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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2019에 다녀와서

이미지 출처 : DMZ PEACE TRAIN MUSIC FESTIVAL 홈페이지

며칠 전 철원에서 열린 DMZ 피스트레인에 다녀왔습니다. 기억에 남는 것들을 전부 모아 적어내릴 수는 없겠지만, 한 가지 만은 글로 다루고 싶어 이렇게 후기를 남깁니다.

페스티벌은 6월 7일 밤 시작해 6월 9일 밤 끝났습니다. 그 중 8일과 9일 양일간 서울 커뮤니티 라디오(SCR)가 이끈 DJ 스테이지가 열렸습니다. 고석정 중앙의 임꺽정 동상 앞에 분수대가 하나 있는데, 분수대 맞은편 작은 무대에 DJ 데크가 설치되었습니다. 그 무대를 SCR 스테이지라고 불렀습니다. 페스티벌의 애프터파티도 SCR 스테이지에서 계속됐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분수대를 빙 둘러싸고 춤을 추었습니다.

8일, 쿠바에서 온 Guámpara Music이 SCR 스테이지에 올랐을 때였습니다. 신명나는 폴리 리듬에 꽤 많은 인파가 분수대에 모였습니다. 저도 데크 앞에서 춤을 추고 있었지요. 오후 네 시 반 언저리 쯤, 제 옆에서 춤추고 있는 두 명의 어린 레이버1들을 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키는 많이 작았지만, 라틴 리듬에 몸을 맡긴 채 정말 신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저는 DJ 데크 앞에서 그렇게 어린 레이버들을 본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파티가 열리는 곳들은 대개 미성년자의 출입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니까요. 가뜩이나 두 아이는 아직 열 살도 되지 않은 듯 보였기 때문에, 더더욱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그 정도로 어렸을 때, 저는 저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과 같이 춤을 추지는 못했습니다. 보통 어린 제가 춤을 출 때면 어른들은 무대 반대편 관객석에 줄지어 앉아있거나, 빙 둘러싸 흐뭇한 표정으로 앉아 박수를 치고는 했지요. 어린 아이들이 춤추고, 아이들에게 춤을 춰보라고 종용한 어른들이 그 주위에서 그저 아이들을 바라보며 박수만 치는 광경은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지요. 사실, 이건 꽤나 모욕적인 장면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반면 그 날 SCR 스테이지 앞에서는 달랐습니다. 그 앞에 있는 사람들은 동등한 레이버로서 데크 앞에 모였습니다. 모두 같은 음악을 들었고, 같은 리듬에 맞춰 춤을 추었습니다. 여느 때건 볼 수 있던 불균등이 어느 정도 옅어진 듯 보였어요.

DMZ 피스트레인은 철원 군민이라면 자유롭게 입장할 수 있는 축제였습니다. 그 덕에 인근 지역주민들께서 많이들 참여하신 듯합니다. 보통 이런 페스티벌들엔 스테이지에 오를 아티스틀을 평소부터 관심 있게 지켜봐 온 팬들이 대부분이게 마련이지요. 철원 군민들을 향해 개방된 문은 페스티벌에 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도록 해주었고, 덕분에 피스트레인은 훨씬 더 흥겨운 축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SCR 스테이지에도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50대를 넘긴 듯한) 중년의 레이버들도 여럿 보았고,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레이버들도 보았습니다. 플로어에서 중년층 이상의 인구를 보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지요. 일반적인 베뉴들에서는 마주칠 수 있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다소 한정되어있는 듯합니다. 다소 과장된 서술인지도 모르지만, 20대에서 30대(또는 40대)까지의 사람들은 클럽 문화에 (원했든 원치 않았든) 더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는, 특권 받은 연령대로 표상되는 듯합니다. 그런데 그 날 플로어에서 저는 저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들과도 함께 춤출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석정에서 겪은 경험들은 제게 의미심장합니다.

올해 피스트레인의 슬로건이 “Dancing for a Borderless World! 서로에게 선을 긋기 전에 함께 춤을 추자!”였습니다. 8일 오후 SCR 스테이지 앞에서 저는 그 슬로건이 현실화되었다고 느꼈습니다. 나이 때문에 플로어에 다가가지 못하거나, 일방적인 위계에 의해 춤추는 사람과 구경하는 사람이 갈라지는 것이 ‘선 그어진 상황’이라고 한다면, 그 날의 플로어는 정반대로 느껴졌습니다. 어른과 아이가 모두 한 데 섞여 춤을 추었으니까요.

1999년 KBS 1TV의 《현장르포 제3지대》라는 프로그램에서 〈20세기 마지막 문화 테크노를 말한다〉라는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습니다. 그 다큐멘터리에서는 테크노가 ‘젊은 세대의 문화’로 소개됩니다. 폴 반 다이크의 내한 파티를 보여주면서 내레이션은 비장한 어투로 이렇게 말합니다. “끝없이 반복되는 리듬에 온 몸을 내맡기는 테크노에, 지금 우리 젊은이들은 감전돼있었다.” 테크노가 젊은이들의 음악이었다는 문구가 틀렸다고 적으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사실이었을 테니까요. 정확한 자료를 찾아본 건 아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도 테크노를 향유하는 인구는 아마 소위 ‘젊은 세대’에 몰려있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다큐멘터리는 하나의 실험과 함께 끝납니다. 다음과 같은 나레이션의 말로 실험이 시작됩니다. “기성세대, 즉 어른들도 이 문화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어르신들 앞에서 테크노를 틀어보자는 것이지요. 그래서 달파란씨를 비롯해 당시 연남동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펌프 기록’ 멤버들이 장비를 챙겨서 탑골 공원으로 갑니다. 탑골 공원에 모인 할아버지들께서는 한동안 무표정으로 구경하십니다. 나레이션도 “생소한 음악 앞에 할아버지들은 움직임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30분 쯤 지나고 몇 분의 할아버지들께서 춤을 추시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할아버지들은 반응하지 끝내 반응하지 않으십니다. 몇몇 분들께선 싫은 내색을 드러내시기도 합니다.

테크노를 통해 세대 간의 구분을 넘으려하고, 선을 넘어 테크노를 침투시키려 한 실험은 분명 가치 있는 시도겠지요. 그렇지만 저 다큐멘터리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습니다. 특정 세대의 관점에서 다른 세대의 경향성을 시험해보려는 의도에선 오만한 시선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끝내 다큐멘터리가 테크노는 노년층에겐 낯선 문화라는 점을 확인하고, 그럼으로써 그와 같은 견해를 강화하고 다시 유포하는 데에 그쳤다는 점이 가장 아쉽습니다. 어쩌면 제가 쓰고 있는 글도 마찬가지로 그런 식의 견해를 재유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제가 고석정에서 겪은 것이 특별한 경험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아이들이나 어르신들이 레이브에 참여하는 것은 예외적인 일이고, 이른바 ‘젊은 세대’가 모여 파티를 여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라는 점을 도드라지게 서술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부지불식간에 레이브 문화는 젊은 세대의 것이라고 전제하고, 그와 같은 전제를 제 글을 통해 강화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SCR 스테이지가 피스트레인의 슬로건을 완전하게 구현했다고도 자신하기 힘듭니다. 그 데크 앞에도 어떤 선은 있었으니까요. Guámpara Music의 무대 앞에 두 명의 어린 레이버들이 나타났을 때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다소 과장된 환영의 제스쳐를 보였는데, 그것은 그 사람들도 어린이들의 레이빙을 예외적인 일로 여겼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어쩌면 아이들이나 중년층과 함께 춤을 춘 일을 특별한 경험으로 기억하는 제 시선도 다큐멘터리 제작진의 그것만큼이나 석연치 않은 시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가 부끄럽고 조심스럽습니다.

그래도 제게 이번 피스트레인은 좋은 페스티벌로 남았고, 그 이유들 중 하나는 SCR 스테이지 앞에서 열렸던 파티에 있습니다. 그 파티가 제게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다시 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레이브는 모두의 것일 수 있고, 또 모두의 것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요.

저는 댄스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굳이 레이빙을 강권하는 식으로 이 문화를 퍼뜨려야 한다고 쓰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제가 쓰고 싶은 것은, 레이빙에 접근하고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누군가에게는 더욱 쉽게 주어지는 반면, 누군가에게는 아주 드물게만 (또는 어렵게만) 주어지거나 어떤 경우에는 차단되어있는 듯 보인다는 것입니다. 가령 미성년자들에게 그렇듯이 말입니다. 물론 당장 모든 클럽들을 미성년자들에게 개방하자고 주장하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클럽들은 보통 미성년자 출입이 불가능한 곳이고, 그렇게 정해진 데에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미성년자들도 원할 때 레이빙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는 생각합니다. 작년 초였나요, 홍대에 청소년 클럽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 클럽”이라는 어휘 자체를 비웃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치 클러빙이 자신들만의 사유물인 듯 굴더군요.

지금은 모두가 똑같이 안전하고 용이하게 레이빙에 접근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한 조건들이 잘 갖춰지지 않은 듯 보입니다. 레이빙에의 동등한 접근을 어렵게 하는 요인들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숱한 문제들 중 지금 제게 떠오르는 한 가지 문제는 장애인 이동권의 문제입니다. 제가 가본 베뉴들 중 거의 대다수의 경우 출입로에 계단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모든 클럽들이 엘리베이터나 완만한 경사로를 낼 수 있을 만한 재정적 여유를 가지고 있지는 않을 테지요. 그렇기에 당장 해결을 보기는 어려운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 해도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려는 방법을 모색하는 일은 꼭 필요할 것입니다.

서로 모여 춤도 추기 전에 그어지는 선들이 있는 듯합니다. 이 문화에 관여하고 있는 모두가 이 선들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레이빙에 대한 동등한 접근을 방해하는 선들을 식별해내고, 그 선들을 지워내기 위해 노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올해 피스트레인은 그런 노력의 가능성을 작게나마 보여준 듯합니다. “서로에게 선을 긋기 전에 함께 춤을 추자!” 만약 댄스 음악의 이념 같은 것이 있다면, 이 슬로건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1. Raver. 여러 사람들이 모여 DJ셋에 맞춰 춤을 추는 파티를 레이브rave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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