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are here
Home > Ji Hwan > Yetsuby, 『Heptaprism』

Yetsuby, 『Heptaprism』

ㄱ.

베이스 라인이 들어온다. 베이스 라인은 처음 네 번은 홀로, 그리고 다음 네 번은 한 마디에 여섯 번 씩 울리는 높은 금속성의 소리와 함께 되풀이된다. 베이스 모티프는 이후 여덟 마디 동안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다시 킥을 이끌고 돌아온다. 이 때부터 킥이 활용되는 방식이 꽤 재밌다. 두 마디에 한 번씩 킥이 밀리듯 쪼개지는 부분이 있는데, 그 때마다 킥은 아주 짧게 드릴이 돌아가는 듯한 소리를 내면서 독특한 음향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스네어가 간간히 빗겨 들어온다.

「Wiretap in My Ear」을 둘로 나누자면, 여기까지가 전반부에 대한 묘사다. 비트와 베이스. 이 두 가지 기본단위들로 채워진 1분 40초 남짓 되는 시간 동안, (거의) 리듬만이 부각된다. 후반부는 여러 음색의 소리들과 변형된 비트가 투입되어 한층 화려하게 꾸며질 것이다. 그러나 곡이 시작할 때부터 각인된 모티프는 곡이 끝날 때까지 되풀이될 것이다. 이 모티프의 낯설지 않은 리듬 덕에, 「Wiretap in My Ear」은 『Heptaprism』에서 가장 춤추기 좋은 곡으로 꼽힐 수 있다.

 

ㄴ.

「Sunsetmagic」은 이 앨범의 마지막 곡이다. 퍼커션 리듬에 맞춰 어지럽게 뒤틀린 보이스 샘플이 들려온다. 킥과 스네어가 만들어내는 규칙적인 리듬은 「Wiretap in My Ear」보다도 더 익숙하다. 그렇기 때문에 「Sunsetmagic」은 바로 전곡만큼이나 춤추기 좋은 곡일 수 있다. 다만 춤판의 공기는 두 곡을 사이에 두고 명확하게 갈라진다. 앨범 재생이 끝나기 직전 더더욱 격렬하게 뒤틀리며 사라져가는 보이스 샘플을 들으면서, 나는 어느새 「Wiretap in My Ear」가 울리던 곳에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나왔다는 것을 확인한다. 「Wiretap in My Ear」를 들을 때, 파티는 클럽 안에서 열렸다. 반면 「Sunsetmagic」을 들을 때, 파티는 어딘지 모를 다른 장소에서 열린다. 이 곡에는 어떤 제의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이상하게 재조립된 샘플들은 마치 귀신에 씐 사람의 음성처럼 들린다. 귀신들린 사람들이 모여 벌인 비밀스런 제전祭典 한복판에 댄스 플로어를 마련하기라도 한 양, Yetsuby는 그 소동 속으로 청자를 밀어 넣는다.

 

ㄷ.

Yetsuby는 이 앨범의 첫 곡과 마지막 곡에 각각 “Sunrisemagic”과 “Sunsetmagic”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두 이름들의 뒷부분에 주목한다면, 『Heptaprism』은 마법으로 시작해서 마법으로 끝나는 앨범인 셈이다. 반대로 두 이름들의 앞부분에 주목하자면, 『Heptaprism』은 동이 틀 무렵 시작해서 밤이 찾아올 무렵 끝나는 앨범인 셈이다. 그렇다면 태양은 「Croquis I」에서 자오선을 지날 것이고, 한낮의 기온은 「Sea Frog」에서 가장 따뜻해질 것이다. 겨울 햇볕은 늦게 내리쬐기 시작해 금방 사라지지만, 그만큼 눈부시다. (이 앨범은 겨울이 끝나갈 무렵 발매되었다.)

『Heptaprism』 또한 겨울날 햇빛처럼 밝고 쨍한 앨범이라고 적어야 할까? 그렇게 적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이 앨범에선 과연 따사로운 햇빛에 어울리는 생기를 느낄 수 있다. 이를테면 「Ppuppuppappa」가 그렇다. 「Sunrisemagic」의 퍼져가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밝아오는 아침놀을 그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오히려 일몰보다는 조금 더 늦은, 혹은 일출보다는 조금 더 이른 시간대의 풍경들도 『Heptaprism』과 무척 잘 어울리지 않나 생각해본다. 너무 눈부신 한낮의 햇빛이 아니라, 어스름하고 옅은 빛들. 예컨대 이제 막 불이 켜진 가로등의 빛이나, 천천히 파랗게 물들어가는 하늘의 빛깔 같은 것들. 아니면 아예 정반대되는 시간과 빛을 상상해볼 수도 있겠다. 이를테면 모두가 잠든 시간 요란하게 벌어진 제전의 붉은 횃불. 아니면 깊은 밤 어두침침한 클럽 안에서 사람들의 실루엣을 비추는 조명. 만약 이 앨범에 어떤 마법적인 힘이 있다면, 그것은 서로 다른 시간대의 빛들을 동시에 상상하게 만드는 힘일 것이다. 아침과 저녁, 새벽녘과 한낮, 그리고 한밤. 그 숱한 시간들과 빛들은 『Heptaprism』의 마법에 힘입어 서로를 통과하기도 하고 갈마들기도 한다.

“hepta-”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접두어다. 그 어원은 숫자 일곱을 뜻한다. 지금 그 접두어는 이 앨범의 트랙 수 일곱을 뜻한다. Yetsuby는 마법으로 얽어놓은 시간들/빛들을 나란히 늘어선 일곱 개의 프리즘에 투과시키고 있는 셈이다.

여기까지 앨범과 트랙들의 이름을 풀이하며 적어내린 것은 내가 임의적으로 구상한 은유다.

이 은유가 『Heptaprism』을 엄격하고 일관되게 규정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도리어 이 앨범을 투과해 갈라져 나온 빛들은 단일한 관점에 포섭되기를 거부하는 듯하다. 트랙들 사이에서 공통점이나 유사성을 찾아낼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트랙들이 서로 연결되어 단선적인 흐름을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트랙들은 통일된 총체를 구성하지 않는다. 이 점은 『Heptaprism』의 가장 매력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만약 이 앨범에서 어떤 흐름이나 유기성을 찾을 수 있다면, 그 유기성은 오로지 첫 곡과 마지막 곡의 이름들로 엮어낸 은유에 모든 트랙들을 끼워 맞추는 한에서만 드러날 것이다. 그것은 다소 과격한 방법이다.

 

ㄹ.

SEOULTRONIC의 에디터 JON은 『Heptaprism』에 대한 상세한 리뷰에서 「Who Ate My Chocolate?」이 존 탈라봇의 초기작들을 생각나게 한다고 썼다. 그가 찾은 둘 사이의 공통점은 아프리카풍의 퍼커션, 농구공을 튀기는 소리 같은 킥, 메아리치는 클랩이다. 그는 아마 「Matilda’s Dream」의 뒷부분이나 『Families』를 염두에 두었던 듯하다.

퍼커션, 리버브를 잔뜩 먹인 클랩, 마디마다 네 번씩 주기적으로 밟히는 킥은 「Who Ate My Chocolate?」에서 또렷하게 부각되는 요소들이다. (물론 신스음도 그렇다.) 그러니 JON이 타악기 소리에 주목한 것은 자연스럽고 합당한 일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 같다. 이 곡에선 잘 알아채기 힘든 소리가 꽤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워낙 소리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처음 들을 때 난 그 소리를 의식하지 못했다. 나는 지금 1분 17초부터 연하게 깔리다 2분 1초에 멎는 잡음에 대해 적고 있다. 이전과 똑같은 리듬을 반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잡음이 껴있는 구간은 다른 부분들과 비교해 확연히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이 잡음의 질감을 신경 쓰면서 들을 때, 「Who Ate My Chocolate?」은 꽤나 다르게 들린다. 그 때 이 노래는 이전보다 훨씬 복잡하게 다가온다.

 

ㅁ.

소리들에 어울리는 형용사들을 찾아내고 다시 그 어휘들에 어울리는 장면들을 상상해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형용사들에 의지하는 것은 노래들을 규정적으로 설명하는 데에는 알맞지 않은 전략이겠지만, 노래들에 대한 기억들 또는 노래들이 남긴 인상들을 되살리고 기술하는 데에는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어떤 곡이든 하나의 형용사만으로 (또는 그와 등가로 교환될 수 있는 유의어들만으로) 추상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령 「Ppuppuppappa」가 그렇다. 이 노래에 가장 잘 어울리는 형용사를 찾자면, “올망졸망하다” 정도를 고를 수 있겠다. “귀엽다”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강물에 난반사되어 부서지는 햇빛이나 밤거리에서 반짝이는 조명 장식들처럼. 또는 ‘뿌뿌빠빠’라는 발음처럼. 다만 모든 것이 발랄하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찰칵대는 소리들이 간헐적으로 되풀이되면서, 보다 날카로운 느낌이 끼어든다. 보글보글 올라와 터지는 신스와는 전혀 다른 음색이 겹쳐들면서 노래는 더 산만해지고 복잡해진다. 이 노래에 대해 쓸 때에는 이 상반되는 음색들이 구성하는 복잡성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Croquis I」에도 여러가지 형용사들이 필요할 것이다. 신경질적으로 반복되는 경고음들은 분위기를 경직시키고 가라앉힌다. 마치 어둑한 방 안에서 점멸하는 경고등처럼. 이 곡은 싸늘하기도 하고 음습하기도 하지만, 그렇기만 한 것은 아니다. 웅얼거리듯 흘러가는 보컬 트랙과 1분 5초를 지날 때부터 작게 울리는 피아노는 포근하게 귀를 감싼다. 이렇게 두 가지 분위기를 대립시키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3분 21초와 4분 6초에 두 번 씩 갑작스레 끼어드는 건반 멜로디, 3분 45초에 들어와 말 뒤를 길게 끌다 사라지는 말소리, 곡이 끝날 때까지 미약하게 흩날리는 심벌들……. 피아노와 보컬에서 출발한 포근함은 다른 여러 소리들을 지나치면서 다시 이유 모를 오싹함으로 뒤집힌다. 두 가지 분위기는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서로를 꿰뚫는다.

「Sea Frog」에서도 상반된 두 가지 빛깔이 겹쳐지는 듯하다. 나는 어두운 방안에서 빛나는 미러볼을 그려본다. 미러볼에 반사되어 갈라진 빛줄기들 아래에서 비트에 맞춰 조금씩 몸을 흔드는 사람들을 상상해본다. 한쪽에서는 이 곡을 수놓는 몽롱한 신스음들이 흩어진 유리 알갱이들처럼 반짝거린다. 다른 한쪽에서는 산만하게 쪼개지기도 하고 둔탁하게 찍어 누르기도 하는 타악기들이 검게 그림자를 드리운다. 흔들리는 사람들의 실루엣을 흐릿하게 감추는 검은색과, 그 실루엣을 옅게 비추는 색색의 빛줄기들.

 

ㅂ.

『Heptaprism』의 밴드캠프사운드클라우드 페이지에 실린 앨범 소개글에는 몇 가지 어려운 장르들이 태그 되어 있다. 얼터너티브, 싸이키델릭, 거기에 미래주의와 초현실주의까지……. 뒤의 두 가지는 과장된 수사로 읽힌다. “미래주의”나 “초현실주의” 같은 낱말들은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너무 육중한 어휘들이다. 이제는 그것들이 (특히 그 어휘들이 음악 앞에 따라 붙을 때) 무엇을 지시하는지도 식별하기 힘들다. 미래주의적인 음악이 무엇이었는지를 가리킬 수 있었던 시절은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간 듯하다. 이제 너무 많은 것들이 미래주의적이고 또 초현실주의적이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여하간 저 두 낱말로는 『Heptaprism』을 적확하게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얼터너티브”나 “싸이키델릭”은 저 둘보다는 조금 더 소박한 어휘들이고, 『Heptaprism』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한다. 다소간 앰비언트적인 요소들과 댄스튠을 뒤섞어 한껏 흐트러뜨리고 비틀어 댄스 플로어와 거리를 두면서도 클럽 친화적인 성격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Heptaprism』은 얼터너티브하다. 음습하게 어기적거리다가도 올망졸망하게 튀어 오르는 『Heptaprism』의 소리들은 싸이키델릭하다. 다만 “얼터너티브”는 그 낱말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어떤 진부함 때문에 쓰기가 꺼려진다. 어떤 음악적 대안에 대해서건 그와 비슷한 범례를 어딘가에서 꼭 하나씩은 찾아낼 수 있는 지금 “얼터너티브”는 어쩌면 불가능한 선언일지도 모른다. 또 이 앨범의 싸이키델릭한 성격이 “얼터너티브”라는 낱말의 사용을 주저하게 만들기도 한다. 앞에서 미래주의와 초현실주의에 대해서 이제 너무 많은 것들이 미래주의적이고 초현실주의적인 듯 보인다고 썼는데, 이는 사실 “싸이키델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젠 너무 많은 장소들이, 너무 많은 이미지들이, 너무 많은 소리들이, 그리고 너무 많은 물건들이 싸이키델릭하다. 물론 싸이키델릭함은 지금도 큰 매력일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대안은 아닐 듯하다.

그러니 이런 어휘들로는 이 앨범의 강점들을 잡아내기 힘들 것이다.

 

ㅅ.

「Sunrisemagic」은 이 앨범의 첫 곡이다.

노래가 (그리고 앨범이) 시작하자마자, 신스 리프와 함께 목소리가 들린다. 목소리는 오직 모음만을 발음한다. 목소리는 때때로 좌우로 미끄러져 다니도록 패닝 처리 되었다. 목소리가 넓게 퍼져가는 동안 신스 리프는 점점 커져간다. 드문드문 킥이 밟히고, 조금 뒤엔 하이햇과 퍼커션이 들어온다. 하이햇이 바빠질 무렵부터 곡은 화려해진다. 목소리는 높아지거나 낮아지기도 하고, 두 개의 목소리가 겹쳐 울리기도 한다. 리프를 연주하는 베이스 신스 위로 또 다른 신스음들이 마치 탄산음료의 기포들처럼 보글거린다.

비트가 걷히면 의외의 손님이 찾아온다. 3분이 다 되어갈 즈음이다. 가장 맑고 높은 피아노음이 흘러나온다. 이제부터 이 영롱한 손님은 다른 모든 소리들 밑에서 (또는 위에서) 춤을 출 것이다. 다시 목소리가 퍼져나가고, 킥이 찍히고, 하이햇이 바쁘게 살랑인다. 한동안 여러 소리들이 한 데 뒤섞여 논다. 피아노의 춤이 더디어지기 시작했다면 이는 곧 노래가 끝날 것이라는 신호다. 비트가 페이드 아웃되고 피아노가 천천히 멎어가면서, 「Sunrisemagic」은 우아하게 마무리된다.

「Sunsetmagic」의 (그리고 앨범의) 마지막을 돌이켜본다. Yetsuby는 끝 곡을 페이드 아웃시키는 와중에도 보이스 샘플을 더더욱 어지럽게 뒤틀어댔다. 그 혼란스러운 시간이 『Heptaprism』을 투과한 스펙트럼의 한 쪽 가장자리에 놓여있다면, 「Sunrisemagic」의 마지막은 맞은편 가장자리에 놓여있다. 두 극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마지막 순간들을 연출한다. 한 쪽 극에는 조용하게 그러나 격정적으로 비틀리는 목소리가 있다. 테이프가 순식간에 감겨들 듯 끝을 맞이하는 비명이 있다. 다른 쪽 극에는 차분하게 퇴장하는 피아노가 있다. 이전과 똑같이 반복되는 킥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리듬의 규칙성을 놓지 않는다.

「Sunrisemagic」이 『Heptaprism』의 마지막 곡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이 노래의 마지막은 「Sunsetmagic」의 마지막만큼이나 탁월한 아웃트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거꾸로 「Sunsetmagic」가 이 앨범을 열었다면 어땠을까도 생각해본다. 이 노래의 첫 부분 또한 강렬하게 청자의 주의를 사로잡는 탁월한 인트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에는 황혼에 시작해 아침나절에 끝나는 앨범이라는 식의 은유를 구상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순서 같은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트랙들이 총체를 구성하지 않는다는 것은, 트랙들이 하나의 흐름에 묶여있지 않다는 것이다. 정해진 흐름이 있다면, 트랙들의 순서를 뒤죽박죽으로 뒤섞는 일은 앨범의 진행을 방해하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Heptaprism』은 그렇지 않다. 트랙들은 어떤 흐름으로부터건 자유롭다. 그렇기에 트랙들은 어떤 순서로든 배열될 수 있을 것이다. 첫 차례나 마지막 차례가 어떤 곡에 돌아가든 『Heptaprism』은 훌륭한 앨범일 것이다.

댓글 남기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