 나뉘어 생각될 수 있는 일일까. 너무나도 섣부르게 한 가지 일을 둘로 갈라버린 게 아닐까.

나는 전태일의 죽음을 다시 기억하고 그의 죽음에서부터 배워가기 위해 「불타는 거리의 작별인사」를 듣게 될 수도 있다. 그의 투쟁을 더 깊이 새기기 위해. 나는 나레이션이 끝난 후 몸부림치는 색소폰에서부터 그 가르침을 구하게 될 수도 있다. 어쩌면 그 색소폰이 가르침을 받아들이기에 알맞은 감정 상태를 준비시킬지도 모른다. 마지막 말을 전하기 전 부르짖는 나레이션의 단호한 어조 또한 마찬가지다. 그 때 나는 전태일의 죽음을 이중으로 수단화하는가. 한 편으로는 우리의 교훈과 우리의 투쟁을 위해, 다른 한 편으로는 그 교훈과 투쟁을 준비시킬 노래의 일관성과 그에 맞는 적절한 서사와 편곡을 위해. 한 편으로는 전태일의 죽음을 우리 배움을 위한 계기로 다룸으로써, 다른 한 편으로는 그의 투쟁을 다시 새기기 위한 노래의 한 계기로 (곧 그 작품을 구성하는 하나의 모티프로) 다룸으로써. 이렇게 전태일의 죽음을 이중으로 수단화한다면, 우리는 그 죽음에 대한 존중을 철회하게 되는 것인가.

오히려 그 반대 아닌가. 우리는 그 때에야 그의 죽음을 헛되이 만들지 않으려 노력하는 게 아닌가. 우리는 그 때에야 그의 죽음을 존중하기 시작하는 것 아닌가.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는 요청 앞에서는 우리의 배움과 투쟁을 위해 고인을 기억하는 것이 그의 죽음을 기리는 가장 나은 방법이 아닐까. 이 경우 우리는 우리의 더 나은 삶을 고민함으로써만 고인에게 조의를 표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 때 우리는 고인의 죽음을 그 고유한 지위에서 존중하는 것 아닐까. 여기에 “수단화”라는 어휘가 쓰여야 하는가. 또, 쓰여야 한다면, 그 어휘에 꼭 경멸적인 의미를 불어넣어야 하는가.

피아노 반주 곁에서 전태일의 결단을 또박또박 낭독할 때, 전태일의 죽음을 이 노래의 한 계기로서 불러낼 때, 그리하여 그의 투쟁 또한 노랫말의 부분으로서 노래 속에 삽입시킬 때, 그 때 우리는 전태일의 투쟁과 죽음을 예술적으로 중화시키는가. 그렇게 적는 것은 온당한가.

반대로 적어야 하지 않을까. 그 때 우리는 전태일이 뛰어든 현실을 지나 다시 우리의 현실로 돌아오는 운동성을 낭독문에 부여하는 것이 아닐까. 1970년과 2019년을 사이를 오가는 낭독문의 운동을 통해 우리가 그의 죽음을 헛되이 만들지 않으려는 노력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그 반대로 적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1970년 11월의 청계천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그 때의 을지로를 어떻게 노래해야 할까. 그 노래를 어떻게 들어야 할까.

청계천은 많이 달라졌다. 이명박의 복원 사업이 있었다. 지금은 박원순의 도시재생 사업이 진행 중이다. 서울시는 청계천 주변에 뿌리내린 사람들을 쫓아내고 그들이 머물던 터전을 밀어버리는 데 익숙해진 듯하다. 물론 그 시절 평화시장 봉제 노동자들과 오늘날 세운상가 상인들의 삶이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겪어야 했던 상황도 고통도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 차이를 짚지 않는 것은 무례한 일이겠고 위험한 일이겠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내몰리고 있다는 사실은 똑같다. 1970년의 공업 노동자들은 일요일에도 쉴 수 없는 과중한 노동에 내몰렸었다. 지금도 누군가는 장시간 노동에 생명을 위협 당한다. 얼마 전 우정 노조가 파업을 예고하며 요구한 것도 일주일에 이틀은 쉴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오늘날 세운상가 상인들은 수십 년간 일해 온 자리가 허물어지고 시멘트로 뒤덮이는 것을 본다. 그 자리에 거대한 상가를 새로 세우고 자신들의 로고를 박아 넣을 대기업은 이미 분양 광고를 시작했다.

한 인간이 가진 것을 다른 인간에 의해 박탈당하고, 또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이 가진 것을 박탈하는 시대. 전태일은 그런 시대에 부딪혀 죽었다. 그 죽음을 헛되이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레이션의 어조가 그랬듯, 단호하게.

  1.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7509
  2.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이재원 역, 이후, 2004, 184쪽.
  3. P. 뷔르거, 아방가르드의 이론, 최성만 역, 지식을만드는지식, 2013년, 233쪽.
  4. 같은 책, 231쪽.
  5. 같은 책, 234쪽.
  6. 같은 책, 23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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