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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tle Simz, 『GREY Area』

 

 

“Don’t follow any laws, I got many flaws”

                                          –  「Therapy」 中

 

  지금의 힙합씬은 ‘본토’라고 불리는 종주국 미국을 중심으로 형성되어있지만, 그렇다고 다른 국가들에서 뛰어난 힙합 아티스트들이 부재한 것은 절대 아니다. Little Simz가 이를 증명한다. 영국 Islington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랩을 시작한 그녀의 기량은 미국 힙합씬의 어느 누구와 견줘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매우 빼어나다. 타이트하게 라인을 짜면서도 그것을 흐트러지지 않게 풀어내고, 그 속에서 능숙한 완급 조절을 통해 수려한 플로우를 선보인다. 그러면서도 과장됨이 없고, 뛰어난 워드-플레이와 라임 배치가 일품인 그녀의 노랫말 역시 주목할 만하며, 그 노랫말이 그녀의 영국식 발음으로 독특한 감상을 선사하는 것 역시 특기할만하다. 더군다나 2014년에서 2015년 사이에 EP 포함 무려 8장의 작업물을 공개할 정도로 왕성한 작업량까지 보여주니 리스너들의 입장에선 더할 나위 없다. 더군다나 그 작업물들은 세계에 대한 Little Simz의 성찰을 바탕으로 구축된 세계관으로 짜인 콘셉트를 기반으로 움직인다.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영감을 얻어 전개된 그녀의 2016년 작품 『Stillness in Wonderland』는 좋은 예시이다.

  허나 3년 만에 발매된 본작 『GREY Area』는 그간 Little Simz의 커리어의 방향과는 조금 다르게 전개된다. 여기서 우리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분명 앞에서 말했듯 그녀는 2014년에서 2015년 사이에 EP 포함 8장의 작업물을 공개할 정도로 왕성한 작업량을 자랑했었다. 그랬던 그녀가 무엇 때문에 무려 3년이라는 공백기를 가지게 되었을까? 그녀의 왕성한 작업량은 도리어 그녀가 쉴 시간이 없이 오로지 음악 작업만이 있는 삶으로 그녀를 몰아넣었고, 그 과정에서 그녀는 심신이 지침은 물론 많은 상처를 입었다. 그녀가 인터뷰에서 그녀의 20대 생활이란 어떠한지에 대한 질문에 “It feels like a grey area, which is why I called the album that.”이라고 밝혔듯, 『GREY Area』라는 앨범의 타이틀은 그녀의 감정적 상처 그 자체를 의미한다. 우리가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사람에게 ‘회색분자’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처럼, 회색은 검정과 하양이라는 양 무채색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 영역의 무채색이다. 온전히 작업에 몰두하던 그녀의 20대는, 어쩌면 다른 20대들이 그랬던 것처럼, 정착하는 일 없이 계속 흔들렸던 것이다. 그 흔들림이 가져온 혼란과 상처는 그녀에게 상처를 입혔고, 그 상처는 결국 그녀가 휴식을 선택한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상처와 휴식은 그녀에게 좋은 영감이 되었다. 그렇게 탄생한 본작에는 그녀의 커리어 전체를 통틀어 가장 내면적인 이야기를 담는다. 그 속에는 타이틀답게 이리저리 흔들리는 그녀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지만, 한편으론 그녀가 스스로의 역량에 가진 자신감이 온전히 드러나기도 한다. 그녀가 본작을 두고 “I definitely feel like this is my best work.”이라고 말했듯 말이다. 그녀의 자신감은 첫 트랙 「Offence」에서부터 우리의 뇌리에 파고든다. “I’m Jay-Z on a bad day, Shakespeare on my worst days”라는 라인이 그녀의 자신감을 대변한다. ‘내 컨디션이 나빠도 나는 Jay-Z처럼 랩을 잘하고, 내 컨디션이 최악이라 해도 내 노랫말은 Shakespeare의 글귀처럼 아름답다’라는 의미의 이 라인은 래퍼가 래퍼로서 뽐낼 수 있는 자기과시의 정점에 있다. 으레 다른 래퍼들이 그렇듯 자신의 자신감을 돈이나 차 같은 외적인 요소에 의존해 휘발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거장들을 라인 위에 세우고 문학적인 비유로 그들보다 Little Simz 자신을 위로 둔 이 라인은 본작 전체를 통틀어도 최고의 라인 중 하나로 손꼽을 만하다.

  이외에도 본작의 트랙들이 담은 메시지는 대부분 그녀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어느정도의 위치에 오른 자신을 질투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Selfish」, 자신의 친구였던 모델 Harry Uzoka가 살해당한 슬픔으로 합법화된 총기 소지를 비판하는 「Wound」, 여성이기에 실력에 비해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하는 「Venom」, 어려서부터 힙합씬에 뛰어들게 되었던 과거를 회상하는 「101 FM」,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경험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본작을 만든 동기를 설명하는 「Therapy」 등이 그렇다. 한 마디씩 진솔하게 풀어나가는 그녀의 이야기를 뛰어난 기량의 랩-메이킹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오며, 그녀의 랩을 받쳐주는 프로덕션은 우리가 그녀의 이야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장기인 워드-플레이를 바탕으로 탄생한 임팩트 있는 라인들이 우리를 즐겁게 한다.

  앞서 설명했던 「Offence」의 라인 역시 그러하고 본작 전체적으로 노랫말이 수준급이지만, 나머지 트랙에서 두 가지만 더 짚고 넘어가자면 우선 「Venom」에서의 “They would never wanna admit I’m the best here / From the mere fact that I’ve got ovaries”라고 말하는 라인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난소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누구도 자신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 라인은 여성으로서의 주체성과 함께 자신의 뛰어난 기량을 당당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Therapy」에서의 “Now let’s take a break, need some fresh air and a snout”이라 말하는 라인 역시 탁월하다. 자신의 감정적 힘듦을 드러내며 ‘이제 좀 쉬자, 신선한 공기도 마시고 snout(* 영국에서 담배를 뜻하는 은어)도 피고’ 라고 말하는데, 생각해보면 담배를 피면서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을까? 이 라인은 모순적인 접근으로 그녀가 본작에서 말하고자 했던 ‘20대의 『GREY Area』’를 가장 잘 대표한다.

  이렇듯 본작은 뛰어난 랩과 좋은 노랫말, 그리고 신시사이저를 비롯한 가상 악기를 주로 사용하는 트렌드에서 벗어나 리얼-세션으로 만들어진 그럴싸한 비트를 모두 취하면서 ‘랩 음악’이 좋게 들릴 수 있는 요소를 모두 갖췄다. 그 이상으로 더 무엇이 필요할까? 이미 본작은 무수히 많은 찬사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본작에서 드러나는 아쉬움을 감출 수는 없다. 본작은 Little Simz의 전작들이 가졌던 문제점을 다시 한 번 떠안는다. 그녀의 랩은 정말로 빼어나지만, 앨범 전체적으로 다소 타이트하게 일관하는 그녀의 랩-메이킹은 서로 비슷비슷한 트랙들의 구성(** 절대 사운드가 거기서거기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온전히 트랙의 ‘구성’ 이야기다)과 겹치며 러닝타임이 길어질수록 쉽게 피로해진다. 그녀와 유사한 방식으로 랩을 하는 래퍼로는 대표적으로 Big Sean이나 Logic을 꼽을 수 있는데, 우리는 그들의 앨범 역시 비슷한 문제점을 가지곤 했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다. 비록 Little Simz의 본작이 적어도 그들의 앨범과는 다른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는 해도, 10개의 트랙 모두가 비슷한 구성을 갖춘 채 한결같이 수많은 어절들을 몰아치며 피로감을 유발한다는 것은 본작에 있어 치명적이다. 이외에도 다소 생뚱맞은 「101 FM」에서의 중국 풍 아케이드 사운드라던지, 본작의 피로감을 덜었어야 할 피처링 아티스트들이 제 몫을 다하지 못했다는 점 등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본작이 전 세계적인 찬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온전히 납득하기 힘들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다가온다. 본작이 Little Simz의 상처가 빚어낸 위대한 성장이라는 것이다. 그녀가 겪었던 감정적인 아픔은 그녀에게 삶을 돌아볼 계기가 되었고, 그 성찰을 바탕으로 그녀는 커리어 최고의 앨범을 만들어냈다. 혼란스러웠던 시기를 거치며 겪었던 그녀의 경험이 온전히 본작에 녹아있고, 그래서 어쩌면 본작은 그녀처럼 『GREY Area』를 겪고 있을지 모르는 전 세계 20대들에게 참고할 만한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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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듣고, 글을 씁니다.
http://www.tonple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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