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쏜애플, 『계몽』

 

“시월을 그리워하는 오월을 앓다”

                                          –  「2월」 中

 

  『계몽』, 섣부르게 다가가기엔 너무나 육중하고 부담스러운 타이틀이다. 불현듯 무의식적인 거부감마저 든다. 쏜애플의 시선에서 대체 누가 계몽되지 못한 상태에 있으며, 그들은 본작을 통해 누구를 어떠한 방식으로 깨우치게 한다는 것인가? 어쨌든 그들은 돌아왔다, 『계몽』이라는 이름을 달고. 전작이었던 EP 『서울병』이 발매된 지 3년의 시간이 흘렀고, 비슷하게 멤버 윤성현의 다분히 여성혐오적인 발언으로 거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지도 3년의 시간이 흘렀다. 3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탄생한 본작은 지금까지 우리가 보았던 쏜애플의 음악들과는 같은 듯 다른 행보를 걷는다. 대중적인 연주인 척 하면서 그 속에 은근한 싸이키델릭-함과 함께 친근하지 못한 요소들이 군데군데 숨어있고, 입체적으로 짜인 사운드의 구성과 비어있을 틈 없이 풍성한 전개는 여전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연주가 전반적으로 앨범을 지배하는 뜨거운 에너지가 되었던 『난 자꾸 말을 더듬고 잠드는 법도 잊었네』, 『이상기후』에서와 달리 본작에서는 오히려 그 에너지들이 몽롱한 공허함으로 추락하는 순간들이 포착된다. 파편적이고 추상적인 어휘들로 가득 차 그 진의와 흐름을 종잡을 수 없었던 윤성현의 노랫말이 쓰인 방법론 역시 전작들과 동일하지만, 본작에서는 그 어휘들이 한 계단 내려와 듣는 이들에게 어느 정도의 이정표라도 던져주는 모양새다.

  본격적으로 본작 안으로 발을 들여 보면, 첫 트랙 「마술」은 트랙 이름 그대로 ‘마술’과도 같이 우리를 현혹하며 인도한다. 단번에 귀를 사로잡는 반복적인 기타 리프가 진행되는 와중에 치고 들어오는 윤성현의 아릿한 목소리가 우리의 눈앞을 흐리게 하며, 그 위로 투박한 리듬의 비트와 환상적이면서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소리들이 귀를 어지럽힌다. 그러다 별안간에 갑작스러운 변주와 함께 트랙 자체가 뒤집어지며, 본작 내에서도 가장 우리가 알던 ‘쏜애플 스타일’에 가까운 노랫말들과 함께 쏜애플은 트랙이 끝날 때까지 듣는 이들을 쥐고 흔든다. 진부하지만, RadioHead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신경증적으로 우리를 자극하는 기타 리프는 「Burn The Witch」에서의 그것을 떠올리게 하고, 점층적인 전개 방식이 「Present Tense」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구태여 RadioHead의 다른 작품들을 꺼내와 이어붙이며 예시를 들지 않더라도, 「마술」에서 RadioHead의 향취가 강하게 느껴진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다. 언젠가 윤성현이 인터뷰에서 자신의 롤모델로 RadioHead를 꼽았던 것을 기억한다. 개인적으론 현 시점에서 ‘라디오헤디즘’이라는 용어는 더 이상 의미를 가지기 힘들다는 입장에 있고, 그래서 「마술」에 ‘라디오헤디즘’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도 조심스럽다. 하지만 어쩌면 그렇기에, 우리는 「마술」로서 한국 음악계에서의 ‘라디오헤디즘’의 완성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발목을 진득하게 붙잡던 「마술」을 뒤로 한 채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자 갑작스레 분명하게 다가오는 환한 연주가 우리를 맞는다. 「수성의 하루」 – 「2월」 – 「로마네스크」로 이어지는 세 트랙이 그렇다. 특히 「수성의 하루」에서의 체험은 「마술」 바로 뒤에 이어지는 트랙이라는 점에서 그 신선함이 더하다(* 마치 『이상기후』에서 보였던 「남극」 – 「시퍼런 봄」의 이어짐이 만든 시너지와 같이). 낮게 흐물거리던 연주의 끝에 강렬한 전환점을 맞고, 어절마다 강세를 주며 나아가 마치 근래 대중적인 일본 록 밴드들을 연상케 하는 윤성현의 퍼포먼스가 인상적이다. 5분의 시간 동안 백 코러스 등의 다양한 요소들로 꾸려진 입체적인 전개는 그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뜨겁게 달아오를 뿐이지만, 그 속엔 끝내 어제와 같이 모든 것은 내일의 몫으로 미뤄버리는 화자의 두려움과 망설임에 가득 찬 하루가 있다. 첫 훅과 마지막 훅이 수미상관과도 같이 이어지는 순간 우리는 뒤를 돌아봐 화자의 망설임에 가득 찬 하루를 갈무리하게 된다. 「수성의 하루」는 우리의 셈법으로 1408시간, 참으로 길었다. 트랙의 제목과 그 구성의 절묘한 조화로서 쏜애플의 영민함이 드러난다.

  군데군데에서 포착되는 이러한 영민함이 본작을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우리의 앞에 대상을 소환해 소통이 단절된 존재의 가여움을 이야기하는 「2월」은 몽롱한 연주 위로 들어서는 훅의 멜로디가 매우 탁월하고, 그 과정에서 ‘언니네 이발관’의 「100년 동안의 진심」을 오마주한(** 오월의 향기인줄만 알았는데 넌 시월의 그리움이었어 – 「100년 동안의 진심」 / 시월을 그리워하는 오월을 앓다 – 「2월」) 노랫말이 효과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본작에서 「은하」와 함께 가장 친숙한 전개를 펼치는 「로마네스크」의 끝에서는 끝날 듯 끝나지 않는 미묘한 연주의 흐름으로 친숙한 전개를 잘 따라가던 우리에게 일말의 의문을 남기기도 하고, 상승과 추락을 반복하는 보컬 퍼포먼스가 인상적인 「위에서 그러했듯이 아래에서도」에서는 굴곡 깊은 퍼포먼스를 능숙하게 소화하는 윤성현의 보컬이 감탄을 자아내지만, 동시에 윤성현 본인을 둘러쌌던 논란과 비판을 트랙 내에서의 ‘위’와 ‘아래’의 극심한 대비와 함께 직접적이지 않은 어휘로 은근히 드러내는 듯한 그의 노랫말(떨어지게 두소서, 놈의 몸을 우리에게 내어주오 / 배를 바짝 붙이고 엎드려라, 우리는 하나같이 너의 왕이니) 역시 그럴듯한 위용이 있다.

  호흡이 긴 연주들을 거쳐 다시 「마술」에서의 3분대 볼륨으로 회귀한 트랙 「기린」부터 본작의 후반이라고 칭해도 되겠지만, 「위에서 그러했듯이 아래에서도」에서 드러난 연주의 에너지를 이어받는 트랙이라고 칭해도 상관은 없을 것이다. 「기린」 역시 상당히 재밌는 트랙인데, 연주하는 세션이 하나씩 쌓이거나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이동할 때마다 윤성현의 퍼포먼스가 아예 다른 파트를 이야기하듯 급커브를 돌며, 결론적으로는 트랙 전체적으로 반복적인 부분이 없이 마치 3분여의 옴니버스 드라마를 듣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전개는 어느 정도의 반복성을 띤 채 움직이던 전 트랙들과 대비될뿐더러, 윤성현의 노랫말 역시 그를 의도한 듯 움직이는 것이 눈에 띄어 꽤나 재밌게 되었다(*** 완전한 원을 그리다 보면 잡을 수 있을까?” / 그렇게 까불어대다가는 신세를 망쳐버리고 말 거야, 죽은 걸 찾으면 안 돼 차라리 빈손으로 돌아가 / 어쩌면 너는 그냥 처음부터 없었나? 잠이나 잘 걸).

  이후로는 오히려 전반부 「수성의 하루」 – 「2월」 – 「로마네스크」로 이어지는 친근하고 환한 흐름과는 정반대로 나아간다. 「넓은 밤」에서는 6분이 넘는 시간 동안 점점 극으로 치닫는 연주와 함께 어둠 속에 홀로 내몰린 듯한 윤성현의 아련하면서도 공허한 퍼포먼스가 인상적이고, 신시사이저가 등장하는 「뭍」 역시 전 트랙에서의 어둠을 이어받음과 동시에 축축하고 묘한 질감의 사운드로 무장해 우리를 「뭍」이 아닌 물 속 깊이 침수시켜버린다. 하지만 다음 트랙 「은하」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어찌 보면 본작 내에서 가장 이질적인 트랙이기도 한데, 「뭍」의 마지막 소리를 이어받은 듯 등장하는 신시사이저와 함께 친숙한 흐름의 연주가 흐르고, 아 그대 나의 별이 되어 나를 이끌어줘요라고 읊조리는 윤성현의 노랫말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직설적인 화법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혼란을 준다. 솔직히 말하면 본작이 전개되던 맥락을 놓고 고려해볼 때 「은하」의 위치는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이러한 경우 아티스트가 청자를 납득시키는 데 성공했다면, ‘분위기 환기를 위한 영민한 선택’이었다고 포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을 땐 「은하」는 그렇지 않다. 「넓은 밤」 – 「뭍」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어설프게 이어받으면서 중반에 이르러 그것을 어그러뜨렸다는 점에서 그렇고, ‘쏜애플’의 것이기에 와닿지 않는 직설적인 노랫말이 그렇고, 뒤이어 찾아오는 「검은 별」의 불친절하면서도 폭발적인 연주가 「은하」에서의 체험을 극도로 약화시킨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몽롱하게 우리를 끌어오는 신시사이저와 세션의 연주를 시작으로 때때로 폭발적으로 몰아치는 드라마틱함을 선보이는 마지막 트랙 「검은 별」을 끝으로 쏜애플의 본작은 막을 내린다. 이 순간 우리는 본작을 처음 맞이했던 그 순간이 떠오른다. 「마술」, 아니 그 보다도 더 이전에, 너무나 육중하고 부담스러웠던 그 이름, 『계몽』. 그러나 본작의 흐름은 그 무거운 이름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처럼 흘러간다. 그렇다면 대체 쏜애플은 왜 본작을 『계몽』이라 이름 지은 것인가? 아니, 왜 본작의 이름은 『계몽』이어야만 했는가? 본고가 이렇게 마무리 되는 이유는, 글쎄, 내가 본고를 작성하면서 『계몽』을 계속 돌려들었지만, 그리고 『계몽』 이전에도 앨범의 제목이 그 내용과 큰 상관이 없던 작품들은 세계적으로 많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본작의 제목에 대한 집착을 끊어낼 수 없는 게 『계몽』이라는 이름이 듣는 이의 입장에 서있는 나에게 준 부담감이 유달리 커서일까? 찝찝함이 남는다. 결코 본작이 아쉬운 작품이어서가 아니다. 단순히, 정말 단순히 그 이름 때문에.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에게도 그에 관한 ‘계몽’이 필요한 것 같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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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듣고, 글을 씁니다.
http://www.tonple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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