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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AN`s List of 2018 : 2018 국내 베스트 앨범 20


 
 

2018 국내 베스트 앨범 20

– written by. coloringCYAN –

(대상 기간 12.01.2017 ~ 11.30.2018)

 

  어느새 2019년을 맞이한지도 수 개월이 흘렀다. 점점 2018년의 기억은 흐릿해지지만, 그 때의 음악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있다. 그들을 기억하고자 간소하게나마 개인적인 2018년의 결산을 준비했다. 이번엔 2018년 발매된 국내 앨범들 중 20개를 추려 짧은 단평을 적어내렸다. 비록 이 리스트가 모두에게 공감을 받을 수는 없어도, 누군가에게 2018년을 떠올리는 촉매가 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 본고는 필진 coloringCYAN 개인의 2018년 결산으로서, 웹진 [온음]의 총결산과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SHINee는 현재 활동 중인 모든 아이돌 그룹을 통틀어 데뷔부터 지금까지 가장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는 그룹 중 하나이지만, 불행히도 그들의 탄생 10주년이었던 2018년은 멤버 종현의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시작해야만 했다. 그 충격적인 비극으로 인해 활동중지까지 논의되었지만, 그들은 아픔을 견뎌내며 종현의 몫까지 활동을 이어갔다. 5월부터 시작해 한 편씩 모습을 드러내던 반짝이는 빛의 이야기는 9월에 이르러서야 에필로그를 써 내렸다. ‘빛의 이야기’, 데뷔 이래 그들의 이름답게 언제나 빛나는 모습만 보여주던 SHINee의 10년이 고스란히 녹아있고, 10년의 시간동안 함께했던 종현에 대한 그리움이 남겨져있다. 「네가 남겨둔 말」에서 멤버들이 목 놓아 외치는 고인을 위한 헌사, 그에 화답이라도 하듯 마지막 트랙 「Lock You Down」에서 생동감 있게 울려 퍼지는 종현의 목소리는 우리가 그의 생전에 그를 사랑했던 이유를 그대로 보여준다. 고인을 그리워하는 팬들에게 SHINee가 보여주는 최대한의 예우이자, 최고의 선물이다.

  딥하우스와 퓨처베이스, 트로피칼 등 본작의 음악은 이미 K-Pop에서 클리셰로 자리 잡은 장르들을 기반으로 하지만, 단순히 흔히 듣던 음악이라고 평가절하하기 어려울 정도의 절륜한 완성도로 격을 달리한다. 빼어난 완급조절과 사운드의 운용, 중독적이면서도 질주하는 듯 강렬한 훅-메이킹으로 시작부터 감탄을 자아내는 트랙 「All Day All Night」은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셀 수 없는 (Countless)」에서 보여준 센스 있는 노랫말과 「I Want You」에서의 화음, 하우스에서 한 발 벗어나 Jazzy한 그루브를 보여주는 「Retro」 등, 본작을 들으면서 기분 좋게 즐길 수 있는 거리가 넘쳐난다. 이는 데뷔 후 10년이라는 시간을 지나면서 SHINee가 음악적으로 보여주었던 많은 색깔들과 상당 부분 맞닿아있고, 마치 앞으로도 한결 같은 모습으로 우리의 곁에서 노래하겠다는 SHINee의 강한 의지가 반영되어있는 듯 하다. “누난 너무 예뻐”라고 말하던 소년들이 10년이 지나 보여준 이야기를 우리는 쉽게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다시 한 번, RIP 종현.

 
 
 


 
 
 
 
 
 
 
 

 

  오디션 프로그램 ‘K팝스타’로 인지도를 쌓은 뒤 현재 팝-재즈 아티스트로서 인상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아티스트 이진아의 정규 앨범인 본작은 그녀의 커리어에 있어서도, 국내 팝과 재즈라는 장르에 있어서도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샘옥, 힙합 아티스트 GRAY와 의외의 콜라보를 이루어낸 타이틀 트랙 「RUN」부터 심상치 않다. 상쾌한 팝 멜로디에서 EDM과 힙합 풍 비트로 점철된 Verse가 곡의 예측 불허함을 점지하고, Verse 부분의 들어찬 사운드와 달리 공허한 훅과 브릿지에서 치고 들어오는 화려한 재즈 피아노 연주는 곡의 백미다. 2018년 최고의 팝 트랙 중 하나인 「RUN」과 같이, 본작의 주된 흐름은 이진아의 탁월한 연주와 종잡을 수 없는 실험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본작의 예고 격이었던 『애피타이저』, 『RANDOM』에 수록되었던 곡들이 대거 재수록 되었기에 본작의 그러한 흐름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애피타이저』, 『RANDOM』에서 보여졌던 실험적인 사운드가 본작에서 새로이 선보여진 곡들과 앨범 단위로 만나 합 이상의 시너지를 뽐낼 줄 예상한 청자는 아무도 없었으리라.

  팝, 재즈, 힙합, 알앤비, EDM, 일렉트로닉, 오케스트레이션, 록, 발라드 등의 다양한 음악적 소스들이 첨가되어 자극적인 결과를 우려한 사람도 있었겠지만 막상 차려져서 나온 사운드의 모양새는 정갈하기 그지없다. 연주의 음표 하나하나 피로감을 유발하거나 휘발적이지 않고 묵직하게 맴돌며 이진아의 독특한 보이스와 조화를 이룬다. “사람들이 미소를 짓게 할 수 있는 밝은 음악”을 만드는 것이 음악적 목표라고 밝혔듯, 본작의 가사는 인간관계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낸 「RUN」 정도를 제외하고는 밝은 편인데, 직설적이면서도 곳곳에 멋들어진 비유를 섞은 그녀의 가사 역시 ‘자유롭게 원하는 것을 먹고 즐기는 식당’이라는 본작의 정체성을 잘 드러낸다. 과하지 않고 담백한 사운드와 밝은 가사로 많은 사람들에게 미소를 주는, 그러면서도 다양한 장르의 융합과 연주를 통해 탄탄한 예술적 성취도 이루어낸, 예술가들에게 있어 이상적인 결과물이자 자극적인 K-Pop 위주의 상업 음악에 밀려 비주류로 전락한 국내 Pop과 Jazz 음악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작품이다. 말 그대로 ‘Full Course’,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차고 넘쳤다.

 
 
 


 
 
 
 
 
 
 
 

 

  시간의 흐름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하나의 인간으로 세상에 던져져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되는 시간의 운명은 우리를 다양한 모습과 다양한 생각으로 세상을 마주하게 만들고, 그 흐르는 운명 앞에서 세상은 각기 다른 풍경으로 우리를 맞는다. 시간이 흐르고 그에 따라 점점 늙고 쇠약해진다는 것은 벗어날 수 없는 족쇄와도 같지만, 우리는 지금까지도 다양한 방식으로 그 족쇄에 저항해왔다. 먼 옛날 존재할 리 없는 ‘불로초’를 애타게 찾아 헤매던 진시황의 모습부터, 지금도 나이가 들었음에도 ‘동심’을 부르짖으며 과거에 머물고 있을 어느 누군가의 모습까지 다양한 형태의 저항은 이루어져왔고, 이루어지고 있다. 비록 우리가 그 족쇄를 벗어던질 날은 우리의 시간이 다하는 그날까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래서 라이프앤타임의 본작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치 시간의 밖에 있는 것처럼, 그들은 시간에 따라 변하는 우리의 모습을 그린다.

  그들이 본작에서 빚어올리는 연주는 대단하다. 단단한 기본기를 통해 완성도 높은 연주를 만들어내면서도, 각 트랙마다 본작의 서사의 진행을 따르는 개성을 더해 한층 격을 높였다. 유년의 따뜻함을 그럴듯하게 표현한 첫 트랙 「소풍」을 시작으로 기타 리프와 보컬 퍼포먼스와의 합이 잘 맞는 「꼬리구름」, 라틴 풍의 중후한 연주로 분위기를 잡는 「연속극」, 청춘의 패기를 담은 헤비한 트랙 「exiv98」과 현대 청춘의 또다른 이면인 좌절감을 무겁게 담아낸 「어두운 방」의 대조 등은 라이프앤타임의 연주와 아이디어의 탁월함을 한껏 드러낸다. 「정점」의 예사롭지 않은 그루브와 찌르는 듯 날카로운 기타의 독주는 본작의 ‘정점’에 서 있다. 그 외에도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인간상을 예리하게 그려낸 진실의 노랫말 역시 칭찬을 아끼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본작을 듣는 그 순간에도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는 시간은 매우 야속하게 느껴지지만, 그들이 그려놓은 이야기 속에 있으면 거부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도 한껏 기대하면서 맞을 수 있을 것만 같다.

 
 
 


 
 
 
 
 
 
 
 

 

  하헌진의 기타 연주는 늘 그랬듯 훌륭하지만, 그러한 하헌진의 기타 연주가 김간지의 변칙적이고 창의적인 드럼 연주와 만나며 색다른 바이브를 조성한다. 우직하게 한 길만 고집하는 듯 했던 그들의 음악의 스펙트럼이 갑자기 거대하게 확대되는 순간이다. 여기에 어느 정도 타협에 응한 하헌진이 보여주는 보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주와 오르간이라는 새로운 악기의 도입 등이 감상의 즐거움을 한층 더한다. 물론 그러면서도 델타 블루스라는 장르의 연출도 세심하게 신경 썼다. 전작에서 내게 술과 돈을 오오라고 부르짖었던 하헌진의 스탠스가 본작에서는 더 나아가 세상에 바라는 게 하나 없다는 염세적이면서 달관적인 태도로 세상을 대한다. 이렇듯 여러 면에서 자신들의 영역을 돌파해낸 그들의 본작에 대해, 어쩌면 김간지가 했던 말을 인용하여 쓰는 것이 더욱 좋은 설명이 될 것이다 – “어떤 장르를 가져다 써도 하헌진이 만들면 그것은 결국 블루스인 것이고, 블루스를 한다고 해도 김간지가 드럼을 치면 그건 전형적인 블루스는 아니게 된다는 것이다.

 
 
 


 
 
 
 
 
 
 
 

 

  흔히 평단에서 데카당을, 그리고 데카당의 본작을 평할 때 꼭 빠지지 않는 이야기는, 제 16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이경준 위원이 서술했듯, 데카당의 ‘전위’적인 음악에 관련되어 있다. 확실히 본작의 정체성은 기묘하다. 블루스의 리듬, 포스트-펑크를 연상케 하는 날선 연주, 재즈 록의 그루브 등을 되는 대로 이어붙이고, 구석구석 네오-소울, 라틴, 싸이키델릭, 프로그레시브 등의 다양한 장르에서 따온 문법들을 첨가하며 앨범을 쉽게 정의하기 어렵게 한다. 그러한 작법들에 생동감을 더욱 불어넣는 요소는 다름 아닌 진동욱의 보컬이다. 시도때도 없이 변화하는 트랙들의 색깔에 맞춰 때로는 강렬한 외침으로, 때로는 끈적한 팔세토로, 때로는 여유로운 노래로 마지막 피스를 끼워 곡을 완성시킨다. 매 트랙마다 드러나는 기발한 보컬 멜로디도 진동욱이 아니었으면 누가 이 정도까지 해낼 수 있었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병」든 세상을 「창」으로 바라보고 그 세상을 향한 「외출」과 「산책」을 통해 아름다움을 찾는다는 서사는 매우 직관적이지만, 병적인 비유로 가득한 피폐한 노랫말이 그 내용을 쉽게 짐작하기 힘들게 한다. 덧붙여진 다양한 소리들과 보컬, 피폐한 노랫말이 만들어내는 거센 충돌은 본작 특유의 퇴폐적인 바이브를 빚어냄과 동시에, 그 자체로 우리가 음악을 들으면서 무의식적으로 범주화하던 장르의 구분에 대한 하나의 질문이 된다. 정말로 많은 장르들에서 따온 작법들로 작품을 아름답게 꾸미지만, 정작 본작이 그 중 어떠한 장르로도 명명될 수 없다는 사실은 코드 하나, 리듬 하나 차이까지 치밀하게 분석하고 가려내며 세워진 통상적 장르 구별의 규준을 비웃는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데카당에게 ‘전위’적이라는 찬사를 보낸다. 나는 거기에 한 마디를 더 덧붙이고 싶다.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튀어나가는 본작의 마력이, 우리를 한층 더 ‘데카당’한 순간으로 인도했다고.

 
 
 


 
 
 
 
 
 
 
 

 

  이미 『나무』로 2017년 한국 R&B 씬에 큰 충격을 주었고, 또 2018년 3월에 정규 2집 『언어』를 발매하였음에도, 이들의 타오르는 열정은 7개월만에 그들의 정규 3집으로 우리를 인도했다. 『나무』와 『언어』는 ‘아시안 얼터너티브’라는, 한국 비평계에서 그들에게 붙여준 수식대로 사운드, 샘플의 운용과 멜로디의 짜임, ‘시나브로’와 같은 특색있는 순우리말 가사 등을 이용해 동서양의 음악색을 잘 조화시킨 결과물이었지만 본작은 그러한 그들의 디스코그래피에서 다른 방향을 추구한다. 기존과 같이 얼터너티브를 기조로 한 채 앰비언트를 가미해 사운드의 공간감을 강화하고, 앰비언트 색채를 더함에 따라 적어진 음과 사운드의 운용에 맞추어 가사 역시 그 볼륨이 줄어들어 미니멀한 감각까지 더한다. 그러면서도, 「순간」, 「사이」와 같이 본작의 에너지가 집중되어있는 트랙에서는 각각 가스펠 아카펠라와 트랩 음악에서 쓰일 법한 베이스 / 하이햇의 도입을 통해 청자들의 집중력을 환기시킴과 동시에 매끄러운 구성을 완성시켰다. 한층 노련해진 Sep의 멜로디 메이킹은 말할 필요도 없다.

  본작의 주제의식은 히피는 집시였다 디스코그래피 중 가장 어둡고, 그것은 ‘空手來 空手去’라는 인간 생의 가장 심오한 사실 중 하나에 맞닿아있다. 첫 트랙 「빛」과 함께 아무것도 없이 탄생한 생은 마지막 트랙 「흙」과 함께 아무것도 없이 다시 본래 있던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우리는 공허함에서 태어나 공허하게 돌아가지만, 그러나 과연 우리가 정말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인가? “내가 긁고 간 자국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순간」의 가사는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뒤이어 등장하는 트랙 「사이」와 「귀가」에서는 각각 생에서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타인의 생, 혹은 다른 것들에 대한 의존과 침범, 공포와 수용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빈손으로 생 위에 놓여지는 우리는 살면서 많은 것들을 마주하게 되고, 그들과 마주하다 보면 어느새 양손이 무겁게 가득 차버리고 만다. 어느순간 홀연히 떠날 때에는 다시 빈손이지만, 우리가 쥐었던 것을 놓았을 때 그에 묻어있는 우리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 긁고 간 자국”이 되어 마저 생 위에 남아 떠돌게 된다. 그렇다면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떠나는 우리가 이 생에서 온전히 가지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것을 끝없이 마주하고 서있다. 빈손이라는 것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나서부터“(* 앨범소개 참조)라는 Jflow의 소개글이 더욱 눈에 들어오게 된다.

 
 
 


 
 
 
 
 
 
 
 

 

  방탕한 사나이, 『탕아』라고 자신을 정체화하는 뱃사공의 태도는 사실일지 모른다. 「탕아」에서 억지로 스타일을 만든 적 없지 이게 나의 삶이야 / 메리야스 하와이 셔츠 나야 탕아라고 밝혔듯, 앨범 전체적으로 드러나는 그의 삶은 현실이 추구하게 만드는 삶과는 한 발짝 떨어진 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현실에 연연하지 않는 태도로 노래함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본작의 가사는 현실의 벽을 가장 잘 이야기한다. 좁게는 ‘쇼미더머니’와 ‘고등래퍼’로 대표되는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인해 자본주의 시장으로 포화해버린 힙합씬, 넓게는 심화된 빈부격차와 비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경제논리 속에 좌절하는 청춘의 삶이 그대로 드러난다. 「탕아」에서부터 뱃사공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방탕한 아이(탕아)’로 규정하지만, 사실 본작에서의 뱃사공은 그저 음악이 하고 싶어 음악을 하는 하나의 인간일 뿐, 전혀 방탕하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가 뱃사공이 스스로를 ‘탕아’로 정의내린 것에 공감하는 이유는, 현실의 벽 앞에서 그와 같은 태도를 유지한다는 사실 자체가 ‘현실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성공을 자축하는 인트로 「축하해」나 본인의 삶을 낭만적인 시선으로 견지하는 「탕아」와 「그래그래」, 현실적 타인들과의 관계 앞에 이중적인 트랙 「콜백」과 「부재중」, 은근한 자기과시가 깔린 「뱃맨」과 「로데오」, 더욱 좋은 것을 삶의 필수적인 요소로 강요하는 현실에 전하는 낭만적 일상이 담긴 트랙 「돈이 없어도」와 「우리집」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렇다. 각 트랙이 전하는 말들은 달라도, 결과적으로는 그 말들은 현실을 마주하지 못하고 도망칠 뿐인 뱃사공의 모습과 현실에 침잠해버렸을 수 있는 청자들의 모습을 동시에 비추는 이중거울의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본작에 대한 감상은 ‘화자 뱃사공’에 대한 연민과, ‘청자인 자신’의 처지에 대한 슬픔으로 분열된다. 누군가는 뱃사공의 삶을 이상주의자라며 비난할 수 있고, 누군가는 뱃사공의 삶을 동경하겠지만, 본작은 그러한 청자의 개인적 처지엔 상관없이 그대로 존재하는 ‘현실’이라는 개념을 우리에게 소환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식대로 ‘현실’을 회피하고 있을 뿐일 수도 있고, 뱃사공은 단지 그러한 유형 중 한 가지에 불과한 것이다. 돈이 가장 솔직한 ‘현실’을 인정해버리고 마는 마지막 트랙 「진심」의 첫 라인 난 항상 너에게 강한 척 했지만 사실은 난을 들었을 때 뭉클해지는 감정이 드는 것 역시 그런 이유다.

 
 
 


 
 
 
 
 
 
 
 

 

  그들의 데뷔작 『18일의 수요일』이 발매된 지도 벌써 20년이 지났다. 그리고 2011년 5집 『까만 타이거』가 발매 된 이후 그들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음악에 사실상 손을 놓게 된지 7년이 지났다. 지칠 대로 지쳐버린 이기용은 제주도로 떠났고, 그 곳에서 그가 마주한 것은 현실과 반대에 서있는 거대한 자연이 주는 위로였다. 핀란드로 떠났던 이소영은 그 곳에서 오로라를 보며 자신의 시간을 곱씹었다. 그대로의 자연이 그들에게 선사한 경험은 그들의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따뜻하고 세련된 연주를 낳았다. 본작 『오로라피플』은 그들의 전작과는 확실히 다르다. 강렬했던 그들의 연주는 한층 유해졌으며, 우리를 뒤흔들려고 하기 보다는 따뜻하게 우리를 감싸고돈다. 보다 직접적이고 강한 힘이 있었던 그들의 노랫말과 보컬 퍼포먼스 역시 부드러워진 그들의 연주에 맞춰, 그들이 목도했던 자연의 광경을 안내자처럼 우리에게 전달하며, 우리를 그 속으로 인도한다.

  이러한 허클베리핀의 변화를 어떤 이들은 ‘성장’ 내지는 ‘숙성’이라고 표현한다. 그것은 어느 의미에서는 맞는 말일 것이다. 우리는 본작에서 과감하게 기타를 배제한 그들의 실험성을 볼 수 있고(「너의 아침은 어때」), 자연을 그리는 그들의 한층 완숙해진 표현력도 볼 수 있고(「누구인가」, 「오로라피플 (Aurora People)」), 과거 한국 음악의 감성을 세련되게 리바이벌한 멋진 연주 역시 볼 수 있다(「라디오 (Radio)」). 하지만 5집 발매 이후 흘러간 7년의 시간이 그들에게 어떠한 의미였는지를 떠올려본다면, 과연 우리가 본작에 대해 ‘성장’이나 ‘숙성’이라는 단어를 논할 수 있는지 의문스러울 따름이다. 지쳐버렸던 허클베리핀은 그들을 만들어낸 기원에 대해 물으며 거슬러 올라갔고, 그 과정에서 목도한 것을 본작을 통해 그려냈다. 지나가버린 그들의 시간과 경험을 현재의 관점에서 ‘고생 끝에 성장’했다고 이야기하기엔 너무 섣부른 감이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다. 본작이 2018년 국내 음악계에서, 가장 반갑고 기뻤던 ‘재회’의 경험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먼 여행을 떠났다 또 왔습니다!” / “아침 해가 떠오르니 즐겨봅시다!”, 에너지 넘치는 연주에 발랄한 보컬, 그리고 노랫말. 첫 트랙을 들었을 때 많은 이들은 그저 본작 『EGO FUN SHOW』가 말괄량이와 같은 재기발랄하고 밝은 록 앨범이 될 것이라는 확신 아닌 확신을 했을 것이다. 이는 사실이다. 「잔다리 보행기」, 「참다랑어」와 같은 트랙에서 우리는 에고펑션에러가 선보이는 수준급의 연주와 함께, 재치있는 노랫말과 발랄한 보컬을 마주할 수 있고, 그러한 바이브는 앨범 전체적으로 유사하다. 하지만 단순히 그러한 밝음에만 몰두한 채 본작을 감상한다면 많은 것들을 놓치게 될 것이다. 자신들의 영혼을 고양이에 빗대어 하릴없는 나른한 삶을 추구하는 「Lazy Cat」은 너무나 빠른 현실을 사는 우리들의 모습과 대조되어 하나의 안식처가 되고, 「단속사회」는 여성에게 강요되는 불평등한 관념을 멋들어지게 고발하며, 과거의 장래희망 물으면 열 개를 답했던 아이를 떠올리는 「말괄량이 가시나」는 과거의 꿈과 현재의 모습의 괴리감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우리에게 웃픈 감상을 선사한다.

  하이라이트는 단연 「바보들의 왕」이다. 본작의 모든 이야기들은, 「바보들의 왕」에서 말했듯, 낮은 곳에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낮은 곳’에 사는 그녀들은, 그 곳에서부터 올려다보며 현대 한국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재치 있게 표현한다. 싸이키델릭 록과 펑크 록의 문법 아래 단단하게 다져진 그들의 연주는 장르적 쾌감을 불러일으키면서도,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그런 장르적 구분에 우리를 묶어두려 했었냐고 비웃는 듯 종잡을 수 없게 흘러간다. 그들의 본작은 갇혀있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들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자유를 전하는 메시지이다. 물론 그를 무작정 따를 필요는 없다. 그저 본작과 함께 우리의 방향을 고민하는 것도 재밌는 일일 것이다.

 
 
 


 
 
 
 
 
 
 
 

 

  일렉트로닉, R&B, 힙합, 퓨처 바운스, 앰비언트, K-Pop 등등, 본작 『Your Home』이라는 나무를 완성시킨 장르의 뿌리는 무수하게 많다. 중심에 있는 것은 R&B와 K-Pop이다. 테크니컬한 보컬 메이킹과 캐치한 멜로디, 음의 고저가 명확해 선명하게 다가오는 훅은 K-Pop의 그것을 연상시키며, 신시사이저와 드럼/베이스가 강조된 사운드의 전개와 보컬 퍼포먼스 그 자체는 R&B와 밀접하다. 그러면서도 앞서 언급했던 ‘다양한 뿌리’들이 쉴새없이 교대하며 본작의 소리를 꾸며낸다. 그만큼 압도적인 스케일로 완성된 사운드는 풍성한 볼륨과 독특한 질감을 자랑하며, 듣는 이의 감각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그를 자극한다. 그러면서도 절대 뻔한 패턴에 얽매이지 않은 채 사운드와 퍼포먼스의 균형을 완성시킨다. 가령 「너네 집」에서 번쩍거리며 트랙을 누비던 훅이 지나가고 난 후 Xin Seha가 여유롭게 들어서는 장면은 본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고, 보컬의 완급조절이 훌륭했던 「Seoul, Seoul, Seoul」, 과감한 변주로 크게 분위기를 환기하는 「파도」 등이 그렇다.

  본작의 노랫말 역시 ‘사랑’이라는 클리셰-적인 소재로도 재기발랄한 표현으로 진부함을 피해가며 본작에 힘을 보탠다. 애인 간의 사랑을 ‘집’이라는 키워드로 생동감 있게 그려낸 「너네 집」, 애인에 대한 권태를 재치 있게 표현한 「I Hate You」, 래퍼 Khundi Panda와 그럴싸하게 합을 맞추며 애인끼리의 섹스 직전의 상황을 치킨에 빗대어 묘사한 「통닭」 같은 경우가 특히 그렇다. 그렇게 본작에서 소리는 소리대로 우리의 감각을 누비며 이목을 집중시키고, 퍼포먼스는 퍼포먼스대로, 노랫말은 노랫말대로 자신의 소임 그 이상을 해낸다. 이들 요소가 가지고 있는 매력은 본작이라는 ‘집’ 아래에 모여 시너지를 내었고, 본작은 그렇게 ‘듣는 매력’을 절정까지 뽐내는 작품이 되었다. 이 모든 과정을 진두지휘한 수민이라는 아티스트가 위대해보이기까지 하는 이유이다.

 
 
 


 
 
 
 
 
 
 
 

 

  현 시점에서 가장 정점에 있는 K-Pop 아이돌은 누구인지에 대한 답에는 항상 BTS가 자리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팬덤을 거느리며 UN의 강단에 서는 등 다양한 방면으로 활약하는 이들이 정점에 있지 않다면 대체 누가 정점에 있을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그러한 부분들을 제외하고 그들을 아티스트로서 평가하고자 할 때, 그들의 앨범들은 언제나 아쉬웠다. 하지만 본작 『Love Yourself 轉 ‘Tear’』는 그들의 커리어에서도, 나아가 K-Pop의 역사에서도 기억될만한 앨범이다. 시작부터 기대를 깬다. BTS 특유의 ‘질주하는 사운드’를 기대했던 많은 이들은 뒤통수를 얻어맞았을 것이다. 잔뜩 박자를 일그러뜨리는 독특한 네오 소울 풍 반주에 맞춰 V의 담담한 보컬만이 이어진다. 이어지는 타이틀 곡 「Fake Love」에서는 BTS의 과거와 현재를 함께 조우하게 된다. 거친 신시사이저와 훅 부분에서의 강렬한 드랍은 과거 BTS가 추구하던 ‘질주하는 사운드’를 보여주고, 중후한 기타 리프와 몽환적인 이펙트, 그리고 이별을 울부짖는 우울하고 여린 가사는 현재 BTS의 음악을 보여준다. 과거와 현재의 조화로 보이는 것은 ‘성장’이라는 BTS의 미래다.

  샘플로 쓰인 플룻이 기타 리프와 조화를 잘 이루는 「134340」, 멤버 제이홉의 비기 「Airplane pt.2」 등등 전반적으로 트랙들이 잘 짜였을뿐더러 BTS 멤버들의 퍼포먼스 기량까지 상승했다. 이러한 긍정적 시도 전반에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BTS의 캐릭터를 잘 뒤집고 녹여낸 공이 크다. 네오 소울 인트로에서 끈적한 음색의 V를 전면에 내세우고, 과격하고 강렬한 훅에는 목소리가 가장 여린 진을 배치하는 등 아이디어가 빛났다. 여기에 ‘줄리아 하트’의 정바비와 ‘9와 숫자들’의 송재경 등이 작사가로 참여한 것도 훌륭한 결과를 낳았다. 사운드에 있어서도, K-Pop이라는 범주 안에 해외의 트렌드를 멋지게 녹여내었다. 그러면서도 거기에 BTS의 캐릭터를 녹여내어 장르 음악에 국한되지 않은 ‘BTS의 음악’이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드러내었다. BTS는 본작을 통해 왜 전 세계가 그들에게 주목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증명하였다.

 
 
 


 
 
 
 
 
 
 
 

 

  본작 『사랑의 시절』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은 그렇게 특별하지는 않다. 어느 포크 장르의 앨범에나 다 있을 어쿠스틱 기타, 피아노, 그리고 스트링, 그 안에서 어떤 ‘새로운’ 장르적 전회 같은 것을 기대하는 건 무리가 있다. 강아솔의 보컬에도 특별할 것은 없다. 한 글자 한 글자 조심스럽게 꺼내는 듯한 그녀의 노래에는, 우리에게 청각적 전율을 선사하는 기교도 고음도 없다. 하지만 본작에는 듣는 내내 마음이 움직이게 하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숨소리부터 입술을 떼는 소리 등, 강아솔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소리는 지워지지 않은 채 그대로 본작에서 드러난다. 그것은 최대한 진솔하게, 차가운 세상에 아직 남아있을 따뜻함을 되짚어가는 그녀의 노랫말과 겹치며 더욱 감정적인 감상을 이끌어낸다. 그래도 우리, 힘껏 서로를 사랑해줄래, 후반부 「그래도 우리」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아름다웠던’ 시절을 찾아 헤매는 그녀의 진심을 온전히 목도하게 되고, 우리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그 시절을 그녀와 같이 찾아 헤매게 된다. 아름다웠지, 우리

  그래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우리는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까지 떨어져 버린 것일까. 지금도 이 세상에는 각종 분란과 논쟁,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구밀복검이 생존의 기본 수칙처럼 자리 잡았다. 우리의 모습이 이렇게 되어버린 것은 우리가 현대에 우리 자신 하나조차 견디기 힘들 정도로 무거워진 생존의 무게에 떠밀렸기 때문이었을까. 그러한 현재 세태를 넘어 강아솔은 그 언젠가 있었을지도, 아니면 지금 누군가가 펼치고 있을, 그리고 우리가 펼칠 수 있을 『사랑의 시절』을 노래한다. 그 음악은 앞서 말했듯, 어쩌면 특별할 것 없는 사운드, 특별할 것 없는 보컬로 꾸며진 것일지 모르지만, 그녀의 가냘프면서 강인한 읊조림은 우리에게 현재를 헤쳐 나갈 용기를 준다. 진심이 가득 담긴 음악을 미워할 수 없는 이유이다.

 
 
 


 
 
 
 
 
 
 
 

 

* 본고를 작성함에 있어 아이디어를 제공해주신 조지환 필자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

  ‘밴드로서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앨범을 만들었다’던 그들의 자신감이 사실이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본작 『mono』가 발매된 지 시간이 꽤나 지난 지금에도 나에게 있어 장기하와 얼굴들 최고의 작품은 2집 『장기하와 얼굴들』이고, 그렇다고 본작이 아예 흠결이 없는 완벽함을 보여주는가 하면 그것 역시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나 역시 자신할 수 있다. 본작은 10년간 한국 음악계를 굳건하게 지켰던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마무리라는 것을 말이다.

  장기하 본인이 직접 “비틀즈의 오리지널 모노 엘피에서 영감을 받아 60년대 이후로는 사실상 쓰이지 않는 방식인 모노 믹스를 본작의 모든 트랙에 사용했다”고 말한 것처럼, ‘한국대중음악의 오래된 미래’라고 불리던 그들은 과거 음악들의 작법과 감성을 적절하게 리바이벌해 우리의 앞으로 데려온다. 그 대상은 산울림과 송골매, 서태지와 함께 해외로 나가 비틀즈에까지 너르게 분포해있다. 본작의 사운드 역시 장기하가 직접 앨범 소개 글에서 밝혔듯 아날로그함과 빈티지함, 레트로 감성을 현대적 신시사이저 운용과 결합해 우리에게 ‘장기하와 얼굴들식’의 사운드가 무엇이었는지 다시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본작에서의 노랫말은 우리가 익숙하게 알던 장기하의 그것과는 거리를 둔다. 그럴 수밖에 없다. 본작은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이름으로 내는 마지막 앨범이고, 장기하는 ‘홀로 남는다는 것’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계속해온 것처럼 보인다. 어휘의 쓰임이나 표현력에 있어서 장기하의 재치는 여전하지만, 「나와의 채팅」에서 드러나는 단절, 「등산은 왜 할까」에서의 외로움, 「나 혼자」에서의 고독 등은 장기하와 얼굴들이 처한 상황과 겹치며 묘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마지막 트랙 「별거 아니라고」에 이르러 비로소 장기하는 헤어짐에 대한 직접적인 감정을 끌어온다. 먹먹한 건반과 드럼 연주 위로 담담하게 들리는 장기하의 이야기는 이전의 여덟 트랙을 거슬러 올라가며 본작을 갈무리한다.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이름이기에, 그들의 마지막도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만 같다. 마지막 끝에서 그들은 처음으로 되돌아왔다.

 
 
 


 
 
 
 
 
 
 
 

 

  첫 트랙 「Soul Walk」부터 굉장히 흥미를 끈다. 분명 나얼과 브라운 아이드 소울에게서 많이 느꼈던 ‘블랙스플로테이션 OST’ 느낌인데, 일렉트릭 기타와 신시사이저가 다른 질감을 만들어낸다. 사운드가 점점 상승하다가, 후반부에 보컬이 더해져 절정에 이른다. 이어지는 트랙들 역시 비슷한 분위기를 이어가지만, 밝은 분위기의 모던 팝-소울 「Heaven」에 이어 두왑과 필리-소울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거기에 환상적인 세션까지 더해진 「Spring Song」, 경쾌한 드럼으로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펑크 음악 「Baby Funk」까지 각자에게 다른 매력이 있어 본작을 듣는 맛을 더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등장하는 트랙 「기억의 빈자리」. 이는 전형적인 보컬 중심 나얼의 팝-발라드인데, 트랙의 앞과 뒤에 각각 위치한 「Baby Funk」와 「Stand Up」이라는 사운드 중심 펑크 트랙의 엄호를 받으며, 본작에서의 사운드와 보컬의 균형을 잡아버리는 묘수가 되어버렸다. 「기억의 빈자리」에 이어지는 펑크 트랙 「Stand Up」은 꽉 차고 단단한 사운드에 나얼의 선 굵은 보컬이 귀를 매료시킨다. 「Blue Wing」에서의 팝으로의 회귀 이후, Enchantment의 곡을 그대로 리메이크한 「Gloria」도 훌륭하다. 이외에도 70년대와 90년대 알앤비를 오가며 필리-소울을 더하고, 가요의 멜로디를 얹는다는 이색적인 발상의 「널 부르는 밤」이 있고, 또 정규 수록 마지막 트랙인 「Comforter」는 어떠한가? 브라운아이드소울 시절부터 늘 그들의 음악과 함께해온 가스펠 트랙으로서, 본작의 경건한 분위기를 더욱 농익게 한다.

  수록곡 하나하나 소위 ‘버릴 트랙’이 없다. 이러한 나얼의 성취는 그의 ‘블랙뮤직’에 대한 치열한 학문적 분석이 낳은 결과이다. 60년대에서 90년대의 알앤비, 소울, 필리-소울, 두왑, 펑크, 디스코 등등의 블랙뮤직 서브장르의 역사를 담아냄과 동시에, 그것을 자신의 색으로 녹여내기까지 했다. 영리한 트랙 구성으로 사운드와 보컬의 균형을 맞췄고, 인간적 따뜻함과 종교적 경건함을 연출하는 적절한 프로듀싱은 본작을 더욱 새롭고 아름답게 한다. 결론적으로 본작은, 20년 커리어 동안 한 우물만 파면서, 탐구와 분석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나얼이 우리에게 주는 『Sound Doctrine』(소리의 교리)이다.

 
 
 


 
 
 
 
 
 
 
 

 

  첫 트랙 「늑대의 탈을 쓴 양」에서부터 3분 내내 기분 나쁜 앰비언트만이 흐르더니, 「우리 둘에 관한 박물관」은 그 앰비언트 사운드를 이어받아 정제되지 않은 건반 연주와 합세시키며 더욱 불쾌하고 거슬리는 소리를 제조해낸다. 그러더니 이게 웬걸, 다음 트랙 「나리 유코 진」에서는 전 두 트랙에서 쌓인 무드가 순식간에 증발하고 통통 튀는 신스 팝이 그 자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닌가. 앨범 전반적으로 그러한 모양새를 보인다. 앰비언트와 일렉트로닉, 테크노와 드론, 그리고 신스 팝, 그 외 다양한 장르적 요소들이 이리저리 뒤엉키며 주도권을 다툰다. 노이즈가 중심이 되어 우리를 끌고 내려가다가도 번쩍이는 신시사이저와 전자음들이 등장하며 다시 한 번 판을 뒤집어엎고, 「친밀한 적들」이나 「태풍 전날 밤」과 같은 트랙에서는 2018년 3월에 새로 영입한 아티스트 황소윤의 연주를 필두로 록의 문법에까지 그 발을 뻗어간다. 「불량배들, 서울」이나 「해안도시에서의 낮술」과 같은 트랙에서는 칩튠을 연상케 하는 발랄한 신스와 전자음이 통통 튀며 불안정한 멜로디를 형성하기도 한다.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허유의 보컬은 묘한 분위기로 변조되어 그 자체로 하나의 이펙트처럼 기능하며 본작의 사운드 조성에 힘을 싣는다.

  다양한 장르들이 지속적으로 힘겨루기를 하는 탓에 본작 전체가 중심을 잃고 무너져 내릴 수도 있었겠지만, 오히려 모임 별의 아티스트들은 그러한 중심이라는 것이 애초부터 의미가 있는 것이기는 했냐는 듯 더욱 과감하게 전진했다. 멤버 하나하나 개성이 강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 모임 별이기에, 그들의 음악은 어느 것 하나 예상 가능한 지점이 없이 파편화된 소리로 화해 충돌과 공존이 반복되는 기묘한 체험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그 과정에서 본작에 대해 우리는 무한하게 커진 감상의 갈림길들과 마주하게 되고, 그러한 음악적 체험은 일련의 새로움이 되어 번쩍이게 된다. 별들이 오랜만에 모여 만들어낸 본작이라는 금은 너무나도 눈부셔 그 누구도 함부로 손댈 엄두를 못 내고, 그렇기에 여전히 그 주인은 아무도 없다.

 
 
 


 
 
 
 
 
 
 
 

 

* 본고의 원문은 [온음 2018 총결산 : 선정 결과 공개]의 ‘The Best Rock Album of 2018’ 선정글임을 알려드립니다. *

  흔히 ‘한국적’이라고 불리는 음악들은 숱하게 있어왔지만, 과연 어떠한 것이 ‘한국적’ 음악인 것인지에 대해 대답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꽹과리, 북과 같은 국악(* 國樂)에서 사용된 전통 악기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음악이 ‘한국적’인 음악인가? 아니면 과거 조상들의 전통 어딘가에 놓여있는 추상적인 정서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 음악이 ‘한국적’인 음악인가? 민요풍으로 보컬을 구성해 심금을 울리는 음악이 ‘한국적’인 음악인가?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한국적’이라는 용어를 두고 떠올리는 것은 언제나 한국의 과거와 전통에 맞닿아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의 과거와 전통에 맞닿은 부분들이 두드러진다고 해서 ‘한국적’이라 불리는 음악들이, 그 제작자들은 겪어보지 못했을 확률이 높은 저 먼 과거의 모습을 무작정 그리워하는 음악이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한국적’이라 불리는 음악들에서 보이는 과거와 전통의 풍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그것들 자신의 모습이 아닌,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아시안체어샷의 『IGNITE』는 여러 면에서 지극히 ‘한국적’이다. 타이틀 트랙 「빙글뱅글」에서 드럼의 심벌을 마치 꽹과리처럼 다루는 격정적인 연주를 대표적으로 하여, 곳곳에서 한국의 전통 악기가 만들어내는 무드를 재현하기 위해 힘썼고, 황영원의 보컬은 민요와 판소리 사이 그 어딘가에서 맴도는 듯 하는 독특함을 가진다. 노랫말에서도 마찬가지다. 「뛰놀자」에서 즐겁게 펼쳐지는 놀이 한 마당, 한 편의 거대한 혁명가와도 같은 「친구여」, 「무감각」에서 드러나는 뼛속 깊이 새겨져있는 한(** 恨), 「산, 새, 그리고 나」에서의 고대 시조와 같은 노랫말의 배치 등등이 본작이 ‘한국적’인 음악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러면서도 단순히 ‘한국적’이라는 것에 매달리지만은 않고, 싸이키델릭 록, 팝, 발라드, 메탈 등의 양악(*** 洋樂)의 장르들도 군데군데 어우르는 가운데 끓어오르고 솟구치는 에너지를 가진 음악을 만들어낸다. ‘한국적인 록 음악’이라는 이중적인 정의내림 아래에서 균형을 잃지 않는다.

  그래서 타이틀 트랙 「빙글뱅글」은 더욱 특별하다. 동요 노랫말에서 동심을 뺀 버전처럼 보이는 “아침 해가 떴다 우리 밥 값하러 어서 나가보자”라는 라인과, 다른 트랙들의 노랫말과 괴리감이 드는 “빙글뱅글 돌고 도는 현실의 목줄이 / 나와 그대를 끊어버리네”라는 라인은 ‘한국적’으로 연출된 연주 아래에서도 현재의 대한민국과 그 안의 우리 모습을 그대로 투영한다. 분명히 끓어오르는 강한 연주인데, 그 아래에 놓인 화자는 시계추를 따라 같이 돌아갈 뿐이다. 「빙글뱅글」에서 시작된 이런 텅 빈 공허함은 뒤이은 「꿈」에서도 그대로 이어지면서, 그 다음의 「친구여」 같은 혁명가나 「무감각」에서의 한마저도 덧없게 한다.

  그렇기에 본작에서 아시안체어샷이 꾸며낸 ‘한국적’인 정서는 지극히 이중적이다. 어느 한 편으로는 과거의 한국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지만, 동시에 현재의 한국의 모습을 비추며 그곳을 살아가는 한국인들만이 독해해낼 수 있는 공허함을 담아내기까지 한다. 본작의 마지막 두 트랙 「봄을 찾으러」와 「그땐 우리」에서는 현재의 공허함의 실마리로서 전통과 자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온고지신(**** 溫故知新) : 과거를 토대로 현재를 직시하는 이러한 태도는 ‘한국적’이라는 말이 여전히 큰 힘을 가지게 하며, 그렇기에 지극히 ‘한국적’인 본작에는 큰 힘이 있다.

 
 
 


 
 
 
 
 
 
 
 

 

  『flaw, flaw』, 말 그대로 흠결(flaw)을 가진 이가 우리에게 선보이는 결함 가득한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세상의 시작은 오롯이 Jclef 본인의 내적 자아에서부터 비롯하지만, 그 시선은 자기 자신을 넘어 자신과 관계하는 타인, 더 나아가 그 타인들과 함께 관계하는 세상 그 자체에까지 뻗어나간다. 이는 본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더욱 조심스러워지는 이유이기도하다. 흠결로 덧칠된 그녀의 시선은 똑같이 흠결이 있는 모두에게 걸쳐져있고, 본작에 대해 어떠한 말을 건네기 전 그 시선과 눈이 마주친 순간 나 역시 흠결이 있는 하나의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허나 잠시 그녀의 눈에서 시선을 돌려 반대편을 바라볼 때 이 세상 위 모든 흠결은 거세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 세상 위 모든 흠결은 거세되기 직전의 상황에 있다. 당연한 이치이다. 흠결은 단어 그대로 흠결로서 남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은 흠결을 가진 채 완벽할 수 없게 태어났음에도, 동시에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흠결에 대해 애써 외면한 채 서로가 가진 흠결의 크기를 잰다. 모두의 흠결은 서로의 가슴 속 깊은 곳으로 감춰지고, 흠결의 크기를 재던 기억만이 고스란히 남아 자신의 것보다 더 ‘커 보이는’ 흠결을 가진 이들을 배제하기 시작한다. 자신들의 눈에 ‘작아 보이는’ 흠결을 가진 이들이 세운 규준은 하나 둘 씩 그 밖의 이들을 내쫓아내고, 자신의 흠결은 더 깊게 감추면서 타인의 흠결은 끌어올리니 ‘모든 사람들은 흠결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모호해지는 지경이다. 그래서 흠결 있는 이들이 세운 규준, ‘정상’이라는 규준이 다른 그 무엇보다 흠결이 큰 것처럼 보인다.

  다시 Jclef와 눈을 마주쳐보면, 아이러니하게도 반대편에선 크기가 제각각인 것처럼 보였던 각자의 흠결들이 모두 같은 크기, 같은 모양으로 정렬해있다. 그녀는 본작에서 ‘모든 사람들은 흠결을 가지고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 우리 모두가 잊고 있었을 사실을 강하게 상기시킨다. 그녀의 흠결 있는 세상을 향한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FLAW, FLAW」와 「꾐」을 지나 첫 발을 내딛는 「주스 온더 락」에서 강한 어지러움을 느끼고, 「동행자」에서부터 그녀의 흠결 있는 세상은 내적 자아를 벗어나 타인에게로 날아간다. 하지만 그렇게 유쾌하게 만은 그려지지 않는 타인과의 동행은 본작 속 그녀에게 어떠한 좌절을 안겨줌과 동시에, 동행자 역시 그녀와 같은 흠결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각인시킨다. 얼른 내놔라, 두 어깨를 잡고 흔들어서 / 나는 아무거나 짚이는 것을 토 했어 / , 이런 건 대화라 불리면 안 되는 것 아닐까, 거봐, 이 바다는 눈치가 참 빨라서 나의 어설픈 폼새를 읽고 틈만 나면 삼키려 들잖아와 같은 인상적인 라인들이 그를 대표한다.

  본작에서 그녀와 함께하는 동행자는 ‘너’로 이야기되지만, 동시에 ‘모든 이’, 그리고 ‘모든 이’가 관계하는 세상 그 자체로 뻗어나간다. 유쾌하지 않았던 타인과의 동행의 경험은 Jclef에게는 곧 여행을 시작한 이유가 된다. 왜 우리는 ‘모든 사람들은 흠결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배척하는 것인가? 질려버린 그녀는 망치를 들고 실천할 수 있을 리 없는 파괴를 부르짖으며 협박하기도 하고(「WAT`S YOUR HOUSE FOR」),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과 더디게 살아가기를 다짐하기도 하지만(「THE UNCERTAIN`S CLUB」), 불행하게도 끝내 모두가 자신의 흠결을 받아들이게 되는 때는 지구 종말 직전일 뿐이었다(「지구 멸망 한 시간 전」).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거봐, 저길 엿보기만 할 수 있는 이곳이 지상낙원이야라며 종말 직전에 애쓰는 모두를 비웃는 그녀의 모습은 그녀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여행을 해 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단순히 세상 모든 것들의 흠결에 대해 이야기하는 잘 짜인 노랫말뿐만이 아니라, 트렌디한 힙합과 R&B의 경계에 걸쳐 곳곳에 펑크와 재즈 등을 잘 섞어낸 프로덕션, 사운드클라우드 랩과 보컬의 경계에 걸쳐있는 탁월한 퍼포먼스까지, 본작의 모든 것들은 항상 어딘가에 걸쳐져 애매하면서도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이 역시 세상의 흠결에 대해 이야기하는 본작의 정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만 같다. ‘모든 사람들은 흠결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서로의 흠결을 자연스럽게 수용할 수 있게 되는 때는 과연 언제쯤 오게 될까?

 
 
 


 
 
 
 
 
 
 
 

 

  『sarah』, 아니, ‘살아’. 세상을 떠난 친구를 기리며 만든 두 트랙 「걱정」과 「Wish」에서부터 본작은 살아 숨 쉰다. 하우스와 빅 비트를 중심으로 짜인 그녀의 음악적 방법론은 2016년 발매된 전작 『moves』와 유사하지만, 『moves』와 달리 본작에는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이 감돈다. 하지만 슬픔이 본작에 머물러있다고 해서 본작을 단순히 슬픈 앨범으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본작은 우리가 울면서도 춤을 추게 만드는 앨범이고, 어쩌면 그렇게 ‘울면서도 춤을 추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고, 살아남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첫 트랙 「걱정」은 타인에게 건네는 다섯 마디를 위한 하나의 8분의 대서사시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과 함께 드럼과 하이햇, 피아노 연주가 인상 깊게 흐르고 그 위를 그녀만의 상쾌한 전자음이 흐르듯이 덮는다. 그 직후 다섯 마디가 점점 퍼즐을 맞춰갈 때마다 연주에서 뿜어져 나오는 감정의 낙차는 상당히 크다. 때로는 초반부 드럼과 하이햇의 강렬함이 주가 되고, 때로는 상쾌하고 밝은 전자음이 주가 되고, 때로는 처연하고 슬픔을 감추는 듯한 피아노 연주가 주를 이룬다. 곳곳에 삽입된 물소리와 같은 자연음은 「걱정」의 연주가 감정의 흐름과 동시에 시간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마지막에 아침,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새소리와 함께 “잘 지내요?”라는 말로 방점이 찍히는 순간은 전율이 인다. 그 다섯 마디를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감정을 「걱정」과 함께 나누었을까?

  이어지는 「Wish」에서 우리는 첫 음이 시작되는 순간 빨려 들어가고 만다. 트랙의 중심으로 자리하는 신시사이저의 멜로디는 마치 여행을 하는 것처럼 트랙 곳곳을 누빈다. 처음에는 한 걸음씩 선명한 발자국을 남기고, 건반과 드럼의 뒤에 숨어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다시금 모습을 드러내 다른 소리들과 발을 맞추더니 갑자기 간소화된 형태로 나타나 우리를 놀라게 하기도 한다. 칩튠, 빅 비트, 하우스 등에서 차용한 각양각색의 일렉트로닉 요소들을 거침없는 강약조절과 함께 배치한 사운드들은 전반적으로 밝지만, 끝으로 다다를수록 그 사운드들은 뒤로 후퇴한다. 하지만 신시사이저 멜로디는 주인공으로서 계속 자리를 지킨다. 사운드들이 빠지고, 건반 약간과 드럼 조금만을 동료로 남긴 채 여전히 흘러가는 신시사이저 멜로디는 너무나도 처연해 슬픈 마음이 든다.

  그리고 「Blink」와 「Earthquake」에서는 『moves』에서 우리가 마주했던 밝고 댄서블한 빅 비트 음악을 엿볼 수 있지만, 「Blink」에서 2분 40초를 지나며 순식간에 무드가 가라앉을 때, 「Earthquake」의 마지막 2분 동안 반복되는 신경증적인 전자음들의 향연이 빗발칠 때 춤을 추는 우리의 얼굴은 묘하게 일그러지게 된다. 본작의 모든 트랙이 그렇다. 「Water」에서 차분하게 물소리가 이어지다가 한 순간 신스음이 높아지는 장면, 「장난」에서 드럼이 퇴장하고 「Wish」의 신시사이저 멜로디를 연상케 하는 음이 등장하는 장면, 015B의 「텅 빈 거리에서」를 샘플링한 트랙 「Rain Dance」에서 샘플이 퇴장하고 밝은 리듬이 그 자리를 대체하는 장면 등등, 본작은 모든 부분에서 우리에게 춤을 추게 하면서도 단순히 그 춤이 몸짓으로서만 머물게 하지 않고 다양한 표정 변화를 통해 더욱 강한 생동감을 부여할 것을 제안한다.

  본작의 앨범 소개 글에 쓰여 있듯, “쿵 하면 쿵, 짝 하면 짝”(* 앨범소개 참조)하는 음악, 그녀는 사람이 춤을 추게 되는 음악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 복잡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왜 춤을 추는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을 간과하지도 않았다. 앞서 첫 문단에서도 말했듯, 그녀가 다양한 감정들을 녹여낸 본작의 흐름은 우리가 울면서도 춤을 추는 것을 멈추지 못하게 한다. 그것은 아마 세계의 풍파 속에서 지칠 대로 지쳐버린 우리를 위해 그녀가 마련해준 독무대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 자신을 속이며, 그녀가 선물한 팔찌를 떼어낸 채 무대 밖으로 걸어 나갈 것인가? 아니다. 우리는, 살아남아야한다.

 
 
 


 
 
 
 
 
 
 
 

 

* 본고의 원문은 [온음 2018 총결산 : 선정 결과 공개]의 ‘The Best Rap/Hiphop Album of 2018’ 선정글임을 알려드립니다. *

  인간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언어의 체계는 우리를 지배한다. 두 명의 사람이 서로의 일상을 묻는 작은 담소에서부터 사회를 정의하는 거대한 담론까지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모든 것들은 언어의 체계 아래 정제되어 드러난다. 언어는 또한 자신의 안에서 변화무쌍하며, 모든 집단들 내에서 각기 다른 형태로 발현된다. 그 중에서도 진정 우리를 지배하는 언어의 체계는 시스템에 의해 정해진 ‘표준’ 내지는 ‘공용’이라 불리는 주류언어의 체계이다. 주류언어는 다른 언어들을 철저하게 잠식하며 자신의 수중에 쥐어 쉽사리 드러날 수 없게 제한한다. 어떤 집단에서의 주류언어는 다른 집단의 주류 언어에 밀려 비교적 변두리에 놓이고, 그 변두리에조차 놓이지 못한 언어는 점차 소외되며 ‘사어’(* 死語), 즉 죽은 언어가 되어 언어로서의 영향력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다.

  우리가 음악적으로 장르의 체계에 대해 논할 때 그를 ‘문법’이라고 칭하듯, 음악도 철저하게 ‘언어적’이다. 변하는 시스템의 흐름에 맞춰 음악의 언어 역시 변화하며, 음악에서의 주류언어는 각 장르에서의 트렌드로 정립된다. 한국 힙합에서의 주류언어 역시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면서 장르의 흐름을 결정한다. 매캐한 트랩 비트, 오토튠을 위시로 한 사운드클라우드-랩, 휘발적인 자기과시성 가사 등, 소위 ‘트렌디’하다고 불리는 한국 힙합의 작품들은 장르 내에서의 그러한 주류언어 체계를 철저하게 맞춰간다. 그와는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작품들은 선택받지 못해 외면당하고, 결국 ‘사어’화되어 주류언어의 체계 아래 편입되어버린다.

  XXX는 『LANGUAGE』에서 이미 죽어버린 ‘사어’를 구사한다. FRNK는 정글과 DnB(** 드럼앤베이스), 글리치, 테크노, 덥스텝 등 일렉트로닉 음악들에서 따온 사운드들을 재배열하고 정제하며 실험적인 사운드를 보여주고, Kim Ximya는 강하게 치고들어오는 날카로운 랩-메이킹으로 FRNK가 펼쳐놓은 비트위에서 존재감을 뽐낸다. FRNK와 Kim Ximya가 보여주는 음악적 문법은 한국 힙합 내에서 주류언어가 되지 못한 채 내몰려버린 ‘사어’이고, 그들의 언어는 주류언어와 정반대의 위치에 놓인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Kim Ximya의 노랫말은 메인스트림 한국 힙합씬과 그에 편승하는 힙합 아티스트들, 그리고 그것을 거부감 없이 수용하는 리스너들에게 무자비한 공격을 퍼부으며 그들과 대척점에 있는 주류언어의 근간을 뒤흔든다. 「S_it」에서 어차피 XXX는 사라질 것이라 말하는 누군가에게 “좆까, 난 너희를 눈앞에서 찢어버려야 돼”라고 말하듯이 말이다.

  그런데 그들이 구사하는 ‘사어’는 주류언어를 공격함과 동시에 주류언어에 대한 의미 있는 갈망을 같이 드러낸다. 앨범의 포문을 여는 트랙 「18거 1517」의 인트로는 자신이 주류가 된 모습을 상상하며 ‘돈, 효도, 자동차’라는 한국 힙합 주류언어의 문법을 그대로 차용하고, 이후에도 곳곳에서 자신의 음악과 노랫말, 위치를 비웃으며 한국 힙합의 주류언어를 좇는다. 「Trust Us」에서 “또 돈 얘기 돈, 돈, 돈, 나도 싫어 그럼 auto mobile 얘길 하니? 아니 이런, 힙합은 돈 얘기 말고 뭐있어?”라고 스스로를 자조하듯이 말이다. 결국 그들이 구사하는 ‘사어’는 주류언어가 ‘되지 않은 언어’가 아닌 ‘되지 못한 언어’이고, 그 사실은 Kim Ximya의 노랫말 기저에 깔린 공격성마저 우스운 질투로 보이게 한다.

  주목해야할 것은, XXX가 본작에서 주류언어를 질투하며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과정에서 그들의 ‘사어’를 잃지 않고 도리어 꽉 쥐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설명한대로 Kim Ximya는 주류언어를 구사하는 아티스트들의 성공과 돈을 질투하며 그에 편입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간주곡」에서 “내 지루한 음악이 해답이니까”라고 발칙하게 외치며 스스로의 위치를 격상하거나, 「뭐 어쩔까 그럼」에서 “예술은 인간, 인간은 욕심, 욕심은 돈 … 근데 이젠 돈 얘긴 그만”이라고 말하며 주류언어를 추종하는 다른 이들과 자신 사이에 선을 긋기도 한다. 더불어 Kim Ximya가 주류언어의 체계를 갈망하는 와중에도 FRNK의 프로덕션은 오롯이 ‘사어’의 문법만을 구사하며 Kim Ximya의 갈망과 질투가 그 자체로 모순이 되게 만든다. 주류언어에 잠식당했던 ‘사어’가 주류음악의 밖에서 자신의 죽음을 긍정하는 순간이다.

  죽음을 긍정한 XXX의 ‘사어’는 어쩌면 본작의 시작부터 자신들이 주류음악의 그늘 아래서 부활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 ‘사어’가 있는지도 모를 것이고, 누군가는 그것이 곧 사라질 것이라 비웃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단 둘만이 구사하는 언어, 본작은 그렇기에 더욱 매력적인 『LANGUAGE』다.

 
 
 


 
 
 
 
 
 
 
 
 
 

 

* 본고의 원문은 [온음 2018 총결산 : 선정 결과 공개]의 ‘The Best Folk Album of 2018’ 선정글임을 알려드립니다. *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나는 아직도 『무너지기』에 대해서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무너지기』에 대해 생각해본다. 앨범 커버 폰트도 당황스럽고, 노랫말은 잘 들리지도 않고, 트랙들의 구성도 친숙하지 않다. 우리가 흔히 들을 수 있는 음악들과는 거리감이 크다. 모든 사람들이 마음 놓고 들을 수 있기에는 본작은 너무 친절하지 못하고, 불안정해 위태롭다. 그런데 이미 본작은 평단과 리스너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정말로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결산에 본작을 집어넣으며 본작의 아름다움을 역설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이내 입소문을 타고 해외로까지 번지며 본작이 한국 음악사에서 가질 위치를 더욱 공고히 했다. 도대체 왜? 앞서 말했던 사항들 : 노랫말은 잘 들리지도 않고, 트랙들의 구성도 친숙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보다 더, ‘위태롭고 불안하다’는 것. 다른 음악에는 비판이 되는 이러한 말들이 본작에는 그렇지 못하는 것 같다. ‘위태롭고 불안’한 것은 결국엔 무너지기 마련이다.

  나는 본작을 ‘포크’라고 칭한다. 어쿠스틱 기타가 모든 트랙에서 등장해 소리의 부품을 이루며 그 코드 하나하나가 주는 떨림이 지극히 ‘포크’적이고, 공중도둑과 섬머소울의 목소리에도 ‘포크’의 애수가 서려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본작을 두고 ‘팝’이라 하고, 누군가는 본작을 두고 ‘일렉트로닉’이라고 말한다. 모두가 맞았고, 모두가 틀렸다. 「왜?」에서 섬머소울의 등장과 함께 어쿠스틱 기타가 신시사이저와 뒤섞이는 일련의 과정, 「쇠사슬」의 기타 연주 사이사이로 굴러들어오는 전자음, 「감은 듯」과 「곡선과 투과광」에서의 지극히 ‘팝’의 색깔을 띤 멜로디. 별이 밤을 수놓듯 본작을 장식하던 전자음들이 거의 퇴장하고 어쿠스틱 기타가 전면에 등장하는 「함께 무너지기」, 일렉트릭 기타가 등장하며 노이즈 록의 분위기를 풍기는 「흙」 등. 본작은 특정 장르로 칭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장르들이 중심이 없이 어지러이 꽃핀다. 그리고 그렇게 꽃피는 것들은, 자기-복제를 하지도 않고, 언제나 우리의 예상을 벗어난 형태로 치고 빠지면서 혼란을 가중시킨다. 장르의 경계, 전형성과 정형성, 우리들의 예상과 기대, 그들과 함께 본작은 무너진다.

  또 반대로 무너지기 직전의 ‘위태롭고 불안’한 것은, 그렇게 쌓여있기에 ‘위태롭고 불안’한 것이다. 본작에서는 결코 희미하지 않은, 하지만 위태로운 소리들이 서서히 쌓여가고 있다. 기타 소리가 한 폭씩 쌓이고, 그 속으로 노이즈와 전자음, 신시사이저가 들어오고, 또 공중도둑과 섬머소울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합류한다. 공중도둑과 섬머소울의 목소리는 엄연히 노랫말을 가지고 있는 ‘노래’이고, 그 노랫말을 하나하나 곱씹어보면 추상적인 – 어느 부분에서는 종교적이라고 느껴지기까지 하는 – 비유와 단어, 의미들이 부유하고 있는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노래’이다. 그런데 본작에서 그들의 ‘노래’는 ‘노래’이기를 포기한다. 그 대신 켜켜이 쌓여있는 사운드들의 층의 중간 그 어디쯤으로 조심스레 넘어가 그저 같이 흘러가는 하나의 ‘소리’가 되기를 선택한다. 그렇게 쌓인 소리들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오묘한 감각을 만들어내고, 그 감각은 우리에게 만져짐으로써 깊은 질감을 가진 다양한 모양들을 빚어내고, 그 모양들은 다양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쌓인 소리들로 쌓여가는 감각들은, 그 소리들처럼 ‘위태롭고 불안하다’. 언제 무너질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쌓이지 않은 것은 무너질 수 없다. 그렇기에 모든 것은 ‘쌓이고, 무너진다’. 그런데 본작에서의 무너지고 쌓임은, 쌓이는 것이 먼저인지 무너지는 것이 먼저인지 짐작하는 것도 어렵다. 끊임없는 무너지기와 쌓임의 반복은 본작과 함께하는 우리까지 끌어들인다. 이것을 ‘압도적이다’와 같은 비평적 찬사로 수식할 수는 없다. 압도적인 것은 상대를 무너뜨리고,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하지만 본작은 절대 무언가를 ‘무너뜨리고’ 있지 않다. 그저 스스로 쌓아지고, 무너지고, 다시 쌓아지고, 다시 무너지고를 반복할 뿐이다. 어쩌면 그래서, 본작이 나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많은 찬사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본작은 우리에게 결코 희미하지만은 않은 소리들과 함께, 우리를 자신의 품 안으로 불러내 같이 무너지고 쌓이며 더듬더듬 나아가는 그러한 앨범이 아닐까. 그래서 본작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나는 아직도 『무너지기』에 대해서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 번 『무너지기』에 대한 글을 써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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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듣고, 글을 씁니다.
http://www.tonple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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