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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AN`s List of 2018 : 2018년을 관통한 올해의 가사 10


 
 
 
 

2018년을 관통한 올해의 가사 10

– written by. coloringCYAN –

(대상 기간 12.01.2017 ~ 11.30.2018)

 
 
Jvcki Wai는 과거의 분노로 현재를 비추었고, XXX는 현재의 분노로 힙합씬과 그에 속한 MC들의 과거의 업적을 부정했다. 매년 극적으로 바뀌는 21세기의 현재라지만, 대한민국의 2018년은 최근 그 어느 해보다 격정적으로 전개된 한 해였다. 많은 이들이 그 사실을 좌시하지 않고 각자의 방식으로 역사를 써내려갔듯, 아티스트들 역시 글로서 그들이 목도한 현재를 적어내려갔다. 본고가 담은 것은 그 많은 가사들 중 기억될 만한 10개의 이야기이다.
 
 
 
 
 
 
 
* 본고는 필진 coloringCYAN 개인의 2018년 결산으로서, 웹진 [온음]의 총결산과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혐오란 단어를 알기도 전에 싹은 트고 있었지 내 마음 안에서

                                          – Jvcki Wai 「To. Lordfxxker」 中

 

  트랩 아티스트이자 걸출한 작사가인 Jvcki Wai는 「To. Lordfxxker」에서 자신이 가진 혐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녀는 광신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여성으로서 과거 자신이 당했던 성적, 정신적, 육체적 학대를 그대로 드러낸다. 그녀가 겪었던 경험들은 곧 실재하는 고통이었고, 현재의 그녀가 스스로를 정체화하는 방향성이 되어 본 곡을 듣는 청자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준다. 2018년의 대한민국은 ‘혐오의 시대’ 속에 있다. 목소리로 내지 못하고 그저 기억의 저편으로 침잠시켰던 다수의 경험이 현재까지 실재하는 고통으로 이어져, 끝내는 그들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고 자신의 혐오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혐오’는 과연 어떻게 세워지는가, ‘혐오’를 ‘혐오’하며 배척하는 것은 누군가의 경험과 고통을 폐기하는 것인가. ‘혐오’라는 단어가 사전적 의미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된 현재, 본 곡에서의 Jvcki Wai의 절규는 그러한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방향을 제시한다.

 
 

 
 
 
 
 
 
 
 
 
 
 
 
 
 

 

“관둘래, 이 놈의 정보화시대”

                                          – DEAN 「instagram」 中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대중화는 정보화 시대로의 이행을 더욱 가속화시켰고, SNS는 우리가 ‘정보화 시대’를 살고 있다는 가장 직접적인 증거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SNS를 이용하여 소통하고,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고, 자신의 정치적/학문적 견해에 대해 논하기도 한다. 그러한 SNS는 인간 관계가 시간과 거리를 초월해 확산되게 하였고, 정보의 거센 범람을 빠르게 촉진시켰다. 그러나 그렇게 편리한 SNS가 과연 순기능만 존재하는 것인가? DEAN은 「instagram」에서 그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소위 ‘페친’, ‘트친’, ‘인친’이라 불리는 많은 팔로워를 거느린다 해도 그러한 인간 관계는 쉽게 공허해지고, 범람하는 정보에 잠겨 숨 쉬기 조차 힘들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은 사람들에게 SNS를 강제하고 있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 지금까지도 우리는 좋아요 하나, 댓글 하나에 목을 맨다. 우리는 SNS의 이용으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 DEAN은 그 질문에 날카로운 답을 던진다. “관둘래, 이 놈의 정보화시대”

 
 

 
 
 
 
 
 
 
 
 
 
 
 
 
 

 

그래도 우리, 힘껏 서로를 사랑해줄래,

이 모진 세상에서 우리.”

                                          – 강아솔 「그래도 우리」 中

 

  때로는 인간 관계 속에서의 소소한 갈등, 때로는 시스템에 주어진 하나의 개인으로서 거대한 이데올로기와 빚는 격렬한 마찰. 몇 명 안되는 집단 내에서도 편가르기와 선 긋기가 난무하는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 속에서 강아솔은 고고하게 그 언젠가 있었을지도 모르는 『사랑의 시절』에 대해 이야기한다. 서로에 대해 오해하고, 서로를 가르치려 들고 헐뜯고 비난하는 것이 대한민국 사회의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서로를 보듬는 ‘사랑’은 우리에겐 먼 이야기가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서로를 물어뜯는 ‘서로’의 인간들은 모두 완벽하지 않고, 어딘가 서투른 ‘인간’일 뿐이다. 강아솔은 「그래도 우리」에서 그럼에도 서로 사랑하며 모진 세상을 살아가자는 메시지를 던진다. 비록 그 과정이 더 아프고, 더 고되고, 더 먼 길일지라도, 서로를 사랑하자는 강아솔의 메시지는 현실과 너무도 동떨어져 있어 성스러운 느낌까지 준다. 앞으로 얼마 간의 시간이 더 지나 지금보다 더욱 각박한 세상이 도래하더라도, 사랑의 힘은 언제까지나 거대할 것이라 믿는다. 본 곡에서의 강아솔의 메시지 역시 그러하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길을 비켜라, 세상의 왕이 납셔,

 저기 저 낮은 곳에 사는 왕”

                                          – 에고펑션에러 「바보들의 왕」 中

 

  ‘헬조선’, ‘지옥불반도’, 현재의 대한민국을 정의하는 말로서 온라인과 오프라인 양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지도 시간이 지난 단어들이다. 그러한 ‘헬조선’, ‘지옥불반도’에 사는 우리들은 ‘노예’들이다. 작은 인간관계에서도 전전긍긍하며 종의 자세를 취하는 것이 일상이고, 시스템을 쫓아가려고 죽을 각오로 뛰어도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현재 대다수의 대한민국 국민들의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스로 ‘왕’임을 자처하는 것은 미친 짓처럼 보일 수 있다. 에고펑션에러는 「바보들의 왕」에서 그 ‘미친 짓’을 당당히 해낸다. “환한 미소 예쁘게 짓고 우습게 볼까 외로워”했던 현대의 인간관계를 꼬집고, “사랑스러운 실수” 한 번으로 쉽게 죽일 놈이 되어버리는 실상을 비꼰다. 지나치게 고도화된 현대의 이러한 체계 속에서 우리는 어쩌면 아무리 노력해도 ‘바보’를 벗어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한 현실을 종의 입장이 아닌, 주인된 입장에서 개척해나가는 것은 확실히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낮은 곳에 사는” 우리도 ‘세상의 왕’처럼 살자는 에고펑션에러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막연한 희망을 가져다 준다.

 
 

 
 
 
 
 
 
 
 
 
 
 
 
 
 

 

나도 그렇게 괜찮은 사람은 아닌데,

 당신들은 정말 미친 것 같아.”

                                          – 김간지X하헌진 「미친 사람들」 中

 

  사소한 것 하나도 평가의 대상이 되는 시대이다. 영화를 보거나, 음식점을 가는 등의 일상적인 행위 속에서도 그렇다. 평가가 이루어질 때, 언제나 평가를 하는 주체는 평가의 대상으로부터 자신을 이격시킨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쓰레기야” 같은 뉘앙스의 국까 성향의 글들이 그 글을 올리는 한국인들의 자조라고 판단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것은 곧 평가를 자주 함에도, 사람들은 자신이 부당하다고 여기는 평가를 받는 것을 꺼리는 성향이 있다라는 명제로 치환된다. 가령 어떠한 집단의 구성원이 잘못을 저질러 그 집단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일 때, 다른 구성원들이 그 평가에 대해 “나는 빼라”라며 발끈하는 것은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예이다. 그러한 경향성은 SNS와 인터넷의 힘으로 근래 들어 더욱 커졌으며, 이는 곧 반목과 갈등의 시발점이 된다. 김간지X하헌진의 「미친 사람들」은 그 점에 있어서 솔직한 고백이자 평가를 들이민다. “나도 그렇게 괜찮은 사람은 아닌데, 당신들은 정말 미친 것 같아.” 살면서 누구나 이러한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물론 본고를 작성하는 나 역시도, 그러한 ‘미친 사람들’ 중 한 사람이다.

 
 


 
 
 
 
 
 
 
 
 
 
 
 
 
 

 

받아주지 않는 이상, 삼켜야만 하겠구나,

 남은 인심은 어디에다 꽁쳐놓고 사는거냐 이 씨발새끼야”

                                          – 데카당 「토마토 살인사건」 中

 

  대한민국의 청춘들은 화가 나있다. 나 역시 그렇다. 현실은 더욱 더 부조리함과 피폐함 속에 침잠해 들어가고, 그 속에서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길은 흐려져간다. 텅 빈 지갑은 늘 우리의 발목을 잡고, 야속하게 ‘발전’하는 듯 빠른 속도로 전진하는 시스템은 우리가 그에 대한 심도 깊은 고찰을 할 기회조차 스쳐지나가게 하며, 사람 하나 사귀는 것 조차 쉽지 않다. 반목과 갈등에 둘러싸여있는 우리에게 자신들을 고려하지 않는 ‘꼰대’들은 적이며, 정치적 움직임도 우리를 위해 움직이는 게 없다. 그런데 더욱 비참한 것은, 이러한 아픔을 토로하고 투정부리는 것을 허락해줄 만큼 세상은 녹록한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청춘들은 화가 나있다. 나 역시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데카당의 「토마토 살인사건」은 대한민국의 청춘을 대변한다. 모든 것을 죽이고, 때려부수고, 전복시키고자 하는 화를 우리는 끝끝내 억누르면서 산다. 그러한 화의 표출은 곧 시스템을 적으로 두는 것이고, 곧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춘들은 「토마토 살인사건」을 빌어 중얼거릴 수 밖에 없다. “내 화를 받아줘, 내 이야기를 들어줘, 이 씨발새끼들아.”

 
 

 
 
 
 
 
 
 
 
 
 
 
 
 
 

 

‘그건 다 blah 때문 같아’, 또는

 ‘네건 가짜고 나의 것이 진짜’,

‘네 depression은 멋진 으악! fashion 같아'”

                                          – Jclef 「으악!」 中

 

  대한민국의 청춘은 화가 나있다. 나 역시 그렇다. 그렇기에 모두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줄 누군가를 없는 와중에 찾게 된다. 그것은 오프라인 상의 자신과 관계하는 다른 인간일 수도 있고, 온라인 상의 익명의 누군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이를 쉽게 오해하고, 쉽게 진단하고, 쉽게 평가한다. 각자의 삶이 타인에게 휘발적으로 소모되는 현재의 시스템 속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건 다 무언가 때문이다.”, “그건 잘못되었고 내가 말하는 것이 맞다.”, “너의 우울은 네가 티를 내는 겉치레일 뿐이다.” 누군가와 이야기하면서, 상담하면서 이러한 뉘앙스의 이야기는 다들 한 번 씩은 듣고, 상처 입으며 산다. 그렇기에 “입은 닫고 귀는 열어”둔다는 Jclef의 메시지는 그 어떤 이야기보다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된다. 시스템 속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모든 개인들은 서로에게 적대적이다. 어쩌면 화가 잔뜩 나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 마디의 말, 한 줄의 평가가 아니라 일순간의 침묵일지도 모른다.

 
 

 
 
 
 
 
 
 
 
 
 
 
 
 
 

 

훔치는 법도 알아야 달리는 법도 알게 되지”

                                          – 잔나비 「Good Boy Twist」 中

 

  “굶주려야 한단다. 훔치는 법도 알아야 달리는 법도 알게 되지.” 우리가 흔히 듣고 살았던 말과 많은 것이 닮아 있는 가사다. 시스템 속에서 버티고 있는 누군가는, 우리보다 더 선대에서 먼저 시스템을 겪으면서 살아왔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자신의 버티는 노하우를 후대의 사람들에게 전한다. 첫 라인부터 ‘헝그리 정신’으로 대표되는 「Good Boy Twist」의 이야기는 “굶주리고, 훔치고, 달릴 것”을 권유한다. 그러나 그렇게 “훔치고 달리는” 것에 익숙해진 이들은, 그들이 이야기를 전하는 후대의 사람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이상을 자신들도 가졌던 것을 잊지 않고 있다. “춤을 추는 것”이나 “나는 것”이 바로 그렇다. “춤을 추고 날기”위해서 허황된 것처럼 보이는 꿈을 꾸는 이들에게 “달려라”라고 권유하는 것은 그들이 시간이 지나 자신들처럼 “달리라”라고 말하는 사람이 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끝없이 변화하며 다른 방향성을 제시하는 시스템은 시간에 따라 누군가를 도태시키며 나아간다. 도태된 이들은 계속 달려야 할지, 멈춰서서 춤을 춰야 할지 모른 채 그저 후대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할 뿐이다. 「Good Boy Twist」의 그러한 비참한 화자를, 우리는 ‘꼰대’라고 부른다.

 
 

 
 
 
 
 
 
 
 
 
 
 
 
 
 

 

내가 지금 마음이 차가운 건

따뜻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야”

                                          – 장기하와 얼굴들 「등산은 왜 할까」 中

 

  우리는 무엇인가를 하면서 삶을 살아간다. 인간관계를 쌓고, 공부를 하고, 취직을 하거나 사업을 하고,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삶을 살아가고, 시스템에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일들은 언제나 성공을 보장하진 않는다. 일시적인 성공처럼 보이는 성취를 이루더라도, 그것은 얼마 안 가 무너지기도 한다. 어렵사리 쌓은 인간관계는 사소한 갈등으로 인해 무너져내리고,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꼭대기와 바닥을 왔다갔다거리기도 하고, 노력을 아무리 해도 그에 합당한 결과로 보상받지 못하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묻게 된다, “대체 나는 그 일을 왜 했던 걸까?” 후회의 감정은 모두에게 평등하다. 결과만이 살아남는 세상 속에서 후회가 쌓이다 보면, 어느새 모든 것에 무던해지고 차가워진 우리 자신의 모습을 목도하게 된다. 현실이 그렇다.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시스템은 우리를 좌절시키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열정을 차갑게 식힌다. 모두가 절망, 분노, 슬픔 속에 잠겨 있는 현재의 우리가 차가운 것은, 그만큼 뜨거웠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뜨거운 열정의 경험과 그를 압도하는 현실의 괴리는 우리에게 더 큰 슬픔을 불러일으킨다.

 
 


 
 
 
 
 
 
 
 
 
 
 
 
 
 

 

아버지, 벤틀리는 죄송하지만 없던 걸로.”

                                          – XXX 「18거 1517」 中

 

  한국 힙합 가사의 공식은 늘 정해져있다. 돈을 벌어 성공한 삶을 살겠다는 포부가 초기의 텍스트를 이루고, 어느 정도 그 목표에 도달했을 때는 자신이 벌어들인 돈과 성공을 자랑하고 그것을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상하겠다는 자기과시 텍스트로 귀결된다. 흔히들 한국 힙합 가사의 세 가지 공식이라 말하는 ‘돈, 효도, 자동차’가 바로 그것이다. XXX의 「18거 1517」의 가사 역시 처음엔 그러하다. 성공해서 돈을 벌고, 아버지에게 보상하겠다는 Kim Ximya의 포부는 거대한 시스템의 벽에 부딪치며 반전을 겪는다. 방송을 타거나 차트 공식에 따른 멜로디의 음악을 만드는 등의 대중친화적인 노선을 타지 않는다면 아무리 음악을 잘해도 성공할 수 없다는 모순에 절망한 Kim Ximya는 절규한다. 폭풍같이 몰아치며 그 자신이 ‘돈, 효도, 자동차’라는 힙합씬의 공식의 안티테제로 화해 시스템을 비판하고, 지조를 지킨답시고 음악을 했던 자신의 보잘 것 없는 현실을 자조한다. 마지막 라인 “아버지, 벤틀리는 죄송하지만 없던 걸로”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시스템의 거대한 벽을 직접 체감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바뀌지 않는 상업 음악의 구조 속에서 Kim Ximya는 영원히 ‘벤틀리 오너’가 될 수 없음을 누구보다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coloringCYAN
음악을 듣고, 글을 씁니다.
http://www.tonple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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