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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visa, 「Crush」

이 노래는 아마도 오랜만에 연락이 닿게 된 듯한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는 장면을 재현하고 있다. 흔히 쓰이는 인사말도 들리고, 미안하다느니 괜찮냐느니 하는 사과나 걱정의 말도 들린다. 다만 「Crush」가 그 장면을 재현하는 방식은 익숙한 말들과 상황을 무척이나 낯설게 느끼도록 만든다. 곡에는 양가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누군가 나긋하고 다정하게 안부 인사를 속삭이는 와중에, 그 목소리 곁에서는 음산한 음향들이 울린다. 두 요소들(다정한 인사말과 음산한 음향들) 사이에서 연출되는 긴장은 뒤로 갈 수록 팽팽하게 당겨진다. 박동하듯 점점 커져가다 2분 10초를 지나면서 마치 폭발하듯 덮쳐오는 소리들 사이로 “사랑해”라는 말이 언뜻 들려올 때, 그 긴장은 가장 높은 정도에 도달한다. 그 즈음부터는 정체 모를 스산함이 지배적으로 우세하게 느껴진다. 여러 소음들이 겹쳐들면서 자아내는오싹함은 가장 흔히 쓰이는 인사말인 “안녕”까지 섬칫하게 들리도록 만든다.

작년에 발매한 첫 ep에서 (특히 「Observer」 같은 트랙에서) Leevisa는 앰비언트적인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번 싱글에서도 마찬가지다. 어지럽게 흩뿌려진 소음들 밑에서는 긴 음가를 가진 앰비언트 전자음이 몽롱하게 흐른다. 서로 많이 다르긴 하지만, 차가운 음색의 전자음을 배경 삼아 그 위에 작은 말소리들을 올려 분위기를 연출하는 「Crush」의 전략은 Jenny Hval의 노래들을1 떠오르게 한다. 보통 Jenny Hval의 작품들이나 그와 비슷한 작품들은 “두려움” 같은 어휘들과 함께 이야기되어 왔다. 내가 「Crush」를 들으면서 섬칫함을 느꼈던 까닭은 어쩌면 이런 노래들을 무서운 음악으로 이름 붙이는 이야기들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45초쯤에서 1분 5초 언저리까지의 구간이 산만하게 설계되었다는 점은 「Crush」의 가장 도드라지는 특징이다. Knoc-Turn’al의 「Muzik」이 샘플로 삽입됐는데, 두 번에 걸쳐 불쑥 튀어나왔다가 난데없이 사라진다. 어울리지 않는 랩의 갑작스러운 개입은 트랙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하지만, 반대로 뜻밖의 온정적인 느낌을 더하기도 한다. 샘플로 삽입된 랩이 가족들과 동료들을 연호하면서 주위 사람들과의 유대감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 샘플의 운용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 곡을 더 흥미롭게 만든다. 첫째로는 진행을 끊어내고 다시 시작시키면서 구성상의 다양성을 더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둘째로는, 인사를 나누고 있는 상대와 화자 사이의 유대감을 강조하면서 이 곡에 배어든 상냥함과 스산함 사이의 대립을 심화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적확한 명칭으로 지목하긴 어렵지만, 2010년대 판본의 혼종적이며 분열적인 실험적 전자음악의 모델2을 레퍼런스로 삼은 작업물들이 이젠 드물게 한국 음악가들에 의해서도 제출되고 있다. Leevisa의 작업물들도 그 중 하나의 실례다. 『Candle』에서 Leevisa는 한국 씬 안에서만 놓고 생각할 때 비교적 과감하다고 할 수 있을 시도들을 들려주었다. 이번 싱글을 통해 Leevisa는 같은 영역 안에서 또 다른 지점으로 나아갔다. 전작보다 한결 조용해졌고, 특히 「Another Gate」나 「Doorbell」 같은 트랙들과 비교했을 때 리듬의 역동성이 줄었으며, 그 대신 나직한 말소리들을 강조했다. 그러나 물론 「Crush」는 여전히 『Candle』의 트랙들만큼이나 기이한 곡이고, 또 그래서 인상적인 작품이다.

  1. 이를테면 「Lorna」 같은 곡. 「The Great Undressing」과 「The Plague」의 몇몇 구간들에서나 최근작인 「I Want to Tell You Something」에서도 비슷한 전략이 쓰인 것을 들을 수 있다.
  2. “실험적”과 “모델”을 서로의 앞뒤에 적는 것은 형용모순이겠으나, 2010년대 초엽부터 서로를 참조하며 쟁생산되어온 (이른바) 실험적 전자음악의 모델들이있다는 것은 분명한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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