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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AN`s List of 2018 : 2018 국내 베스트 트랙 50


 

2018 국내 베스트 트랙 50

– written by. coloringCYAN –

(대상 기간 12.01.2017 ~ 11.30.2018)

 

  어느새 2019년을 맞이한지도 수 개월이 흘렀다. 점점 2018년의 기억은 흐릿해지지만, 그 때의 음악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있다. 그들을 기억하고자 간소하게나마 개인적인 2018년의 결산을 준비했다. 이번엔 2018년 발매된 국내 트랙들 중 50 트랙을 추려 짧은 단평을 적어내렸다. 비록 이 리스트가 모두에게 공감을 받을 수는 없어도, 누군가에게 2018년을 떠올리는 촉매가 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 본고는 필진 coloringCYAN 개인의 2018년 결산으로서, 웹진 [온음]의 총결산과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할로우 바디 일렉트릭 기타가 만들어내는 따뜻한 느낌은 다린의 깊이 있는 음색과 어우러져 우리를 사로잡는다. 트랙 내에서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변주 같은 요소들은 없어도, 조용히 이루어지는 리듬의 변환과 드럼의 배치가 조금씩 우리를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 그러면서도 단단한 연주와 숨소리 섞인 다린의 보컬이 감정을 점점 벅차오르게 만든다. 너울지는 감정의 물결 속으로 우리는 빠져들 수 밖에 없다.

 
 

 
 
 

 

  Black AC의 손에서 탄생한 둔탁한 드럼 앤 베이스 비트와 불안정한 스크래치 위로 쓰여지는 Moldy의 자기과시성 노랫말은 ‘새로움’이라는 하나의 가치를 지향한 채 펼쳐지며, 그렇기에 돈/자동차/시계 등으로 이루어지는 한국 힙합의 대표적인 자기과시 유형과 거리를 둔다(* 그래 돈 던지면 전부 뻔해서, 그걸 살까하다가 똑같아 니 새끼들 전부 줬어). 그 뒤로 등장하는 “우피 골드버그”, “얼음땡에서 술래가 된 저스틴 비버” 등의 공허한 라인은 Verse를 휘발적으로 태우지만, 이윽고 클라이막스로 이르러 새로움으로의 이행의 의지를 맹렬하게 재확인하는 라인들이 전 Verse의 공허함에 또 하나의 의미를 부여한다. 그 지점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교차하며, 인터넷에서 허무하게 소모되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들이 현실과 일상 속으로 녹아들어와 격변의 방아쇠로 작용한다.1

 
 

 
 
 

 

  피아노 연주와 아이들의 아카펠라가 어우러져 시작부터 따뜻한 바이브를 만들어낸다. 이후 어쿠스틱 기타 연주와 가벼운 비트의 위로 등장하는 지바노프의 목소리는 담담하지만, 감정적 딜레마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노랫말은 그와 대비되는 슬픔을 자아낸다. 모든 게 내 잘못이었던 거야, 결국 내가 문제야라고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로 돌리는 결론을 내리면서도 그에 차마 확신하지 못하는 화자의 모습은, 「Good Place」 위의 모습이라기엔 너무나 쓸쓸하다.

 
 

 
 
 

 

  ‘좋아해’나 ‘사랑해’와 같은 흔한 말들도 사랑을 전하는 사랑 노래에 알맞고, 실제로도 많이 쓰인다. 하지만 SURL은 역시 쉬운 말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특별한 말을 선택했다. 꽉 차 있는 SURL의 연주는 훌륭하게 원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 위로 쓰인 노랫말은 더욱 좋다. 내가 너를 바라볼 때, 넌 땅을 보고 있어와 같은 서정적인 묘사로 서로 사랑하는 애인들 간의 찰나를 담아내었고, 우리 이러고 있자, 계속 이러고 있자고 읊조리는 노랫말은 사랑을 표현하는 다른 말들과 다른 특별함을 가진다. 이 트랙과 함께라면, 정말 계속 이러고 있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난 지금 내 인생에 가장 높은 곳에 서서 너를 본다.” : 트랙에 쓰인 노랫말은 단 한 소절뿐이지만, 『Age』의 서사의 ‘정점’에 서있는 트랙의 위치가 그 한 소절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예사롭지 않은 그루브의 연주와 찌르는 듯 날카로운 기타의 독주는 라이프앤타임의 연주 역시 ‘정점’의 기량을 뽐내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렇게 ‘정점’ 위로 이끌려 그들이 보여주는 풍경을 마주했을 때 온전히 정신을 차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화려하진 않아도 직관적인 연주에 신시사이저가 덧칠해지고, Verse가 넘어가는 구간은 관악기로 한껏 분위기를 잡는다. 그대의 머리 위로에서 등장하는 서태지와 아이들 샘플링은 그 갑작스러움에 당황하면서도 이내 재치에 감탄하게 된다. 시대정신 내지는 사회적 메시지 같은 거창한 수식을 붙일 필요는 없지만, 주문과 같이 반복되는 그건 니 생각이고라는 노랫말은 어쩌면 현재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할 말일지도 모른다. 불필요하게 반복되는 감정 소모를 하기 전에 그것을 웃어넘겨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매력적인 자기최면이자 제안이다.

 
 

 
 
 

 

  불후의 걸작 『The Anecdote』 때와는 반대로, 텅 빈 여백에 드럼보다 강조되어 드러나는 신시사이저의 흐름이 트랙의 중심을 잡는다. 그러면서도 적절한 샘플 활용과 곡의 말미에 등장하는 일그러지는 기타 리프는 우리에게 『이방인』을 한층 더 기대하게 한다. E SENS의 노련한 랩은 비트의 색깔이 어떻든 간에 자신의 정상급 기량을 뽐낸다. 하지만 그 속에는 한 편의 쓸쓸함이 담긴다. 여행 계획을 짜네, 서울보다 하늘이 파란 곳이면 다 좋아라며 즉흥적인 여행기를 담는 듯하면서 이내 여행이 아닌 도피를 하고 싶은 속내를 드러낸다. 목적지를 구체화하며 방향을 잡지만, 이미 ‘이방인’이 되어버린 그에게 그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매캐하게 퍼지면서도 정신없는 추임새와 함께 공격적으로 달려드는 사운드의 전개가 Jvcki Wai의 피치-업된 랩-싱잉과 맞물려 더욱 날카롭게 다가온다. 언뜻 들으면 그저 휘발적으로 소모될 수 있는 흔한 퍼포먼스이지만,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치밀한 고찰 속에서 짜인 그녀의 세계관을 마주하게 된다. 여타 싱잉 래퍼들과는 격을 달리하는 고차원적인 비유와 발음 하나까지도 설계한 그녀의 노랫말은 장르의 특색에 맞는 그루브를 살리면서 원하는 내용까지 담아내는 결과를 낳았다. 후반부에 이르러 정말로 “터져버릴” 것처럼 더욱 더 톤을 높이는 퍼포먼스를 트랙의 낙차를 만들어내며 피로해질 수 있는 전개를 환기시켰다. 여러모로 잘 짜인 트랙이고, 어쩌면 수많은 양산형 랩-싱잉 트랙에게 가르침이 될 수 있는 트랙이다.

 
 

 
 
 

 

  비장한 느낌마저 감도는 중후한 신시사이저와 아카펠라의 조화로 시작되는 도입부를 넘어 정신없는 EDM사운드와 중독적이고 캐치한 멜로디로 짜인 훅을 맞이하게 된다면 본 곡에 대한 믿음은 더욱 커진다. Verse로 넘어갈 때 잔뜩 일그러뜨린 보컬 라인과 함께 신시사이저가 후퇴하고 베이스로만 짜인 리프가 치고 들어오고, 두 번째 훅이 시작할 때 첫 번째 훅에서의 전개와 비슷할 것이라는 전개를 보기 좋게 무너뜨려 템포를 늦추는 구성은 멋들어졌다. 압권은 그 다음부터 시작되는데, 아카펠라를 전면으로 내세워 무드를 쌓아올리며, 이내 터지는 고음과 함께 느껴지는 전율과 카타르시스는 본 곡의 구성이 얼마나 훌륭하게 짜였는지를 증명한다. 흔하디흔한 K-Pop의 전개를 뒤틀어버리는, 과연 SM다운 시도다.

 
 

 
 
 

 

  오케스트레이션의 연주와 심플한 흐름의 록-발라드의 진행이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다가, 이선규의 기타 솔로에서 끝내 폭발하는 사운드의 진행은 탁월하다. 자우림의 다른 록-발라드 곡들에 비해 훨씬 더 깔끔하지만, 오히려 훨씬 강렬하다. 사운드와 훌륭한 시너지를 내는 것은 김윤아의 보컬이다. 초반부부터 김윤아의 보컬은 일종의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하이라이트에서 피치를 한껏 높여 폭발하지만, 오히려 그 부분이 가장 텅 빈 상태의 아련함을 나타낸다. 또한, 후반부 “사라지지마, 흐려지지마”라고 읊조리는 부분은 역설적으로 가장 폭발적이다. 김윤아가 아니면 누가 이러한 모순적인 감정선을 보컬로 표현할 수 있을까?

 
 

 
 
 

 

  최대한 절제되어 울리는 일렉트릭 기타 리프와 이펙트가 Sep의 보컬과 만나며 공허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본 트랙에서의 Sep은 말을 아낀다. 그저 내가 긁고 간 자국은 없어지지 않고 / 내가 지고 갈 마음은 가벼워지지 않고라며 조심스레 읊조릴 뿐이다. 후반부에 이르러 트랙을 메우던 사운드들이 퇴장하고 성스러운 합창이 그 자리를 대신할 때, Sep의 읊조림 역시 힘을 쓰며 고조시킨다. 삶을 살아감에 있어 우리가 쥐고 있던 것을 놓을 때, 우리는 빈손이 되지만 우리가 긁고 간 자국은 없어지지 않는다. 미련은 그 때 생긴다. 우리가 더 이상 무엇인가를 쥘 수 없음에 대한 아쉬움이 아닌 우리가 만든 없어지지 않을 자국들에 대한 성찰이다. 본 트랙은 우리가 미련을 가질 그 순간을 담았다.

 
 

 
 
 

 

  담백하게 이어지던 기타 리프가 움츠리는 듯 싶다가, 순식간에 확산하며 우리를 묘한 음울함으로 끌고 간다. 뱃사공은 말을 아끼고, 어쩌면 그가 들려주고자 했던 이야기를 Kid Milli가 탁월한 랩으로 대신한다. Kid Milli의 태도는 이중적이다. 타인과 꾸준히 연락하기 힘들 정도로 바쁘고, 어쩌면 그러한 것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 듯하지만 동시에 기댈 때만 연락해도 이해 좀 해줘라며 자신의 외로움을 드러낸다. 그래서 나도 내 꿈에 이건 없었지 내가 잘되면 자주 볼 줄 알았는데라며 한탄하는 그의 모습에서 화려함 뒤에 감춰진 쓸쓸함까지 보인다. 어쩌면 본인도, 본인과 관계하는 사람들도 모두 바라지 않았을 현실, 그 앞에서 뱃사공과 Kid Milli는 솔직하다.

 
 

 
 
 

 

  포크 풍의 기타 연주 뒤로 몽환적으로 쌓이는 전자 기타 연주, 노이즈들이 귀를 사로잡는다. 트랙이 끝을 향해 갈수록 켜켜이 쌓인 사운드들이 힘을 얻고 발산하며 5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집중력을 유지시킨다.2 유레루나의 지나가버린 꿈을 담고 있는 이야기는 얼마 되지 않은 텍스트 안에서도 유유의 예스러운 보컬과 결합해 특색 있는 분위기를 형성한다. 세상이 그렇게만은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 이들에게, 유레루나는 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건넨다.

 
 

 
 
 

 

  양양의 유원지 ‘낙산랜드’와 악마의 이름 ‘베헤리트’가 만난 타이틀은 아리송하면서도 기괴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본 트랙의 전개는 그렇게 흘러간다. 곳곳에서 재미있는 효과음들이 들리면서도 그 위를 리버브 잔뜩 먹인 일렉트릭 기타 소리와 노이즈, 쇳소리 등이 찢어놓으며 형용하기 쉽지 않은 분위기를 조성한다. 10분 32초라는 긴 러닝타임 속에서 사운드는 반복되지만, 시간에 따라 미세하게 결이 달라지는 기타 연주가 피로감을 덜며 우리로 하여금 쉽게 방심하기 힘들게 한다. 트랙의 마지막에 이르러 모든 것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날카롭고 강렬한 소음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우리를 심연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혼란은 너무나 강력하다. 쉬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게 무슨 트랙이냐면 정식 발매는 결코 될 수 없는, 한 한국 유튜브 음악가가 만든 ‘짜집기’ 트랙이다. Fitz And The Tantrums의 「Handclap」과 전국 노래자랑의 믹스라니, 있을 수 없을 조합 같지만 흥미롭게도 트랙 내에서 그 둘은 훌륭하게 상호작용한다. 「Handclap」의 인트로가 전국 노래자랑의 실로폰과 만나는 도입부는 시작부터 이목을 집중시키고, 프리-훅부터 절묘하게 매쉬-업 되기 시작하더니, 후렴의 시작을 알리는 송해의 “전국~!”이라는 외침은 우리를 커다란 충격에 빠뜨린다. 「Handclap」의 훅과 전국 노래자랑의 주제가, 송해의 멘트가 어우러지는 본 트랙의 훅은 가히 파괴적이고, 한 번 빠지면 절대 쉽게 헤어 나올 수 없다. 이렇게 탁월한 작품이 정식 발매될 수 없다는 사실은 아쉽지만, 어쩌면 우리는 본 트랙을 통해 유튜브 시대 음악의 미래를 미리 엿본 것일지도 모른다.

 
 

 
 
 

 

  펑키한 기타 연주가 신난다. 거기에 진득하게 달라붙는 베이스, 있는 듯 없는 듯 트랙을 꾸미는 피아노와 현악, 풍성하게 사운드를 채우는 브라스 세션이 어깨춤을 주체할 수 없게 한다. 어디 신난다 뿐이겠나, 쫀쫀하게 짜인 사운드의 짜임새는 단순히 흥이 난다는 말에서 더 나아가 우리에게 짜릿한 장르적 쾌감을 선사한다. 거기에 얹히는 나얼의 보컬은 무지막지하다. 한껏 크게 내지르기도 하고, 매혹적인 팔세토로 우리의 고막을 자극하기도 하며, 낮게 읊조리다가도 폭발하는 애드리브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넌 날 막을 수 없어”라는 노랫말이 말하듯, 저돌적으로 질주하는 그의 기량을 우리는 막을 여력이 없이 받아낼 수 밖에 없다. 탁월한 사운드와 엄청난 보컬 퍼포먼스,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다.

 
 

 
 
 

 

  날카로운 현악기 연주와 둔탁하게 울리는 드럼, 미처 예상할 새도 없이 흩날리는 신시사이저가 어지러이 놓여있지만, 수준급으로 디자인된 BewhY의 랩 아래 정돈되어 안정감을 얻는다. Crush의 파트에서 드럼 템포를 올리고, 마지막 BewhY의 랩이 들어설 때 대부분의 소스를 퇴장시켜 비장한 무드를 조성하는 트랙의 구성은 매우 영리하다. 음악에 대한 열정을 ‘제로-백’에 치닫는 자동차에 빗대어 써낸 노랫말 역시 매력적이며, 짜인 콘셉트 아래 자신의 캐릭터를 지킨 BewhY와 보컬이 아닌 랩에서 특유의 그루비함을 바탕으로 성과를 낸 Crush는 플레이어로서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역량을 뽐냈다. 본 트랙이 탄생한 방송의 화제성이 덜한 편이었기에 많은 이들이 기억하지는 못할지라도, 절대 잊혀서는 안 되는 트랙이다.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 앞에 길을 잃고 갈피를 잡기 힘들다. 분명 ‘달리는 것’이 시대 최고의 가치이고, 그를 위해서 ‘훔치는 법’까지 알았어야 했는데, 지금은 그러한 가치들은 허상으로 남은 채 ‘춤추는 것’을 모두가 추구하고 있다. 시대가 강요하는 가치를 정신없이 쫓다 보면 어느새 자신을 잃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목도하게 되지만, 멈춰있지 마시라, 그 사이에도 시대는 변하고 있으니까. 복고풍의 댄서블한 리듬으로 발랄하게 처리되었지만, 방향을 잃은 화자의 시선은 그저 슬프기만 하다. 그래서 결국 곡의 화자는 춤을 추게 되었을까? 이 질문에 답을 내리기 전에 우리는 한 가지를 알아야한다. 신나게 춤을 추던 이들도 언젠가는 똑같이 멈춰버릴 것이라는 걸.

 
 

 
 
 

 

  그 속내가 뻔하다. ‘쇼미더머니’에서 탈락한 래퍼 마미손이 심사위원들을 ‘악당’이라 칭하고 자기 자신을 ‘주인공’으로 높이며 계획대로 되고 있어, OK 계획대로 되고 있어라고 읊조리듯 모든 것이 자신의 계획이었다 말한다. 또 재밌는 것은 마미손이 본 트랙에서도넛맨 미안해, 마이크 못 줘서 미안해!”라고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이 ‘악당’이었던 시절까지 품에 안는다는 것이다. 과거 ‘악당’이었다가 ‘주인공’이 된 심사위원 출신 ‘쇼미더머니’ 탈락자. 본 트랙의 존재 자체가 ‘쇼미더머니’에 지극히 의존하게 된 현재 한국 힙합씬을 비꼰다. 하지만 마미손의 속내는 뻔했다. 본 트랙이 마미손에게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안겨주었듯, 어쩌면 이 모든 것이 ‘그의 계획대로’ 되었던 것일 수도 있다. 마미손은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마미손 내 인생 존나 뻥 yeah yeah”라고 스스로 고백하는데 누가 거기에 대고 함부로 욕할 수 있을까? 본 트랙의 매력은 바로 그 모순으로부터 나온다.

 
 

 
 
 

 

  한국 힙합 가사의 공식은 늘 정해져있다. 돈을 벌어 성공한 삶을 살겠다는 포부가 초기의 텍스트를 이루고, 어느 정도 그 목표에 도달했을 때는 자신이 벌어들인 돈과 성공을 자랑하고 그것을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상하겠다는 자기과시 텍스트로 귀결된다. 흔히들 한국 힙합 가사의 세 가지 공식이라 말하는 ‘돈, 효도, 자동차’가 바로 그것이다. XXX의 「18거 1517」의 가사 역시 처음엔 그러하다. 성공해서 돈을 벌고, 아버지에게 보상하겠다는 Kim Ximya의 포부는 거대한 시스템의 벽에 부딪치며 반전을 겪는다. 방송을 타거나 차트 공식에 따른 멜로디의 음악을 만드는 등의 대중친화적인 노선을 타지 않는다면 아무리 음악을 잘해도 성공할 수 없다는 모순에 절망한 Kim Ximya는 절규한다. 폭풍같이 몰아치며 그 자신이 ‘돈, 효도, 자동차’라는 힙합씬의 공식의 안티테제로 화해 시스템을 비판하고, 지조를 지킨답시고 음악을 했던 자신의 보잘 것 없는 현실을 자조한다. 마지막 라인 “아버지, 벤틀리는 죄송하지만 없던 걸로”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시스템의 거대한 벽을 직접 체감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바뀌지 않는 상업 음악의 구조 속에서 Kim Ximya는 영원히 ‘벤틀리 오너’가 될 수 없음을 누구보다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걱정」은 타인에게 건네는 다섯 마디를 위한 하나의 8분의 대서사시다. 그 다섯 마디란 사실 굉장히 단촐하기 이를 데 없다. “어… / 안녕하세요? / 저기요- / 있잖아요- /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 잘 지내요?”라는, 우리가 흔히 할 수 있는 인사말이지만 「걱정」의 화자는 그를 위해 무려 8분이라는 시간을 소요한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과 함께 드럼과 하이햇, 피아노 연주가 인상 깊게 흐르고 그 위를 그녀만의 상쾌한 전자음이 흐르듯이 덮는다. 그 직후 다섯 마디가 점점 퍼즐을 맞춰갈 때마다 연주에서 뿜어져 나오는 감정의 낙차는 상당히 크다. 때로는 초반부 드럼과 하이햇의 강렬함이 주가 되고, 때로는 상쾌하고 밝은 전자음이 주가 되고, 때로는 처연하고 슬픔을 감추는 듯한 피아노 연주가 주를 이룬다. 곳곳에 삽입된 물소리와 같은 자연음은 「걱정」의 연주가 감정의 흐름과 동시에 시간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마지막에 아침,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새소리와 함께 “잘 지내요?”라는 말로 방점이 찍히는 순간은 전율이 인다. 그 다섯 마디를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감정을 「걱정」과 함께 나누었을까? 나에게 지옥인 타인이지만, 동시에 동반자이기도 한 그 사람에게 용기를 내 어렵사리 안부를 건네는, 그 모습에 우리의 소모적인 타인과의 관계들이 거울이 되어 비친다.

 
 

 
 
 

 

  CIFIKA의 과감한 일렉트로닉 음악에 오혁이 과연 잘 어울릴까 의심했지만 그러한 의심은 기우에 불과했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놓인 화자의 의미심장한 노랫말에 맞춰, 절제되어있으면서도 에너지를 품고 있는 사운드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다 트랙이 절정으로 치달을수록 트랙의 사운드 역시 품고 있던 에너지를 서서히 개방하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드럼과 신시사이저, 아카펠라 선율이 켜켜이 쌓이는 후반부는 매우 인상적이다. 중독적인 훅은 어찌 보면 거기서 중독적이라는 데에서 그칠 수도 있었지만, 반복적으로 청자에게 주입되는 주술적인 라인은 정말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트랙 앞에 내려놓게 한다. 쉽게 떨칠 수 없다.

 
 

 
 
 

 

  반복적으로 울려퍼지는 몽환적인 신시사이저 뒤로 전자 기타, 피아노 연주가 아른거리며 아도이 특유의 세련되고 산뜻한 음악이 주조된다. 영어로만 짜여진 노랫말은 마치 해외의 해변가에서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따뜻한 보컬 연출에 도움을 주며, “Won`t you be my baby?”로 대표되는 흔한 사랑 고백으로 치부될 뻔한 노랫말에 “California Wine”, “salvation hotline”과 같은 색다른 비유가 더해지며 한껏 듣는 재미를 고조시킨다. 사랑 앞에서 두근대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고백하는 이의 모습을 재치 있게 짚어낸 매력적인 트랙이다.

 
 

 
 
 

 

  본 트랙에서는 BTS의 과거와 현재를 함께 조우하게 된다. 거친 신시사이저와 훅 부분에서의 강렬한 드랍은 과거 BTS가 추구하던 ‘질주하는 사운드’를 보여주고, 중후한 기타 리프와 몽환적인 이펙트, 그리고 가장 여린 목소리를 지닌 멤버 진이 이별을 울부짖는 훅, 우울하고 여린 노랫말은 현재 BTS가 보여주는 음악을 나타낸다. 그러한 과거와 현재의 조화로 보이는 것은 ‘성장’이라는 BTS의 미래다. 그간 K-Pop 씬의 정상에서 BTS가 보여 왔던 캐릭터성을 훌륭한 프로덕션을 바탕으로 조화롭게 주조해낸 멋진 결과물이다.

 
 

 
 
 

 

  얼터너티브 알앤비가 일렉트릭 기타와 현악기 세션을 만나 색다른 바이브를 만들어낸다. 보컬 역시 몽환적인 멋을 한 꺼풀 벗은 채 담백하게 다가오며, 후반부 김오키의 색소폰 연주와 함께 절정으로 치닫는 부분은 본작의 마무리를 훌륭하게 장식한다. ‘아시안 얼터너티브’라는 히피는 집시였다의 정체성과 명반이었던 나무의 향수, 그리고 언어에서 보여지는 변화의 요소들까지 한 번에 담은 히피는 집시였다의 정체성 그 자체이다.

 
 

 
 
 

 

  BewhY의 손으로 만들어진 강렬하고 거침 없는 오케스트레이션 사운드 위에서 SUPERBEE와 BeWhy가 주고받는 퍼포먼스는 실로 놀랍기 그지없다. 쉴 틈 없이 타이트하게 쏘아붙이는 SUPERBEE의 래핑은 왜 자신이 ‘Rap Legend’인지를 여실히 증명해냈고, 버퍼링과 단일 라임의 반복 등 다양한 시도를 Verse에 우겨넣은 BewhY 역시 자신의 뛰어난 역량을 선보였다. 약간의 오토튠이 가미되어 곡을 환기시키는 매력적인 훅과 드럼을 앞으로 밀어내며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브릿지의 구조 역시 훌륭하다. 여전히 많은 화제와 논란의 중심에 있는 ‘쇼미더머니’이기에 섣불리 저평가 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랩 음악에서 ‘랩’이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을 온전히 느끼기에 제 격인 트랙인 것은 분명하다.

 
 

 
 
 

 

  “Strip club casket. Body in the basket, Still here basement, Fucks with that plasma” 트랙의 시작을 알리는 이 아리송한 라인들은 그 뜻을 온전히 파악할 수는 없어도 Kim Ximya가 본 트랙에서 깔아놓은 판이 어떠한 것인지를 우리로 하여금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장르 리스너들에 대한 비판과 자신의 음악과 처지에 대한 자조가 섞여있는 Kim Ximya의 노랫말은 스스로가 널 위해 준비했어. 근데 알아듣지는 마라고 말했듯 추상적인 단어들과 비문들로 구성되어있다. 두 번째 Verse에 이르러 첫 번째 Verse의 라인들을 통으로 반복하지만, 곳곳에서 Kim Ximya의 랩이 피치-업 되어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 역시 비슷한 효과를 준다. 그럼에도 우리는 적어도 본 트랙이 「수작」임을 확신할 수 있다. 강렬한 드럼과 베이스가 인상적인 FRNK의 퍼포먼스와 타격감 강한 Kim Ximya의 랩이 서로를 보좌하고, 특히 마지막에 모든 사운드가 퇴장한 뒤 Kim Ximya의 랩만이 악기처럼 기능하다가 다시 FRNK의 퍼포먼스가 자리하는 구성은 매우 인상적이다. 온전히 파악될 수 없지만, 그래도 본 트랙은 「수작」 이상이다. 그거면 되지 않을까 싶다.

 
 

 
 
 

 

  Jclef의 뛰어난 기량이 온전히 드러난다. 빠른 템포의 하우스 리듬에 이펙트를 능란하게 어루만지며 탄생한 댄서블한 사운드 위로 등장하는 Jclef의 퍼포먼스는 ‘노래 같은 랩’인지 ‘랩 같은 노래’인지 구별할 수 없다. 분명한 음과 멜로디를 가지고 전개되지만, 음절의 배치와 그루비한 플로우 조절은 타이트한 랩과도 닮아있다. 피처링 아티스트 OHIORABBIT 역시 선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하여 Verse를 짰고, 능숙한 레이-백과 톤의 완급조절로 기가 막힌 퍼포먼스를 내세웠다. 칵테일(* 로 추정되는 술)을 소재로 쓰인 비유 가득한 노랫말은 시적이지만, 그러면서도 Jclef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낸다. 나를 위해 쓴 적이 없는 눈은 오롯이 내 것 같아, 난 뭔가에 취해 생기는 연에 매인 적이 없지와 같은 의미심장한 라인들이 그렇다. 아티스트로서의 역량과 작가로서의 역량을 모두 완벽에 가깝게 선보였다.

 
 

 
 
 

 

  피아노와 어쿠스틱 기타, 현악기가 교차되어 만들어진 아름다운 선율은 강아솔의 담담한 노래와 메시지에 힘을 싣는다. 분명한 비유에 싸인 노랫말은 사랑의 아름다움, 그리고 그 이후에 대하여 먹먹하게 그려낸다. 언제나 그렇다. 모든 아름다움은 마치 영원할 것처럼 빛나지만, 끝내 시간의 힘 앞에 영원하지 못하고 점점 저물어간다. 그렇지만 “저무는 노을빛의 석양”이 뿜어내는 주홍빛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듯, 아름다웠던 시절을 떠나보내야 하는 이들의 마음은 석양빛 앞에 멈춰버린다. 사랑,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그 앞에선 모두가 다름이 없고, 변함이 없다. 저무는 사랑 앞에서, 지금도 누군가는 나지막이 읊조린다, 우리의 사랑은 이렇게 아름다웠노라고. 진심이 가득 담긴 음악을 미워할 수 없는 이유이다.

 
 

 
 
 

 

  비록 『무너지기』를 듣는 데 있어 ‘노랫말의 내용’이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은 맞다. 하지만 『무너지기』 내에서도 유달리 종교적인 본 트랙의 노랫말은 들여다볼 필요성이 있다. 어쿠스틱 기타 스트로크로 시작해 점점 사운드의 층이 더해지며 그 힘이 분명해지고, 중반부에 노이즈를 포함한 다양한 악기들과 결합하며 정점을 찍는다. 그러다 잠깐 힘을 빼고 완전히 마무리 지어지는 듯 하더니, 다시금 격렬한 힘을 과시하며 나아간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났을 때, 바람 소리와 말소리를 샘플로 차용한 담백한 연주가 2분여 지속된다. 여기서 노랫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또 쌓는 탑, 소금이 뿌리 내린 땅은 순식간에 성서의 풍경 속으로 우리를 내몰고, 그 곳에서 우리는 지속적으로 ‘쌓아지는’ 탑을 목격한다. 나는 그렇다고 노랫말 전체에서 등장하는 이 ‘탑’이 성서에서 등장한 ‘바벨탑’과 동일한 의미로 쓰였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본 트랙의 노랫말에서, ‘탑’은 무너진다. 그것도 ‘우리가 쌓아가던 탑’이 무너진다. 아니, 우리가 ‘우리가 쌓아가던 탑’과 함께 무너진다. 『무너지기』의 속에서 우리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노랫말로써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그 ‘무너짐’의 과정은 너무나 성스럽게 드러난다. 노랫말에서 그랬듯, 일종의 ‘정화’인 것이다. 그것만을 남긴 채 사운드 속으로 무너져내리는 노랫말을 억지로 붙잡아봐도, 나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다.

 
 

 
 
 

 

  비록 앨범의 콘셉트가 ‘단일곡’을 추구하지만, 본 트랙에 대해서 따로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앨범 『The Lord Ov Shadows』의 서사를 놓고 봐도 자신 안의 ‘그림자’를 비로소 인정하면서 동시에 스스로 ‘그림자의 왕’임을 자처하며 ‘그림자’에 대한 투쟁을 다짐하는, 서사의 핵심에 위치하는 트랙이다. 하지만 그러면서 동시에 주목할 만한 것은 20분 46초라는 어마어마한 스케일이다. 현대 음악이 그 정도로 길면 집중력이 떨어질 것만 같지만, Dark Mirror Ov Tragedy는 ‘심포닉 블랙메탈’이라는 자신들이 추구하는 장르를 잘 활용해 매우 임팩트 있는 트랙을 완성시켰다. 초반부부터 하드한 기타 연주와 맹렬한 드럼, 강력한 보컬이 귀를 잡아두고, 이윽고 피아노 연주와 함께 현악이 등장하며 무드가 환기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요소들이 더욱 힘을 키우고 서로 바톤을 터치하며 전진하다가, 14분이 지나 그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불길한 오르간 소리만이 남는다. 오르간이 꺼지고, 비로소 끝났구나하는 안도감에 채 젖기 전에 급작스럽게 어둠이 트랙 위로 자리하고, ‘그림자’를 암시하는 소름끼치는 속삭임 뒤로 장송곡을 연상시키는 보컬이 울리며 우리를 두려움에 빠뜨린다. 20분이 넘는 러닝타임은 비록 대부분의 이들이 본 트랙에 쉬이 접근할 수 없게 만들겠지만, 본 트랙이 주는 감상에 비하면 20분이라는 시간도 짧게 느껴질 뿐이다.

 
 

 
 
 

 

  빨리 달리는 삶에 너무 익숙해진 것 같다. 죽음으로 나아가는 우리의 삶이 그렇듯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일들에는 시간제한이 걸려있다. 사람과 만나는 것도 언제나 그 시간이 정해져 있고, 과제물을 끝마치는 사소할 수 있는 일부터 시대를 정의하는 거대한 시스템의 톱니바퀴들까지 모두 정해진 시간에 맞춰 움직이고 있다. 마치 모든 것이 끝나기 전에 무엇인가를 더 이루려는 듯 말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더욱 더 타이트하게 움직여야하고, 멈추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잠시 멈춰 서서 주위를 돌아보는 여유를 가지기는 너무 힘들다. 본 트랙에서 오혁은 홍콩의 택시 운전사와 이야기를 나눈다. “Why are you running so fast?”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빨리 달려야만 하는 삶과 그로 인해 찾아오는 고통을 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흘러가는 시간 위에서 방황하는 오혁과는 달리 본 트랙의 연주는 말 그대로 매우 빠르게 흘러간다. 질주하는 기타 리프와 거침없는 드럼은 시간 그 자체를 반영한 듯 하며, 그 속에서 우리는 비명을 지를 수 밖에 없다. 결국 오혁은 택시 운전사와의 대화에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듯 하다. 그저 “I feel my agony through you”라는 노랫말이 말하듯, 자신의 고통을 다시 한 번 실감했을 뿐이다. 케인의 유언이었던 ‘Rosebud’가 그가 유년 시절 타고 놀던 썰매에 있었듯, 시간 위에서 달리는 우리들은 그저 거꾸로 도망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GPS도, 나침반도 없었던 먼 옛날, 뱃사람들은 하늘에 떠있는 북극성을 보고 자신들의 항로를 바로잡곤 했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북극성을 ‘길잡이별’이라고 부르곤 했다. 시대가 발전해 길을 찾을 수 있는 도구들이 많이 생기고, 지상의 휘황찬란한 빛에 북극성마저도 쉬이 가려지는 요즘, 그 누구도 북극성을 ‘길잡이별’로서 여기지 않는다. 그 이전에 늘 같은 자리에서 옅은 빛을 꾸준히 내뿜는 북극성의 존재를 우리 모두는 잊고 살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와중에 FANA는 있는 힘껏, 제자리에서 빛나고 있을 ‘길잡이별’의 존재를 붙잡는다. 비록 그의 앞엔 여전히 길 위를 환하게 비추이는 LED”가 빛을 발하고 있지만, 그 빛은 너무 밝아서 오히려 그를 더욱 외롭게 할 뿐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한 발짝씩 길을 찾아가듯, 최대한 절제된 사운드의 틈 사이로 담백하게 읊조리는 FANA의 이야기는 그의 내면에 숨겨진 어둠에 대해 말한다. 그는 혼자는 단 한 걸음도 못 가는 바보 겁 많은 존재이며, 또 다른 잘못과 무마로 가득한 모자란 존재이기도 하고, 그 곁에서 사람들이 떠나가고 있는 듯 하다. 그럼에도 그는 생의 의지를 부여잡는다. “The guiding stars will shine in dark” : 아무리 그에게 주어진 삶이 가혹해도, 지지 않을 희미한 빛이 그를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길잡이별’을 찾아가는 그의 강인함은 어쩌면 그와 비슷할 아픔을 겪고 있을 사람에게 큰 위로가 된다.

 
 

 
 
 

 

  그들만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위대한 여정 『데카당』. 앨범의 타이틀 트랙인 본 트랙 「각주」는 그 여정을 온전히 담아내는 트랙이 아닐까 싶다. 트랙 내에서 ‘너’로 드러난 이는 말 그대로 ‘너’로 표현될 수 있는 사람일 수도 있겠지만, 데카당이 본 트랙에서 표현한 ‘너’는 조금 더 추상적인 영역에 있다. ‘여러 개의 계절’에 살고, 같은 모양의 머리를 고수하고 다 아는 줄 알았는데 모르게 되어버린다. 그래서 데카당은 ‘너’에 대해 각주를 단다. 우리가 글을 쓸 때 각주를 달 듯, 설명을 적고 그에 대한 출처를 달고, 그를 또 보충하고, 그에 대한 사견을 적어내리며 데카당은 ‘너’를 이해하려 애쓴다. 하지만 이를 어째, 결국 데카당과 ‘너’는 끝내 ‘데면데면’해져버린다. 다시 상황은 원점이다. 데카당은 다시 한 번 ‘너’를 이해하려 각주를 달 수 밖에 없다. 트랙에서 보충해라는 노랫말이 수도 없이 반복되듯이, 데카당은 ‘너’에 대한 각주를 수십 번은 더 단다. 풍성한 선율에 명확한 멜로디, 아르페지오가 어우러지며 무드를 형성하는 사운드가 후반부에 이르러 절정에 도달한다. 그 속에서 진동욱의 보컬은 절규로 바뀌며, 그것은 수십 개의 각주를 달아도 알아낼 수 없는 ‘너’를 알고자 하는 마지막 발악이다. 그래서 결국 데카당은 ‘너’에 대해 알아냈을까? 데카당이 여전히 아름다움을 찾고자 곡을 쓰고 노래를 하듯, ‘너’의 정체는 끝내 미제로 남은 것 같다.

 
 

 
 
 

 

  싱글 앨범의 표지가 벤다이어그램의 교집합을 나타내듯이, 다브다가 본 트랙 「꿈의 표정」에서 담고자 했던 것은 온전한 인간관계의 회복이다. 비록 서로 같은 사람은 없어도, 서로 닮은 사람은 많다. 우리는 모두 살아가고 있고, 살아남고 있듯, 어쩌면 우리 모두는 관계한 적 없이도 동지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지쳐버린 이들은 각자의 영역에 선을 그어 쉽게 다가오지 못하게 한다. 따뜻하게 울리는 기타 연주는 그러한 현실에 전하는 손짓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다채로워지는 멜로디와 강해지는 드럼은 트랙 속에 있는 우리를 더욱 극적으로 이끈다. 사람을 쉬이 대하지 못하는 우리들이 차가워진 것이 아니다. 그저 우리는 지쳐있을 뿐일지 모른다. 타인을 만나는 것은 숙명과도 같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 많이 괴로웠고, 너무 많이 아파왔다. 다브다가 본 트랙에서 말했듯, 어느새 높이 쌓여버린 담장을 쓸어내릴 틈도 없이,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다. 하지만 다브다는 따뜻한 연주와 보컬로 그런 우리에게 위로를 건네고, 그 위로는 이윽고 제안이 되어 현실을 타개해갈 힘이 된다. 난 너를 전부 알 순 없어도, 지난날 네가 꾸었던 꿈의 표정을 봤어, 너무나도 감동적인 순간이다. 우리는 온전히 자신의 영역인 줄 알고 선을 그었지만, 우리가 본 트랙과 함께 목격한 것은 그 선들이 겹쳐 만들어진 교집합이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하면서 삶을 살아간다. 인간관계를 쌓고, 공부를 하고, 취직을 하거나 사업을 하고,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삶을 살아가고, 시스템에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일들은 언제나 성공을 보장하진 않는다. 일시적인 성공처럼 보이는 성취를 이루더라도, 그것은 얼마 안 가 무너지기도 한다. 어렵사리 쌓은 인간관계는 사소한 갈등으로 인해 무너져내리고,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꼭대기와 바닥을 왔다갔다거리기도 하고, 노력을 아무리 해도 그에 합당한 결과로 보상받지 못하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묻게 된다, “대체 나는 그 일을 왜 했던 걸까?” 후회의 감정은 모두에게 평등하다. 결과만이 살아남는 세상 속에서 후회가 쌓이다 보면, 어느새 모든 것에 무던해지고 차가워진 우리 자신의 모습을 목도하게 된다. 현실이 그렇다.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시스템은 우리를 좌절시키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열정을 차갑게 식힌다. 모두가 절망, 분노, 슬픔 속에 잠겨 있는 현재의 우리가 차가운 것은, 그만큼 뜨거웠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뜨거운 열정의 경험과 그를 압도하는 현실의 괴리는 우리에게 더 큰 슬픔을 불러일으킨다. 본 트랙이 담은 것은 그러한 의식 속에 있다. 그저 투정과 같이 시작하면서도, 이내 자신의 외로움을 고백하는 노랫말은 차가워져버린 장기하의 소회를 담는다. 선명한 기타 리프가 자리하는 연주는 그와는 대조적으로 따뜻하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밴드의 연주와 노랫말이라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폭풍전야’라는 사자성어의 존재가 말해주듯, 우리에겐 태풍이 불어 닥치기 전 세계는 고요하다는 고정관념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모임 별은 ‘태풍 전날’이라는 바꿀 수 없는 운명을 소재로 그러한 고정관념을 비틀고 뭉개버린다. 시작부터 음침하게 소음이 깔리고, 그 사이사이로 불길한 스트링 켜는 소리가 지직댄다. 드럼이 들어서면서 분위기는 한층 고조된다. 인트로에 있었던 소음이 긴 기타 디스토션으로 바뀌고, 거기에 낮게 깔리는 나레이션이 더해진다. 더 이상 물어보지 마, 언젠가 알려 줄게, 언젠가 꼭 대답해 줄게, 약속할게, 변형된 채로 들리는 이 나레이션은 우리에게 정해진 운명의 불가지성(不可知)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그와 함께 묘한 이펙트가 몽롱하게 들어서고, 우리를 금지하던 나레이션은 이제 그만 집에 가자라는 권유로 바뀐다. 점점 거세지는 드럼, 토속적인 종소리, 거칠다는 말보다는 기괴하다는 말이 어울릴 법한 기타 연주, 트랙이 끝을 향해 달려갈수록 트랙 전체적으로 느껴졌던 불안과 긴장은 이내 떨쳐낼 수 없는 공포로 바뀐다. 바꿀 수 없는 비극적 운명 앞에 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마주해야 할까. 본 트랙은 그 물음을 음악적 공포로서 우리에게 던진다.

 
 

 
 
 

 

  트랙의 시작부터 집중할 수 밖에 없다. 재지하면서도 화려한 건반과 신시사이저가 교차하는 순간은 재즈 아티스트와 힙합 프로듀서의 듀엣이 어떠한 결과물을 탄생시킬 것인지를 천명한다. 이진아의 연주와 GRAY의 프로덕션이 곡이 연주되는 내내 밀당을 계속하며 청자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때로는 신시사이저의 자리를 건반이 빼앗기도 하고, 때로는 그 반대로 작용되기도 하면서 유니크함을 갖춘다. 훅에서 끝내 신시사이저와 건반이 화합을 이루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전개되고, GRAY의 아카펠라까지 곁들여지며 하이라이트를 장식한다. 후반부 이진아의 피아노 솔로 연주에 이르러 재즈와 팝의 경계에서 노닐던 본 곡이 재즈의 영역으로 완전히 넘어온다. 흰반을 위주로 하던 연주가 갑자기 검반 위주의 전개로 노선을 변경하는 구성이 매우 자연스럽고 탁월하다. GRAY의 트렌디한 감각을 잘 살린 보컬과 이진아의 유니크한 음색 역시 의외의 하모니를 잘 이루어낸다. 서로가 서로의 목소리를 받쳐주는 구간이 긍정적으로 작용된다는 점은, 본 곡에 임하며 서로가 얼마나 서로의 음악을 잘 이해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노랫말 역시 탁월하다. 특히 일상적인 단어들로 서정성을 훌륭하게 표현해내고, 본인의 유니크한 보컬과 잘 어울리도록 운을 잘 짠 이진아의 노랫말은 탁월하다. 본 트랙으로 이진아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벽을 멋지게 부수었다.

 
 

 
 
 

 

  그들의 언어를 우리가 맞이하기 전부터, 그들은 이미 그것을 구사하고 있었다.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KYOMI』에서 날카로웠던 Kim Ximya의 설익은 문법 역시 그러했겠지만, 보다 확실해진 스탠스로 다가왔던 것은 본 트랙이다. 『SECOND LANGUAGE』에 「우아」라는 이름으로 수록되었지만, 그 전에 2017년 12월 XXX는 패션 브랜드 ‘메종 키츠네’가 주관한 앨범에 수록된 바 있다. 『KYOMI』에서 철저하게 타자를 향했던 Kim Ximya의 시선은 도리어 스스로의 안으로 휜다. 그간 그의 음악에서 주로 지적되었던 비속어의 남발에 대해 자조하기도 하고(“Now, what the fuck is this, ‘이 노랜 대박이 날지도하며 난 ‘what the fuck is this?’에서 fuck을 지웠다가 다시 썼다, 이건 아무래도 개 쪽팔린 일), 씬에서 분투하다 지쳐버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이제 지칠대로 나는 지쳐버렸지” / “떠올려보네 은퇴를, 다른 재주가 있었다면). 그러면서도 자신이 그간 비판하던 대상들에 대한 날카로움도 여전히 견지한다(진짜 음악 병신 가짜 음악 병신, 다 븅신들끼리 참 븅신다워 / 갈 때 예술가 오명은 씻고 가 같은 취급이 기분 나뻐). 선명한 멜로디가 드러나는 훅과 그를 받쳐주는 FRNK의 프로듀싱은 그간 XXX의 음악과도 결을 달리한다. 확실히 신기하다. 자신의 노랫말에서 도리어 스스로를 저격하는 Kim Ximya의 모습(난 병신 같이 멋을 쫓다 결국에는 젊은 정신을 잃었지)과 다른 음악들이 하듯 훅과 멜로디를 강조하는 모습은 본 트랙 이전까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어쩌면 우리는 XXX의 위대한 언어적 전회를 우리는 미리 목도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도입부에서 드럼의 심벌을 마치 꽹과리처럼 다루는 ‘한국적’인 연출을 보여주다가도, 선명한 기타 연주가 그와 겹쳐지며 색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넘치는 에너지는 자신도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 곳곳에서 넘쳐흐르지만,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갈 때 즈음 한층 차분해지며 우리를 당황스럽게 한다. 의미를 알 수 없게 희미한 말이 샘플로 사용되었는데, 마치 옛사람의 독백과도 같은 독특함으로 본 트랙의 연출에 힘을 보탠다. 트랙의 노랫말은 더욱 특별하다. 본 트랙의 노랫말은 더욱 특별하다. 분명히 끓어오르는 강한 연주인데, 그 아래에 놓인 화자는 시계추를 따라 같이 돌아갈 뿐이다. 빙글뱅글이라는 단어의 반복적인 사용으로 대상의 이미지를 명확히 하고, ‘빙글뱅글’ 돌아가는 세상 속에 놓인 화자의 모습은 더욱 비참하게 그려낸다. 동요 노랫말에서 동심을 뺀 버전처럼 보이는 아침 해가 떴다 우리 밥 값하러 어서 나가보자라는 라인과, 다른 트랙들의 노랫말과 괴리감이 드는 빙글뱅글 돌고 도는 현실의 목줄이 / 나와 그대를 끊어버리네라는 라인은 ‘한국적’으로 연출된 연주 아래에서도 현재의 대한민국과 그 안의 우리 모습을 그대로 트랙의 화자로서 투영한다. 트랙의 시작에서 ‘오늘도’ 춤을 추던 이는 마지막에 이르러서도 ‘아직’ 춤을 추고 있다. 그 ‘아직’이라는 단어에서 아시안체어샷은 돌아가는 세상 위에 힘겹게 주체적인 의지를 놓는다. 세상 속에서 우리는 ‘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돌고’ 있는 것이라고.

 
 

 
 
 

 

  “묵직한 연주곡에 갈증을 느꼈다.”라는 그녀들의 말처럼, 『EGO FUN SHOW』 전체를 놓고봐도 본 트랙 「바보들의 왕」은 유달리 그 연주가 하드하다. 둔탁하게 울리는 드럼 위로 시끄럽게 긁어대는 기타 연주는 마치 ‘선언’과도 같은 본 트랙의 노랫말을 훌륭하게 뒷받침한다. ‘헬조선’, ‘지옥불반도’, 현재의 대한민국을 정의하는 말로서 온라인과 오프라인 양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지도 시간이 지난 단어들이다. 그러한 ‘헬조선’, ‘지옥불반도’에 사는 우리들은 ‘노예’들이다. 작은 인간관계에서도 전전긍긍하며 종의 자세를 취하는 것이 일상이고, 시스템을 쫓아가려고 죽을 각오로 뛰어도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현재 대다수의 대한민국 국민들의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스로 ‘왕’임을 자처하는 것은 미친 짓처럼 보일 수 있다. 에고펑션에러는 본 트랙에서 그 ‘미친 짓’을 당당히 해낸다. 환한 미소 예쁘게 짓고 우습게볼까 외로워했던 현대의 인간관계를 꼬집고, 사랑스러운 실수 한 번으로 쉽게 죽일 놈이 되어버리는 실상을 비꼰다. 지나치게 고도화된 현대의 이러한 체계 속에서 우리는 어쩌면 아무리 노력해도 ‘바보’를 벗어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한 현실을 종의 입장이 아닌, 주인 된 입장에서 개척해나가는 것은 확실히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낮은 곳에 사는우리도 ‘세상의 왕’처럼 살자는 에고펑션에러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막연한 희망을 가져다준다.

 
 

 
 
 

 

  반복적으로 딱딱하게 울리는 비트와 몽롱한 신시사이저, 이펙트의 조합은 우리를 과거로 이끌어 레트로 감성을 자극한다. 한 점씩 강하게 찍히는 비트에 맞춰 수민은 최대한 과장된 딕션으로 노래를 부르며 트랙의 분위기와 하나가 된다. 애인 간의 사랑이라는 흔한 소재를 ‘집’이라는 키워드로 생동감 있게 만든 노랫말에서도 수민의 작가적 역량이 빛난다. 너무 좋으면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에서의 감정을 세밀하게 묘사한 Verse의 첫 부분을 지나 너네 집에서 내가 살고 싶으니까라는 문장으로서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를 축약한 Verse의 마무리는 꽤나 인상적이다. Verse에서 활용했던 과장된 딕션에서 한층 벗어나 보다 여유있게 흐름을 타는 훅은 K-Pop에서의 그것과 같이 밝고 선명하다. 이윽고 Xin Seha가 느긋하게 합류하는 순간은 온 몸에 전율이 돋을 정도로 인상적이다. Xin Seha 역시 떫은 어제는 이미 지웠어와 같은 재미있는 라인으로 수민의 노랫말과 분위기를 맞춘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지나가버린 2018년을 다시 한 번 돌이켜봐도 본 트랙만큼 ‘듣는 매력’을 가진 트랙은 찾기 쉽지 않을 것 같다.

 
 

 
 
 

 

  날선 808비트와 하이햇이 쉴 새 없이 쪼개지는 게 너무 차갑다. 그 차가움은 본 트랙의 미니멀함에서부터 출발한다. 쪼개지는 비트를 제외하면 본 트랙의 사운드는 그저 텅 비어있다. 그것은 흔히들 말하는 앰비언트 뮤직에서의 ‘비어있음’이랑은 결이 다르고, 그냥 아예 다른 소리가 없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적절할 것이다. 군데군데 Jclef의 숨소리를 비롯한 샘플들이 그 빈 공간을 채우지만, 그것들이 ‘채운다’라고 말하기엔 그저 외롭게 들릴 뿐이다. 어쩌면 그것이 Jclef가 의도한 영역이 아닐까 싶다. 운석이 떨어져 지구가 멸망하기 한 시간 전, 그 운명을 미리 직시하고 현실을 관조하는 Jclef의 노래는 비어있는 사운드 위에서 더욱 분명하게 다가온다. 정해진 운명 앞에 누군가는 종교에 의지해 신에게 내세에서의 안정을 기원하고, 누군가는 자신이 가진 힘을 마지막으로 과시하며 그 밑으로 가지고 싶었던 힘을 상상하며 도둑질을 일삼는 이들도 있다. 모든 미움이 마지막에 이르러 사랑이 되어 서로가 서로를 끌어안는다. 그들은 모두 삶에 미련이 남아,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최대한 부여잡고자 한다. 반면 본 트랙의 화자는 너무나 평온하다. 거봐, 저길 엿보기만 할 수 있는 이곳이 지상낙원이야라며 애쓰는 모두를 비웃는 그녀는 대체 어떠한 삶을 살아왔던 것일까. 우리는 그녀에게서 우리의 삶의 의미가 어떠한 것인지를 읽어낼 수 있고, 오늘이 아니어도 매 순간은 어차피 운석 드리우는 삶이야라는 그녀의 말을 이해하게 될 때 비로소 삶의 끝을 비극으로 여기지 않게 된다. 트랙의 마지막에서 기쁘게 카운트다운을 세는 이들처럼.

 
 

 
 
 

 

  첫 음이 시작되는 순간 빨려 들어가고 만다. 트랙의 중심으로 자리하는 신시사이저의 멜로디는 마치 여행을 하는 것처럼 트랙 곳곳을 누빈다. 처음에는 한 걸음씩 선명한 발자국을 남기고, 건반과 드럼의 뒤에 숨어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다시금 모습을 드러내 다른 소리들과 발을 맞추더니 갑자기 간소화된 형태로 나타나 우리를 놀라게 하기도 한다. 칩튠, 빅 비트, 하우스 등에서 차용한 각양각색의 일렉트로닉 요소들을 거침없는 강약조절과 함께 배치한 사운드들은 전반적으로 밝지만, 끝으로 다다를수록 그 사운드들은 뒤로 후퇴한다. 하지만 신시사이저 멜로디는 주인공으로서 계속 자리를 지킨다. 사운드들이 빠지고, 건반 약간과 드럼 조금만을 동료로 남긴 채 여전히 흘러가는 신시사이저 멜로디는 너무나도 처연해 슬픈 마음이 든다. 앞서 말했듯 본 트랙은 신시사이저 멜로디의 여행기다. 그 멜로디의 움직임에 따라 우리는 트랙을 읽고, 멜로디의 느낌에 따라 우리의 감정도 변한다. 비록 노랫말이 한 마디도 없어도, 본 트랙이 우리에게 아픈 공감을 주는 것은 우리의 모습과 꼭 닮은 멜로디의 발걸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트랙의 마무리에 이르러 신시사이저 멜로디가 다시 사운드들과 결합해 밝은 에너지를 내뿜으며 끝나는 것은,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야한다’라는 『Sarah』의 주제의식과도 밀접하다. 친구의 죽음이라는 하나의 사건을 발판으로 한 곡이지만, 결국 「Wish」는 우리 모두에게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넨다.

 
 

 
 
 

 

  「곡선과 투과광」, 어지럽게 퍼지는 곡선과 반듯하게 뻗어나가는 빛, 본 트랙은 자신의 제목을 내부에서부터 이미지화하여 우리들에게 선보인다. 흐드러지는 전자음과 기타 연주, 섬머소울의 목소리가 아슬아슬하게 트랙 위를 노니는 모습은 얼마나 크게, 얼마나 깊이 휠지 모른 채 나아가는 곡선을 새긴다. 그러다 갑자기 그 모든 것들이 퇴장하고, 비교적 차분하게 울려 퍼지는 사운드 위에서 공중도둑의 보컬이 들리며, 받아들이기 쉬운 멜로디로 섬머소울과 합을 주고받으며 사운드의 층이 점점 쌓이고, 마치 빛을 쬔 듯이 또렷해진다. 여기서 첫 번째 부분에서 섬머소울의 목소리가 말 그대로 ‘소리’가 되어 기능한 것과 달리, 공중도둑과 섬머소울의 주고받음은 약하게 시작하는 사운드의 앞에서 하나의 의미 있는 ‘노랫말’이 된다. 비록 음질이 흐리더라도, “-있기엔, 너무 지쳤어”라고 읊조리며 등장하는 공중도둑의 목소리는 확실히 노랫말을 싣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트랙의 전개에서도, 『무너지기』라는 앨범의 구성 중 하나로서도 적잖은 충격을 선사한 공중도둑의 보컬은 “…휘청거릴 수도 있어, 괜찮겠어?” / “비 내려도 쓸려가도 되짚을 수 있을거야. … 괜찮겠어!”라고 섬머소울과 문답을 주고받는다. 그렇게 주고받은 문답은 존재에 대한 하나의 확신이 되어, “우리 모두 가루가 돼” 버리도록, 시간을 상징하는 듯 점점 무게가 거대해져가는 사운드에 기꺼이 몸을 던져 다시 ‘말’이 있는 ‘보컬’이 아닌 하나의 소리로 회귀한다. 흘러가는 시간(* 러닝타임)과 같이 ‘소리’로 흐르면서도, 그들이 주고받은 문답의 의미는 트랙이 끝나도 먹먹하게 남는다. 그렇게 곡선으로서, 직선으로서, 소리로서, 의미로서 완성된 「곡선과 투과광」의 모양은 물음표와 닮았다. 전율이 흐른다.

 
 

 
 
 

 

  YG의 음악은 뻔하다. 공격적으로 달려드는 신시사이저와 전자음, 트랩/래칫을 연상시키는 마구 쪼개지는 비트, 속칭 ‘뽕끼’어린 멜로디-메이킹, 자기과시성 가사들이 대부분의 작업물마다 반복되며 뻔한 이미지를 쌓았다. 그간 BLACKPINK의 음악 역시 그래왔고, 「뚜두뚜두」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뚜두뚜두」에서 주목해야할 지점은 바로 그러한 ‘뻔함’에 있다. 인트로부터 깔리는 트랩 비트와 신시사이저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어지는 부분에서부터 멤버의 파트가 바뀔 때마다 사운드가 끊임없이 변화한다. 신시사이저가 퇴장했다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갑작스레 비트의 패턴이 바뀌기도 하며, 브릿지에서 기타 연주가 나타나고 마무리는 태평소로 끝낸다. 그 모든 부분들이 그간 YG의 방법론에서 동떨어져 있느냐 하면 그것은 절대 아니지만, 오히려 뻔한 사운드들이 쉴 새 없이 귀를 어지럽히며 변화하는 과정이 트랙을 새롭게 한다. 각 멤버들의 퍼포먼스도 우리가 듣던 대로이지만,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여준 지수를 필두로 인상 깊은 랩을 선보인 리사, 제니, 트랙의 바이브와 잘 맞는 로제의 목소리가 ‘듣던 대로’의 모습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노랫말 역시 듣던 대로지만, 강한 어조로 일관하던 노랫말을 훅에 이르러 뚜두뚜두뚜라는 정반대의 노랫말로 뒤집어버린다. 본 트랙은 YG가 자신들의 ‘뻔한 음악’에 제시하는 나름의 대안이다. 뻔한 방법론을 고수하면서도, 그것을 잘 정제된 퀄리티와 퍼포먼스로 뽑아낸 다음 이리저리 뒤섞어 결과적으로 새롭게 느껴지게 했다. 여전히 뻔하다는 이유로 공격받을 여지는 있겠지만, 「뚜두뚜두」는 그 사실을 인정하기에 뻔하다는 비판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hit you wit that 뚜두뚜두뚜 : 이 강력한 라인이 여전히 우리 귀에 맴돌 듯이, BLACKPINK의 정면돌파는 멋지게 2018년을 빛냈다.

 
 

 
 
 

 

  누군가에겐 추억으로, 누군가에겐 이질적으로 다가올 귀뚜라미 소리는 본 트랙이 그간의 DEAN의 음악과는 조금 다른 방식일 것이라는 걸 예고한다. 황소윤의 기타 연주와 클랩으로 단출하게 꾸려진 소리들도 그렇고, 트랙 내에서 DEAN의 태도도 그렇다. 본 트랙에서의 DEAN은 평소처럼 속칭 ‘사기적인’ 음색으로 사랑에 대해 말하거나, 다른 힙합 아티스트들의 트랙 위에서 Swag을 뽐내던 멋있는 모습이 아니다. 그저 Instagram을 켜놓고 다른 이들의 삶을 관망하며 밤을 지새우는 평범한 모습일 뿐이다. 그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이 관둘래, 이 놈의 정보화시대라고 외치지만, 오히려 ‘정보화시대’라는 구시대적인 단어가 ‘평범함’에 저항하는 그의 모습을 더욱 ‘옛날 사람’처럼 보이게 한다. 사실 그렇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대중화는 ‘정보화시대’로의 이행을 더욱 가속화시켰고, SNS는 우리가 ‘정보화시대’를 살고 있다는 가장 직접적인 증거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SNS를 이용하여 소통하고,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고, 자신의 정치적/학문적 견해에 대해 논하기도 한다. 그러한 SNS는 인간관계가 시간과 거리를 초월해 확산되게 하였고, 정보의 거센 범람을 빠르게 촉진시켰다. 그러나 그렇게 편리한 SNS가 과연 순기능만 존재하는 것인가? DEAN은 본 트랙에서 다른 이들과 똑같은 입장으로 그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SNS에서 많은 팔로워를 거느린다 해도 그러한 인간관계는 쉽게 공허해지고, 범람하는 정보에 잠겨 숨 쉬기 조차 힘들다. 허나 빠르게 변하는 세상은 사람들에게 SNS를 강제하고 있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 지금도 우리는 좋아요 하나, 댓글 하나에 목을 맨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 관둘래, 이 놈의 정보화시대: DEAN이 진절머리가 나 외쳤던 이 문장은 그에 대한 날카로운 답이 된다.

 
 

 
 
 

 

  아니 지금 시대가 어느 땐데 앨범에 「간주곡」이라니? 트랙이 4분만 넘어가도 긴 것처럼 느껴지고, 원하는 부분을 다 듣고 질릴 때쯤엔 다른 트랙으로 돌려버릴 수도 있는, 문자 그대로 음악의 ‘취사선택’이 가능한 시대. 우리가 그러한 스트리밍 시대에 살게 된 것도 벌써 옛날이야기 아닌가? 시대를 역행하는 발칙한 제목답게 「간주곡」은 『LANGUAGE』에서도 가장 이질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고, 동시에 앨범의 정체성을 가장 잘 표현한다. 6분 38초라는 긴 러닝타임에서 무려 5분여를 과감히 랩이 없이 비트에만 투자했지만, FRNK가 빚어낸 사운드는 5분여의 시간 중 단 한 순간도 놓칠 수 없게 한다. 가스펠과 같은 신성한 분위기까지 조성하는 듯한 합창과 오케스트레이션이 깔리고, 뒤이어 강이채의 화려한 독주와 드럼의 향연은 초장부터 우리를 찍어누른다. 그 모든 것들이 퇴장한 바로 직후 불안한 기운을 내뿜는 전자음과 내리꽂는 드럼이 게임 ‘스타크래프트’에서 따온 샘플과 만나 긴장감을 조성하다가도, 이어 드랍과 함께 피아노가 등장하며 확장되는 스케일이 쾌감을 준다. 이후에도 끊임없이 변주를 이어가며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다가 보글거리는 전자음과 함께 마침내 Kim Ximya가 등장하는 랩 파트는 압도적이다. 휘발적인 음악들이 가득한 현 힙합 씬과 음악 시장을 정면으로 비웃는 듯 하는 트랙의 러닝타임을, Kim Ximya는 등장하자마자 “역시 뭐든 빨리 질리는 타입이야. 여기 존나 역겹군.”이라는 직설적인 노랫말로 뒷받침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Kim Ximya의 엄청난 기량의 랩은 앞선 FRNK의 강렬한 퍼포먼스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포함한 모든 씬의 양태들을 비웃어버리는 도발적인, 하지만 확신에 찬 노랫말은 뇌리에 꽂힌다. 비록 이 트랙이 노랫말마따나 차트에 오르내리지는 못했지만, 차트에 올라갈 수 없는 트랙이기에 그 존재감이 더 크게 2018년을 짓누른다. 그 모든 것은 Kim Ximya의 노랫말처럼, “내 지루한 음악이 해답이니까”

 
 

 
 
 

 

  한숨을 쉬는 듯 뱉는 첫 소절 뒤로 어쿠스틱 기타가 등장할 때 이미 예사롭지 않음을 느낀다. 트랙의 진행에 맞추어 기타 연주 뒤로 노이즈들이 쌓이지만, 그 과정은 급작스럽지 않고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이루어진다. 하지만 서서히 조여가라고 공중도둑이 한숨을 내뱉는 순간 이후부터는 트랙의 전개가 확연히 달라진다. 갑자기 확 커진 볼륨의 전자음들이 섬머소울의 샘플과 함께 치고들어오며 분위기가 반전된다. 이후 숨을 고르는 듯싶다가, 다시 나타난 공중도둑의 목소리와 함께 다시금 소리들이 흐드러지며 난리를 피운다. 비-선형적으로 전개되는 공중도둑의 보컬은 사운드에 녹아들어 하나의 소리가 되고, 우리는 주체할 수 없이 쌓여가는 소리들의 향연에 어지럽다. 이윽고 공중도둑의 목소리는 끝을 보지만, 소리들은 여전히 남아 우리를 흔든다. 전자음들이 귀를 어지럽히고, 마치 주마등처럼 공중도둑의 목소리가 스쳐지나가더니 강렬한 기타 스트로크가 끝을 장식한다. 이렇듯 본 트랙의 소리들은 형형색색의 전자음, 공중도둑의 보컬과 기타로서 트랙의 낙차와 깊이, 다채로운 공간감을 형성하고 다양한 무드를 오간다. 기타 연주는 비교적 일관된 멜로디를 캐치하지만, 다른 소리들이 워낙 난리를 쳐놓는 바람에 그마저도 변하는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라가 버린다. 이렇게 거대한 곡의 자유로움은, 공중도둑의 치밀한 짜임새 아래 통제받으며 방종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초반부부터 놀랄 수 밖에 없었던 우리는, 변하는 소리들이 쌓아놓은 거대한 공간 앞에 휩쓸리게 된다. 휩쓸리지 않기 위해 몇 번을 돌려봐도, 그 때마다 다른 모양으로 다가오는 듯 해 별 수 없다. 전부 공중도둑의 계획 아래에 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사는 우리들은 화가 나있다. 현실은 더욱 더 부조리함과 피폐함 속에 침잠해 들어가고, 그 속에서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길은 흐려져간다. 텅 빈 지갑은 늘 우리의 발목을 잡고, 야속하게 ‘발전’하는 듯 빠른 속도로 전진하는 시스템은 우리가 그에 대한 심도 깊은 고찰을 할 기회조차 스쳐지나가게 하며, 사람 하나 사귀는 것조차 쉽지 않다. 반목과 갈등에 둘러싸여있는 우리에게 자신들을 고려하지 않는 ‘꼰대’ 들은 적이며, 정치적 움직임도 우리를 위해 움직이는 게 없다. 그런데 더욱 비참한 것은, 이러한 아픔을 토로하고 투정부리는 것을 허락해줄 만큼 세상은 녹록한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트랙 내에서 잔뜩 짓이겨지는 토마토에겐 죄가 없다. 그것은 토마토를 짓이기는 우리 자신도 정말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토마토를 짓이기게 하는 것은 앞서 말했듯 우리들을 내모는 현실이 만들어내는 ‘화’다. 인트로부터 진득한 사운드로 달라붙는 베이스라인을 시작으로 차분하게 이어지는 기타 연주는 분노한 트랙의 노랫말과는 다른 무드를 형성한다. 그러나 트랙이 진행되면서 연주는 점점 감정을 드러내며 선명해진다. 그것은 절규하는 진동욱의 보컬과 함께 절정에 이르러 브릿지에서의 광기어린 독주로 드러난다. 이렇듯 트랙 내에서 감정의 드러남과 감춤이 유기적으로 짜여있지만, 그와 반대로 노랫말은 시종일관 화가 나있다. 그러면서도 현재 청춘의 인간상에 대한 수준 높은 묘사는 트랙의 속뜻에 설득력을 더한다. “감정 불안정과 자기애 과시”가 ‘그러려니 한 것’으로 치부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열등감은 우리에게 ‘자학’을 ‘취미 삼게’ 만든다. 토마토를 짓이기는 과정은 단순히 과육을 부수는 것이 아닌, 듣는 이들에게 그 이상의 범죄로서 드러난다. 본 트랙의 제목이 「토마토 ‘살인’사건」인 이유이다. 그래서 트랙의 화자는 토마토를 짓이기면서도 두려움에 떨고, 트랙의 말미에서 황급히 증거를 인멸하고야 만다. 우리가 우리 자신이 가진 화를 섣불리 표출할 수 없고, 설령 표출하더라도 쉽게 곤경에 빠지고 말 듯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데카당의 「토마토 살인사건」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우리 모습을 대변하고, 대한민국의 현재를 직시한다. 모든 것을 죽이고, 때려부수고, 전복시키고자 하는 화를 우리는 끝끝내 억누르면서 산다. 그러한 화의 표출은 곧 시스템을 적으로 두는 것이고, 곧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데카당이 곡에서 “계속 이렇게 가다간, 나도 사라지겠구나 싶어.”라고 말했듯 말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가면을 뒤집어쓴 채 화를 인멸하고, 「토마토 살인사건」을 빌어 중얼거릴 수밖에 없다. “내 화를 받아줘, 내 이야기를 들어줘, 이 씨발새끼들아.”

 
 

  1. 작년 웨이브에 게시된 전대한의 글에서도 이와 비슷한 서술을 찾아볼 수 있다.
  2. 작년 웨이브에 게시된 정구원의 글에서도 이와 비슷한 서술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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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듣고, 글을 씁니다.
http://www.tonple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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